"전쟁 여파에도 '탄소순배출량 제로' '원전 폐쇄' 합의 강력하다"

최우리 2022. 10. 1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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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독일 아고라 에네르기벤데 디미트리 페시아 선임연구원
지난 9월 22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 회의실에서 만난 디미트리 페시아 아고라 동남아시아 담당 선임연구원. 최우리 기자

올 겨울 유럽이 에너지 수급 조절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에너지 강대국들이 자원을 무기화하고 나서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어서다. 유럽은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까.

이런 질문을 갖고, 지난달 22일 독일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아고라 에네르기벤데’(이하 아고라)의 디미트리 페시아(44) 동남아시아 담당 선임연구원을 만났다. 그는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주최로 서울에서 열린 ‘기후위기 시대 한국의 에너지 전환을 위한 과제’ 토론회에 기조연설자로 참석하러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스위스 연방 공대(EPFL)에서 물리학을 전공(석사)한 뒤 2008~13년 베를린 주재 프랑스 대사관에서 독일의 에너지·환경·원자재 정책을 모니터링하는 일을 했다. 이후 프랑스와 독일 양자 협력을 위한 독일 전기시장 연구를 하다가 2013년 말 아고라로 옮겼다. 이날 인터뷰 자리에는 문재인 정부 때 청와대 기후환경비서관실 행정관을 지냈고, 지금은 아고라 한국 담당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염광희 박사가 함께 했다.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아고라’ 소속
물리학 전공…동남아시아 담당 활동
‘한국 에너지 전환’ 토론회 기조연설

러시아 가스 의존해온 유럽 에너지난
“일부 원전 가동은 임시 겨울나기용”
“한국 배터리 등 에너지산업 잠재력”

디미트리 연구원은 “독일 정부가 단기적으로 러시아 아닌 카타르, 캐나다, 호주, 미국 등으로부터 가스 공급이 가능하도록 북해 근처에 추가로 터미널을 건설하고 있다”고 했다. 또 “장기 계약에 따라 비싸게 산 가스 수입 업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조처도 시행 중이고, 공공기관은 난방 온도를 19도로 제한하고, 가정에서 에너지 절약을 하면 정부가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절약을 유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폭등한 전기요금에 따른 가계·산업의 충격을 줄여주기 위한 지원책도 있다. 정부가 전력시장에서 돈을 많이 번 가스발전사의 초과이익을 환수해 일반 소비자 요금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횡재세)에 대해서도 논쟁이 이어지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높은 러시아 가스 의존도 탓에 위기에 봉착한 독일 정부는 가동 중단했던 예비용 석탄화력발전소를 2023년 4월까지 한시적으로 가동하기로 했다. 또 올해 말까지 폐쇄하기로 했던 원전 3개 중 2개도 예비전력원으로 이 기간까지 유지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독일의 ‘탈석탄·탈원전’ 정책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전력 공급 안정화 조치는 일시적으로 겨울을 나기 위한 것일 뿐”이라며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정책은 유지하고, 원자력발전은 가능한 빨리 폐쇄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정책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에도 유지되는 이유를 “독일은 2045년 넷제로(탄소순배출량 0)와 원전 폐쇄에 대한 강력한 합의가 형성돼 있다.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단기적으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대한) 여론은 우호적”이라며 “보급을 빠르게 진행할수록 전기요금 가격을 낮추는 효과가 있어 더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이 그린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에 천연가스와 원자력을 포함시킨 것을 포함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연합의 기후에너지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묻자, 그는 “택소노미는 회원국들의 매우 복잡한 합의의 결과”라며 “전쟁 이후 보다 분명해진 것은, 더 이상 천연가스를 ‘브릿지 연료’(석탄보다 탄소 배출량이 적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 전까지 이용할 수 있는 대체적 성격의 화석연료)라고 부르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가스 발전이 유럽연합의 그린 택소노미에 포함됐지만 배출량 기준 조건이 매우 엄격하다. 원전도 폐기물 관련 조건이 매우 엄격하기 때문에 사실상 민간업자들은 관심이 없다. 이 때문에 원전이 택소노미에 포함된 것이 실제 어떤 영향력이 있을지는 회의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도 재생에너지 확대 잠재력이 크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산림이 많아 국토 이용의 제약이 있을 수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재생에너지 확대가 도전적일 수 있지만, 잠재력 역시 높다”며 “한국은 기술과 산업 부문의 노하우가 있다. 배터리와 같은 새로운 서비스 산업으로 진출하는 데에도 적합하다”고 했다. 독일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1990년 3.4%에서 2000년 6%로 증가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42%로 뛰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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