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년 전 '임신의 진화'가 먼저 이뤄졌다

곽노필 2022. 10. 1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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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 성장, 영장류보다 40% 이상 빨라
600만년 전 침팬지 분리 후 변화 시작
네안데르탈인부터 오늘날과 비슷해져
임신 26주차의 태아 초음파 사진. 테슬라 몬슨 제공

자궁 안에서 태아, 특히 뇌가 자라는 속도가 다른 영장류에 비해 훨씬 빠르다는 점은 인간 진화의 비밀이자 인간과 다른 영장류를 구별하는 주요 특성 가운데 하나다.

사람의 태아는 하루 평균 약 11.6g씩 자란다. 반면 사람과(호미니드)에 속한 영장류 중에서 가장 빠른 고릴라의 태아는 하루에 8.2g씩 자란다. 40%나 빠른 성장 속도다.

과학자들은 이것이 인간이 큰 뇌를 진화시킨 것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본다. 인간은 몸집에 비해 뇌가 상대적으로 커서 신생아 분만 시 고통이 매우 큰 편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태아가 자궁 속에서 자라는 속도가 빨라진 것은 언제부터일까?

그러나 태아가 화석으로 남아 있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다가 발견되는 골반과 유아 유골로는 이 공백을 메꾸기가 어렵다.

미국 웨스턴워싱턴대 연구진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이런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영장류 태아기의 성장 속도는 첫번째와 세번째 어금니 길이의 비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치아는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골격 화석 가운데 하나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인간 진화사에서 태아의 성장 속도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유추해 국제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우선 후기 중신세인 600만년 전에서 홍적세가 시작되는 시기인 1만2천년 전 사이의 유인원과 아프리카 및 아시아 원숭이 등 608마리의 영장류 어금니와 두개골 화석 데이터를 종합 분석한 뒤 태아의 성장 속도를 예측할 수 있는 수학 모델을 구축했다.

그런 다음 이 모델을 이용해 화석 어금니 크기를 토대로 유인원 13종의 태아기 성장 속도를 유추했다.

침팬지와 호미니드의 두개골 비교.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어린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어린 침팬지, 성인 침팬지, 성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성인 호모 에렉투스. 테슬라 몬슨 제공

뇌 증가-도구 사용-협력 강화…연쇄적 상승작용

그 결과 호미니드의 태아기 성장 속도는 약 600만년 전 침팬지에서 분리된 후 빨라지기 시작해 약 100만년 전에는 현생 인류와 비슷해졌다는 계산이 나왔다.

연구진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같은 초기 호미니드의 태아 성장 속도는 현대의 유인원과 비슷했으며, 150만년 전~200만년 전 호모 하빌리스부터 유인원을 추월하기 시작해, 호모 에렉투스에 이르러 하루 9.83g으로 성장 속도 차이가 뚜렷해졌다고 밝혔다. 이어 네안데르탈인에 이르러선 태아 성장 속도가 하루 11g으로 오늘날과 거의 비슷해졌다.

연구를 이끈 테슬라 몬슨 교수(고인류학)는 “이번 발견은 인간 진화의 또 다른 핵심 요소인 도구의 사용 연구와도 일치한다”며 “태아의 성장 속도와 뇌 크기가 증가할 즈음 인간 조상은 더 많은 도구를 사용해 자원을 수집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이는 연쇄적으로 태아의 뇌 성장 속도와 사람 간 협력, 도구 사용을 강화하는 선순환 효과를 가져왔다고 그는 덧붙였다.

몬슨 교수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초기 인류가 현생 인류가 등장하기 수십만년 이전인 50만년~100만년 전에 다른 모든 현존 유인원과 차별화된 태아 성장 속도에 이르렀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그러나 태아기 성장 속도와 어금니 길이 비율이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 이유는 알아내지 못했다. 다만 특정 유전자와 관련이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

실제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 한 유골의 어금니를 통해 태아기 성장 속도를 추정하는 것이 얼마나 정확한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몬슨 교수는 “그러나 지난 600만년 동안의 태아 성장 속도 증가 추정치는 호미니드의 골반 및 뇌 크기 증가와 일치한다”고 말했다.

영국 켄트대 패트릭 마호니 교수(골격생물학)는 ‘뉴사이언티스트’에 “유골은 보존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태아 성장 속도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매우 어려운데 이 장애물을 극복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라고 평가했다.

임신 말기에 이르면 태아의 성장 속도가 느려진다. 픽사베이

임신 말기에 이르면 성장 속도 둔화

빠르게 성장하던 태아는 그러나 임신 말기에 이르면 성장 속도가 느려진다.

앞서 일본과 벨기에, 스위스 공동연구진은 인간과 침팬지, 일본 원숭이의 출생 전후 모습을 비교 분석한 결과, 사람 태아의 어깨 성장 속도가 출생 전에 잠시 느려졌다가 출생 후 다시 빨라지는 것을 발견했다고 지난 4월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과학자들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머리와 함께 어깨 성장 속도가 느려지는 것은 출생시 산도를 좀 더 쉽게 통과하기 위한 진화적 적응의 결과로 해석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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