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만보' 금상첨화지만..3800보만 걸어도 치매위험 25% 뚝

이새봄 2022. 10. 1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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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걷기'의 과학적 효능
치매 위험을 낮춰주고 심장병과 암 발병률을 줄여준다. 당뇨병과 파킨슨병을 예방하고 관절염에 효과가 있으며 비만을 없애주고 심지어 달래기 어려운 아이의 울음까지 멈춘다. 시력을 개선하며 노화를 늦추는 작용도 한다.

이러한 '만병통치약'이 있다면 불로장생을 꿈꿔온 많은 이들이 앞다퉈 줄을 서 사려 들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이러한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이 만병통치약은 이미 모두가 가지고 있다. 바로 '걷기'다.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걷기는 가장 훌륭한 약"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폭염(暴炎)과 혹한(酷寒) 사이 청명한 날씨의 가을은 독서의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도 불리지만 무엇보다 걷기 좋은 계절이다. 특히 인간처럼 자유롭게 일상생활에서 직립보행을 하는 동물은 드물다.

과학자들은 걷기가 인간에게 신이 내린 선물이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의학협회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JAMA 신경학(Neurology)과 JAMA 내과 저널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하루에 3800보만 걸어도 치매 위험을 25%까지 줄일 수 있다. 9800보를 걸으면 치매 위험을 50%까지 낮출 수 있었다. 호주 시드니대와 서던덴마크대 연구진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에 등록된 7만8500명(40~79세)의 데이터를 이용해 7년 동안 추적 관찰한 결과다.

걸으면서 일하면 오히려 일의 효율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로체스터대 의료센터 내 델몬트 신경과학 연구소 연구팀은 앉아서 일을 하는 것보다 오히려 걷는 것이 일의 효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총 26명의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의자에 앉아 있거나 걸으면서 이들이 업무를 수행할 때의 뇌 활동 변화를 뇌·신체 영상시스템을 통해 분석했다. 동일한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26명 중 앉아 있는 12명에 비해 걷고 있던 14명은 뇌 전두엽 기능에 변화가 있었다. 연구를 주도한 엘레니 파텔라키 박사는 "걷는 행위가 뇌의 유연성과 효율성을 높여줬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흔히 걷기가 무릎 관절이 약한 사람에게는 독이 된다고 알고 있지만, 걷기는 무릎 골관절염의 손상을 늦출 뿐 아니라 통증도 줄여준다. 미국 텍사스 베일러의과대학 연구진은 미국인 5000명(45~79세)의 건강을 분석한 미국 골관절염계획연구(Osteoarthritis Initiative) 결과를 통해 운동하기 위해 산책을 하는 50세 이상 응답자의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무릎 통증의 가능성이 40% 줄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의 연구 대상에 포함된 참가자는 총 1212명으로, 조사 대상 중 73%가 50세 이후에도 꾸준히 걷기 운동을 했다. 연구 책임자인 그레이스 샤오 웨이 로 박사는 "방사선학적으로 골관절염이 관찰되지만 아직 무릎에 통증이 없는 사람의 경우 운동을 위해 걷는 행위가 무릎 통증을 예방할 뿐 아니라 골관절염으로 인한 관절 내부 손상 악화도 늦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8년에는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있는 50대라고 하더라도 골프를 칠 때 카트를 타고 홀을 이동하기보다 걷는 것이 건강에 더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의대와 셜리어빌리티랩 등 공동 연구진이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있는 환자 15명을 대상으로 실제 18개 홀을 걷거나 카트를 탄 상태로 돈 뒤 건강 상태를 조사한 결과 골프를 칠 때 걸으면서 홀을 이동하면 카트를 타고 이동하는 것에 비해 심박수가 증가해 건강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확인했다. 각 홀을 걸어서 이동했을 때 실험 참가자들은 골프를 치는 시간 중 약 60% 동안 중간 강도 심박수를 보였다. 카트를 탔을 때는 심박수가 상승해 운동 효과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라운드 시간 중 30%에 불과했다.

빠르게 걸을수록 수명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진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지는 속도는 늦어진다. 텔로미어는 염색체의 '뚜껑'이라고 불린다. 마치 신발끈 끝에 있는 캡이 신발끈을 구성하는 실들이 풀리는 것을 막아주듯, 염색체가 손상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염색체 말단에 위치하고 세포가 분열할수록 짧아지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텔로미어 길이가 수명과 연관이 있다고 추정한다. 영국 레스터대 당뇨병 연구센터 연구진은 전반적인 신체활동과 관계없이 보행 속도가 빠를수록 텔로미어가 더 길며, 이를 통해 생물학적인 연령이 16년 더 젊어진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걷는 속도와 텔로미어 길이 간 연관성을 알아보기 위해 영국 바이오뱅크에 참가한 40만500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빠른 속도로 걷는 사람들의 텔로미어가 느린 속도로 걷는 사람들보다 길었다. 이들은 이어서 걷기 추적장치를 장착한 8만6000명의 표본을 추가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커뮤니케이션스 바이올로지'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앞서 하루에 10분 정도 빠르게 걷는 것이 기대수명 연장과 관련이 있으며 빠르게 걷는 사람이 느리게 걷는 사람보다 최대 20년 더 긴 기대수명을 갖는다는 연구 결과를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하루에 몇 보를 걸어야 '장수'하는 것일까. 미국 매사추세츠대 연구진이 18세 이상 성인의 걷기가 수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15개 논문을 메타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60세 이상 성인의 경우 하루 6000~8000보를 걸으면 조기 사망 위험이 줄어들었다. 60세 미만의 경우 하루 8000~1만보를 걸으면 조기 사망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올해 1월 미국 당뇨병학회 공식 저널 '당뇨병 관리'에 발표된 UC샌디에이고 연구진의 논문에 따르면 하루에 1000보를 걸을 때마다 당뇨병 위험이 6% 낮아진다. 매일 2000보를 추가로 더 걸으면 이 위험을 12% 낮출 수 있다.

손발이 떨리고 걸음걸이가 무거워지는 등 운동장애 증상을 보이는 퇴행성 뇌질환인 파킨슨병 환자는 일주일에 두 번 규칙적으로 걷기 운동을 했을 경우 질병의 진행이 크게 늦춰졌다. 지난 1월 미국 신경과학회 저널인 신경학 온라인판에 게재된 연구에서 일본 교토대 연구진은 초기 단계 파킨슨병 환자 237명을 6년 동안 추적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일주일에 4시간 이상 걸은 파킨슨병 환자는 걷기와 같은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환자들에 비해 균형 잡기 등을 비롯한 운동장애가 느리게 진행됐다. 연구를 주도한 쓰키타 가즈토 박사는 "파킨슨병 약물의 경우 일부 증상 완화 효과가 있지만 질병의 진행을 늦추지는 않는다"며 "걷기와 가사 등 규칙적인 신체활동이 장기적으로 질병의 경과를 개선할 수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라고 설명했다.

걷기가 시력을 좋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독일 율리우스 막시밀리안 뷔르츠부르크대(JMU) 연구진은 사람이 시각 자극을 처리할 때 정지해(앉아) 있거나 움직이고 있을 경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시야 주변 부분일수록 움직이는 상태에서 더 향상된 처리를 보였다.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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