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 '미세 조류'는 식량 부족 겪을 미래 인류에게 '구원자'가 될까

이정호 기자 2022. 10. 16. 21:4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 연구진, 중량의 60%가 단백질·감자의 4배 열량 '스피루리나' 주목
바닷물로 대량 양식..하와이 해안에 시설 운영 "100억명 식량 거뜬"
미국 기업 사이아노테크가 하와이에서 운영하는 미세 조류 생산농장의 모습. 전체 넓이는 약 36만4000㎡로, 축구장 50개와 맞먹는다. 사이아노테크 제공

“해가 바뀌어도 나아지는 게 없잖아요. 이 세상이 우리에게 떠나라고 말하고 있어요. 인간은 지구에서 태어났지만, 지구에서 죽을 운명은 아니에요.”

2014년 개봉한 미국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쿠퍼(매슈 매코너헤이)는 늦은 저녁 자신의 농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렇게 읊조리듯 말한다. 그는 과거 미국 항공우주국(NASA) 소속의 파일럿이었지만, 지금은 농부다. 날이 갈수록 환경이 황폐해지면서 첨단 기술이 아니라 당장 먹을 식량이 중요한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농사에 매달리지만, 상황은 나빠지기만 한다. 병충해 탓에 밀은 진작에 사라졌고, 마지막 남은 작물인 옥수수가 자취를 감추는 것도 시간문제다. 결국 쿠퍼는 자신의 어린 딸과 인류를 구하기 위해 지구인이 이주할 만한 다른 은하계의 행성을 찾아 떠난다.

<인터스텔라>에서는 미래의 일로 묘사됐지만, 척박한 자연환경과 부족한 식량이란 문제는 지구촌 곳곳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다.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영양실조에 걸려 있다. 이들에게는 <인터스텔라> 속 지구가 허구가 아닌 현실인 셈이다.

그런데 농사나 목축 같은 전통적인 방법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수단을 이용해 식량 생산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시도가 과학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물속을 떠다니는 작은 생물인 ‘미세 조류’를 먹거리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다. 미세 조류를 식량으로 쓰면 지금보다 20억명이나 많은 100억 인구까지도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미세 조류의 일종인 ‘스피루리나’를 알약 형태로 만든 제품. 위키피디아 제공

■ 미세 조류는 ‘단백질 덩어리’

미국 코넬대 과학자들이 주도한 공동 연구진은 최근 미세 조류를 미래 식량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 결과를 국제 학술지 ‘오셔노그래피’ 최신호에 게재했다.

미세 조류란 물에 사는 식물성 플랑크톤이다. 담수에도 있지만 바다에 많다. 크기는 수㎛(마이크로미터, 1㎛는 100만분의 1m)에서 수백㎛ 수준이다. 너무 작아 인간의 눈으로는 모양새를 볼 수 없다. 진짜 식물처럼 뿌리나 줄기는 없지만, 미세 조류는 대기에 포함된 산소의 절반을 생산한다.

이런 미세 조류에 연구진이 주목한 이유는 뛰어난 영양분 제공 능력 때문이다. 대표적인 미세 조류인 ‘스피루리나’는 100g당 열량이 감자보다 4배나 많은 290㎉에 이른다. 특히 스피루리나는 자신의 중량 가운데 60%가 단백질 성분이다. 잘게 잘린 고깃덩어리가 물속을 떠다니는 격이다.

연구진은 이렇게 양질의 먹거리인 미세 조류가 곧 현실이 될 인구 폭발 시대를 헤쳐갈 묘수가 될 것으로 봤다. 연구진은 2050년 전 세계 인구가 현재보다 20억명 많은 100억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들이 소비하는 총 단백질 수요는 연간 최대 286.5Mt(메가톤)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미세 조류를 대량 양식해 식사용으로 사용하면 이 수요를 감당하고도 남을 것으로 연구진은 내다봤다. 미세 조류가 미래 인류를 굶주림에서 구할 거라는 얘기다.

■ 키우기 쉽고 환경보호 효과도

미세 조류는 어떻게 얻을까. 연구진은 해안가의 육지에 인공 호수를 판 뒤 바닷물을 끌어들여 미세 조류를 키우는 대규모 양식장 모델을 제시했다.

가두리 양식장처럼 연안 바다에서 직접 미세 조류를 키우면 부영양화 등 바닷물의 오염이나 환경 변화에 취약하다. 이 때문에 바다와 분리된 서식 환경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바닷물로 만든 ‘푸른 농장’인 셈이다.

미국 하와이 해안에서 가까운 육지에는 이미 그런 시설이 들어서 있다. 미국 기업 사이아노테크는 36만4000㎡, 즉 축구장 50개에 이르는 광대한 땅에서 미세 조류를 키우고 있다. 이런 곳을 지구촌 곳곳에 만들자는 얘기다.

연구진은 미세 조류가 키우기 쉽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바닷물만 있으면 된다. 비료를 뿌리거나 관개 수로를 건설할 필요가 없고, 사료를 주거나 배설물을 치우는 일과도 이별할 수 있다. 환경보호에도 도움이 된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지난 50년 동안 아마존 열대 우림의 20%가 개간됐다”며 “개간 뒤에는 주로 소를 기르는 목초지와 콩 농장이 들어섰다”고 말했다.

관건은 미세 조류를 식량으로 보는 시각을 확산하는 일이다. 이미 시도는 있다. 올해 초 이스라엘의 한 신생벤처기업에선 대표적인 미세 조류인 ‘스피루리나’를 원료로 한 훈제 연어를 선보였다. 스피루리나는 지금도 건강보조식품으로 쓰지만, 생선의 식감을 모방한 것이다. 향후 인간이 진작부터 먹어왔던 먹거리의 형태와 색을 흉내 낸 미세 조류 식품이 얼마나 확산될지 주목된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