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최전선] ①꿈틀대는 탄소저장 비즈니스..척박한 환경을 '기회'로
[편집자주] 최근 국내는 물론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는 기후재앙은 탄소중립을 향한 인류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순 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탄소중립 구현에 탄소 포집과 저장, 활용(CCUS) 기술은 필수적입니다. 배출을 줄이는 노력과 동시에 이미 배출했거나 배출하고 있는 탄소를 없애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도 탄소중립을 핵심 국가전략기술로 꼽고 있습니다. 동아사이언스는 CCUS 연구개발(R&D)을 토대로 비즈니스까지 추진하고 있는 세계 각국 현장을 취재하고 CCUS 기술의 현주소와 국내 상황을 분석해 향후 CCUS R&D의 비전을 모색합니다.
지난 8월 중순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인근 파그라달스퍄들 화산이 분화했다. 지난 3월 약 800년만에 분화한 이 화산은 8월 3일 활동을 재개하며 시뻘건 용암이 흘러내리는 광경을 연출했다. 한달 뒤인 9월 21일 늦은 오후 도착한 레이캬비크 케플라비크 국제공항엔 부슬비와 함께 바람이 불었다.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북극해와 가까운 그린란드 사이에 있는 화산섬인 아이슬란드는 10월도 채 되지 않아 체감온도는 10도 이하로 추운 날씨였다.
북위 64도에서 66도 사이 북아메리카판과 유라시아판이 만나는 지점에서 화산으로 이뤄진 화산섬인 만큼 기후와 토양은 척박하다. 북반구 한여름인 8월에도 평균기온이 10도 전후에 머문다. 어업과 금융업, 관광 등 일부 산업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산업이 발전하지 못한 국가지만 전지구적인 과제로 떠오른 ‘탄소중립’에서만큼은 유럽에서 중요한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척박한 화산지대를 활용한 탄소포집저장(CCS) 기술을 보유한 ‘카브픽스’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 15년 전 연구 프로젝트로 시작한 CCS 기업
아이슬란드 전체 인구 37만여명 중 2016년 기준 약 3분의 1인 13만여명이 살고 있는 레이캬비크 도심 한복판엔 아이슬란드 전체에서 가장 높은 20층 빌딩이 눈에 들어온다. 이 빌딩 19층이 카브픽스 본사다.
9월 22일(현지시간) 방문한 카브픽스 본사에서 일행을 반갑게 맞이한 올라퍼 아이나르 요한손 카브픽스 비즈니스 개발 매니저는 “레이캬비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가장 높은 건물”이라고 소개했다. 그만큼 카브픽스라는 기업의 아이슬란드 내 위상을 말해준다.
카브픽스는 현재 레이캬비크시가 설립한 전력 공기업 레이캬비크에너지의 자회사로 설립됐다. 2007년 레이캬비크에너지와 아이슬란드대, 미국 컬럼비아대,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이 이산화탄소 지중 저장 연구를 위해 진행한 카브픽스라는 프로젝트명이 굳어져 지난 2019년 기업으로 출범했다. 지난 8월 민간 독립법인으로 탈바꿈하는 방안을 승인받아 현재 절차가 진행중이다. 요한손 매니저는 “레이캬비크에너지가 대주주이긴 하지만 레이캬비크시가 설립한 기업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법인화해 규모를 키우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척박한 화산지대 환경을 기회로...“2년 내 탄소 영구 저장”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재해가 재앙 수준으로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전세계 각국은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 구현을 위해 2030년까지 2018년 탄소 총배출량 대비 40% 감축 목표를 제시했다. 이같은 목표를 현실화하려면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배출된 탄소를 포집하고 저장하는 과학기술 연구와 구체적인 실행전략이 필요하다.
