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마존도 반한 '수면 진단 AI' .."오직 기술력으로 승부했죠"
수면 진단 AI '슬리' 개발한 94년생 CEO
카이스트 AI 대학원 석사 취득 후 창업
시리즈B 160억원 유치..기업가치 900억원
"수면 넘어 '토탈 헬스케어' 기업 될 것"
지난해 1월 이동헌(28) 에이슬립 대표는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미국 시애틀주에 본사를 둔 ‘아마존닷컴(아마존)’에서 걸은 전화였다. 아마존은 쇼핑몰,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음악 스트리밍, 클라우드를 비롯해 10종이 넘는 서비스를 전 세계에 제공하고 있다. 시가총액만 1600조원이 넘는다.
아마존 측은 자사 인공지능 비서(AI 스피커)인 ‘알렉사’에 에이슬립의 수면 진단 AI를 넣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21′이 막 끝난 뒤였는데, 이 전시회에서 에이슬립 기술력을 눈여겨 본 아마존 측이 협력을 제안한 것이다.
전화 이후 아마존 측과 격주로 꾸준한 미팅을 열어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했고 마침내 지난해 8월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아마존 알렉사 공식 협력사로 선정됐다. 에이슬립은 이르면 내년 상반기 알렉사에서 수면 진단 AI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에이슬립이 개발한 수면 진단 AI는 사용자가 수면 중에 내는 숨소리를 기반으로 수면 상태를 분석한다. 따로 비싼 장비를 들일 필요 없이 스마트폰에 내장된 마이크만 있어도 사용자가 자면서 호흡하는 소리를 듣고 수면 상태를 파악한다.
이전에는 수면 상태를 진단하려면 병원에 가서 머리, 가슴, 배, 팔다리에 각종 센서를 붙이고 잠을 자야 해서 불편했다. 1회 검사 비용이 12만원에 이른다. 반면 에이슬립의 수면 진단 AI는 몸에 아무 것도 붙이지 않는 비접촉 방식이다. 현재 애플 스토어를 통해 무료 서비스 중이다. 내년 상반기부터 유료 모델을 도입할 계획이며 구독료는 한 달에 5000~1만원 수준이 될 전망이다.
에이슬립은 기술 개발을 위해 분당서울대병원 등 여러 대학병원 신경과와 협업, 심층학습(딥러닝) AI에 3000명 넘는 환자들의 수면 중 소음을 학습시켰다. 지난 9월부터는 미국 스탠퍼드대 수면 연구소와도 연구를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AI 수면 측정 기술이 임상에서 유효하다는 논문을 수면의학 부문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 앤드 사이언스 오브 슬립’에 게재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카이스트(KAIST) AI대학원에서 석사를 밟고 미국 실리콘밸리 드레이퍼대에 진학하는 등 창업 기반을 차근차근 다져왔다. 하지만 그 역시 두 번의 실패를 맛봤다. 2016년에는 변호사가 저렴한 비용에 원격으로 법률자문을 제공하는 플랫폼 사업, 2019년에는 스마트폰 배터리 폭발 위험을 감지해주는 AI 서비스 사업을 꾸렸으나 모두 실패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배터리 제조사 견제에 막혀 회사를 접을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 대표는 그 뒤로 권력 집단이나 대기업의 압력을 받을 일 없이 기술력만으로 승부를 겨룰 수 있는 분야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미국, 유럽 등 생활수준이 높은 나라일수록 수면에 문제를 겪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발견하고 수면테크 기업인 에이슬립을 창업했다.
두 번의 실패 끝에 시작한은 재도전 성공적이었다. 에이슬립은 지난해 5월 시리즈A로 17억원을 투자받은데 이어 올해 4월 시리즈B 투자로 160억원을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카카오벤처스와 삼성벤처투자, 하나은행 등이 투자금을 넣었고, 그 과정에서 900억원 규모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2020년 창업 후 1년 9개월 만에 얻은 성과였다.
이 대표는 코스닥, 유가증권시장 상장 없이 곧바로 미국 나스닥에 에이슬립을 상장하는 계획을 그리고 있다. 내년 CES 참가를 확정했고, 시가총액이 1800억달러(258조원)에 가까운 미국 제약사 ‘애보트’와 같은 크기의 부스를 배정받은 상태다. 이 대표는 오는 2026년까지 회사를 나스닥에 상장시키는 게 목표라고 전했다. 이 대표를 지난 8월 17일 서울 강남 테헤란로 KT선릉타워에 있는 사옥에서 만났다.
一 수면테크 기업 ‘에이슬립’을 창업해 성공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두 번의 실패를 겪었다. 지난 2016년에는 변호사가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원격 법률자문을 제공하는 플랫폼 기업을 세웠다. 그러나 지금 로톡이 겪고 있는 것처럼 대한변호사협회 측 압력에 시달렸다. 햇병아리 스타트업이 거대 이익집단과 맞서게 된 것이다. 경험이 부족했던 탓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고, 결국 내부에서 분열이 생긴 끝에 사업을 접게 됐다.”
一 배터리 관련 AI 사업도 했던 걸로 안다.
