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라인 넘은 韓 가계부채..전세금 합산땐 '세계 1위'
보증금 합치면 105%→153%
美·日 등 43개국 중 가장 높아
가계부채 통계 개선 시급
경제활동인구 2.4%만 조사
자영업 대출 300조도 뇌관
◆ 가계부채 비상 ◆
17일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한국의 단기외채 비율은 올 1분기 38.2%로, IMF가 정한 위험 기준선(100% 초과)은 물론 아시아 평균(125.7%)에 비해서도 훨씬 낮았다.
반면 한국의 성장판을 억누르는 요인이 되는 민간부채는 급증했다. 올 2분기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은 173.6%로, IMF 위기 기준선(100% 초과)을 뛰어넘었다. 가계가 상환 능력보다 더 많은 빚을 끌어와 자산시장에 투자한 영향이다.
민간부채의 주축은 가계부채다. 한국의 가계부채 악화 상황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105.8%로, 비교 대상인 43개국 가운데 4위다.
지난해 우리 경제 규모(명목 국내총생산·2071조5000억원)보다 가계부채가 5.8%포인트 더 많다는 얘기다. 미국(78.0%), 일본(68.8%), 독일(56.8%), 중국(61.6%) 등 주요국과 비교해도 더 높은 수치다. 고금리 환경에 부채 폭탄이 터지면 경제가 통째로 무너져내릴 위험성이 크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은 늘어난 빚이 자산시장으로 흘러간 가운데 갑자기 버블이 꺼지는 강한 충격이 발생하면 가계·기업이 66조8000억원에 달하는 신용 손실(빚을 갚지 못하는 사태)을 입을 것으로 분석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늘어난 가계부채 통계에 커다란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기준 995조8000억원으로 추산되는 전세보증금이 대표적이다. 당국은 전세보증금이 집주인과 세입자 간에 주고받는 '사적 금융'이라는 이유로 공식 통계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전세보증금은 임대차 계약이 끝나면 엄연히 돌려줘야 하는 빚이다.
다만 전세보증금과 기존 가계부채 통계에 겹치는 부분은 있을 수 있다. 임대차 계약 만료 시 임대인이 금융권 대출 등을 통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줬다면 이는 가계부채 통계로 잡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별 임대인의 사정에 따라 얼마만큼의 금융권 대출을 받아 얼마만큼을 전세보증금으로 돌려줬는지 조사할 방법은 없다.
전문가들은 정부 가계부채 통계를 더 정밀하게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세보증금이라는 빚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해 눈을 감으면 전체 부채 문제를 과소평가할 여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조사팀장은 "전세 제도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만 있다"며 "보다 정확한 국내 가계부채 상태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현행 통계 체계에서 배제된 전세보증금 규모를 합리적인 수준에서 추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가계부채에서 빠져 있는 빚은 또 있다. 300조원이 넘어갈 것으로 추정되는 영세 자영업자(소규모 개인사업자)의 부채다. 영세 자영업자는 금융권에서 돈을 빌리는 목적이 '사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국내 통계 체계상 가계빚에서 제외된다. 이렇게 자영업자가 빠진 가계빚은 1869조4000억원(2분기 기준)에 달한다.
하지만 가계와 마찬가지로 영세 자영업자도 상환 책임이 개인에게 있다. 빚을 되갚는 측면에서 보자면 고금리 국면에 모두 개인의 부채 부담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가계에 영세 자영업자 빚까지 더하면 국내 빚은 2000조원을 넘어선다. BIS에 따르면 한국의 가계부채는 2213조7000억원(1분기 기준)으로, 한은이 산출한 가계부채보다 344조3000억원이 더 많다. BIS 등 글로벌 기관은 실질적으로 경제에 돈이 순환하는 구조를 감안해 통계를 짜기 때문에 가계에 소규모 개인사업자 부채까지 합산해 통계를 낸다.
가계에 영세 자영업자를 더하고, 여기에 전세보증금까지 합치면 지난해 총 가계부채는 3187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 경우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105.8%가 아니라 153.9%로 단번에 48.1%포인트 급증해 조사 대상 43개국 가운데 1위로 뛰어오른다.
전문가들은 우선 당국의 가계부채 '레이더'를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 가계부채 상황을 보기 위한 미시 통계로는 한은의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DB)와 통계청, 한은, 금융감독원이 내놓는 가계금융·복지조사 등 2개가 있다. 이들 모두 표본집단이 적거나 갱신 시점이 1년에 1~4차례에 그쳐 수시로 변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데 제약이 있다. 가계부채 DB 표본집단은 만 18세 이상 신용활동인구의 2.4%인 110만명에 불과하고 가계금융·복지조사는 분석 대상이 전국 2만가구에 그친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앞으로 금리 인상 요인이 강해지면 가계부채 문제가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며 "가계부채 산정 방식을 치밀하게 재점검해 위기 판단 능력을 강화하면서 서민 금융 안전판을 확대하는 보완책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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