버구르 시그푸손 카브픽스 CO2 저장및주입 책임자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목표 실현은 탄소포집과 저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며 “연간 115기가톤(Gt)의 탄소포집 및 저장이 전세계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2007년 프로젝트로 시작한 카브픽스는 2010년까지 연구개발(R&D)과 CCS 기술 실증 설계(디자인)를 거쳐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탄소저장 실증에 성공했다. 이들은 화산지대에 흔히 볼 수 있는 현무암을 활용한다. 이산화탄소를 용해한 물을 현무암층에 주입하면 현무암에 포함된 칼슘과 마그네슘, 철 등 광물이 화학반응을 통해 탄산칼슘과 탄산마그네슘, 탄산철로 만들어져 이들이 현무암의 다공성 표면을 채운다. 이를 통해 이산화탄소를 지중 현무암에 영구적으로 저장하는 것이다.
시그푸손 책임자는 “CO2를 용해한 물을 지중 현무암층에 주입하면 2년 내에 이산화탄소가 탄산광물로 바뀐다는 사실을 2년만에 확인하게 됐다”며 “약 400일 가량 지나면 이산화탄소의 95% 이상이 광물화된다”고 말했다. 반응 온도가 높을수록 반응 속도가 빨라지는데 지열이 있는 지중 저장을 통해 반응 속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카브픽스 방문에 동행한 강무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보통 CO2 지중저장은 사암층에 많이 하는데 이 때 저장한 CO2가 다시 유출되지 않게 덮개암이 필요하다"며 "현무암층에 저장하면 CO2의 반응성이 좋아서 2년 내에 영구 저장된다"고 설명했다. 또 "국내에서도 최근 남해 대륙붕에 있는 현무암 대지 구조에 CO2 지중 저장이 가능한지 연구가 이뤄지고 있어 카브픽스와의 기술 협력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 유럽서 발생하는 CO2 저장하는 비즈니스 개발...2030년 연간 300만톤 처리 목표
카브픽스는 CCS 비즈니스를 본격화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거침없이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스위스 스타트업 클라임웍스와 함께 레이캬비크에너지가 운영중인 지열발전소 ‘헬리셰이디’ 주변에 ‘오르카(Orca)’라는 시설을 세워 대기에서 CO2를 직접 포집하는 연구에 시동을 걸었다. 오르카에서 포집한 CO2는 카브픽스에서 현무암을 활용한 지중 저장하는 방식이다.
새로운 연구에만 그치지 않고 탄소중립 분야를 비즈니스로 탈바꿈하기 위한 시도도 진행중이다. CO2를 용해하는 물로 담수를 사용하지 않고 해수를 활용하고 아이슬란드 곳곳에 허브 항만을 세워 유럽의 독일이나 영국에서 CO2를 받아 대신 영구 저장해주고 처리비용을 받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시그푸손 책임자는 “아이슬란드는 대부분 화산 현무암으로 이뤄져 있어 아이슬란드에 영구 저장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 양이 약 2500기가톤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CO2를 물에 용해하고 주입하는 에너지로는 지열발전 등 재생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탄소중립에 최적의 전략”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해수를 활용한 CO2 광물 반응 연구와 항만 터미널에서 대규모 탄소 저장을 위한 허브 컨셉트를 디자인하고 있다. 요한손 비즈니스 개발 매니저는 “선박 한척당 약 2만4000t의 CO2를 싣고 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2030년부터 유럽서 수송되는 CO2를 연간 300만톤 처리하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 사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수용성을 확보하는 게 관건
한국의 경우 2017년 11월 발생한 포항지진의 원인으로 지열발전이 지목되면서 인근에서 추진되는 CCS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이같은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시그푸손 카브픽스 책임자는 “포항지진으로 우리도 교훈을 얻게 됐다”고 밝혔다. 지진이나 재난을 피하기 위한 방안에 좀 더 공을 들이기 있다는 것이다.
시그푸손 책임자는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높은 압력으로 CO2가 용해된 물을 주입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구현하고 있다”며 “지중 1000m 미만으로 시추해 지중에 CO2를 주입하는 압력을 낮추고 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사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수용성을 확보하는 방안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CO2 지중 저장하는 곳 외에도 인근 휴양지나 놀이시설에도 동일하게 지진계를 설치해 지진계가 조금이라도 지진을 감지하면 작업을 중단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며 “이같은 정보를 투명하고 공개하고 국민들의 수용성을 높인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레이캬비크=김민수 기자 r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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