“그게 두 번째 실패다. 2019년에 스마트폰, 전기차 등에 쓰이는 리튬 배터리의 수명과 폭발 위험 등을 감지해주는 AI를 개발해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시 리튬 배터리 폭발 문제가 상당한 이슈였기에 잘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배터리 제조사 입장에서 폭발 이슈는 최대한 조용히 해결하고 싶은 건이었다. 때문에 배터리 제조사들이 우리 AI 기술을 도입할 리가 없었다. 우리 기술을 공식적으로 가져다 쓰는 순간 제품 결함을 대외적으로 인정해버리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우리가 고객이라 생각했던 기업들에게 오히려 견제와 압박을 당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이 사업도 오래 가지 못했다.”
一 실패를 거치며 배운 것들이 에이슬립 창업에 도움이 됐나.
“물론이다. 세 번째 창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건 ‘블루오션’ 시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법률자문 플랫폼은 사실상 대형 로펌과 변호사, 그리고 그들로 이뤄진 강력한 이익집단이 경쟁상대다. 스타트업이 싸워서 이기기 어려운 상대들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업계로 들어가려 했다. 그 다음으로는 기술이 곧 돈이 되는 단순한 시장을 찾았다. 배터리 AI는 기술이 좋을수록 고객층인 기업들이 서비스를 회피하는 분야였다. 이에 경쟁과 외부 압박이 덜하면서 일반 소비자 수요가 높은 산업을 물색했는데, 그게 수면테크였다.”
一 수면테크 시장의 특징은 뭔가.
“수면테크는 헬스케어 산업 범주에 들어간다. 보통 잘 사는 나라일수록 헬스케어 산업도 발전하기 때문에 웬만한 병들은 솔루션(해결방안)이 다 나와있다. 그런데 수면 만큼은 그렇지가 않았다. 수면장애는 다른 병들과 달리 미국, 유럽 등 생활수준이 높은 곳에서 더 큰 문제가 된다. 괜히 ‘선진국병’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은 국내 환자가 2015년 45만명에서 2020년 67만명으로 늘어났다. 미국 성인 4명 중 3명이 수면장애를 겪는다는 통계도 있다. 선진국 수요가 높은데 마땅한 솔루션이 없는 분야가 바로 수면테크였던 것이다. 곧바로 이 쪽 분야 창업을 계획했고 2020년 6월 에이슬립을 세웠다.”
一 에이슬립의 솔루션은 어떤 식으로 작동하나.
“우리가 개발한 앱(애플리케이션) ‘슬리’를 스마트 기기에 켜놓고, 잘 때 기기를 옆에 두기만 하면 된다. 스마트기기에 내장된 마이크가 소비자의 숨소리, 이불 뒤척이는 소리 등 수면 중 소음을 모두 기록하고 이를 분석해 수면 상태를 진단한다.”
一 너무 간단한 것 같은데 원리가 뭔가.
“딥러닝(심층학습) AI다. 분당서울대병원을 비롯한 국내 대학병원들과 협업해 얻은 3000여 명의 수면 데이터를 AI에 학습시켰다. 이를 통해 이불 뒤척이는 소리, 집 밖에서 나는 소리와 같은 소음들 사이에서 호흡소리만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수준까지 기술력을 끌어올렸다. 이렇게 사용자 호흡소리만 따오면 그 패턴을 분석해 수면 단계를 판독해내는 방식이다.”
一 정확도는 어떤가.
“병원에서 하는 수면다원검사 정확도의 60~70% 수준이다. 수면 상태는 기상, 얕은 잠, 깊은 잠, 렘(REM) 수면 등 4단계로 나뉜다. 수면다원검사와 비교해 에이슬립 솔루션 정확도는 기상 77%, 얕은 잠 73%, 깊은 잠 46%, 렘 수면 66%다.”
一 그 정도면 수면다원검사를 받는 게 나은 것 아닌가.
“단순히 이 숫자만 보면 발전할 여지가 많은 게 사실이지만, 에이슬립 솔루션의 특장점은 ‘비접촉식 검사’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수면다원검사는 일단 환자가 병원에 가야하고 머리, 가슴, 배, 팔다리 등 온몸에 각종 센서를 붙인 채 잠에 들어야 한다. 반면 에이슬립 솔루션은 스마트기기에 내장된 마이크 이외엔 필요한 게 없다. 또 수면다원검사는 수면무호흡증, 과다수면장애, 기면증 등 증상이나 진찰소견이 없다면 한 번 검사에 50만~60만원정도 비용이 든다. 많은 현대인들이 수면장애를 일상적으로 격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비용 부담이다.”
一 정확도는 발전할 여지가 있는 건가.
“현재 국내에서 데이터를 만들기 위해 협력하는 병원 수를 늘리고 있다. 임상 논문도 올해 나오기로 예정된 게 3개나 있다. 지난 9월부터는 미국 스탠퍼드대 수면연구소와도 협업 중이다. 딥러닝 AI 기반 솔루션이기 때문에 데이터가 늘면 정확도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에이슬립은 이제 창업한 지 2년 조금 넘은 신생 회사다. 기술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본다.”
一 아마존 측에서 먼저 접근한 이유도 그런 가능성을 봤기 때문인가.
“그렇다. 에이슬립은 CES 2021에 참가해 기술을 소개했는데 그 때 아마존 측 눈에 들어갔다. 덕분에 2021년 1월 아마존 측 AI 스피커인 ‘알렉사’의 자동차 사업부에서 관심을 먼저 표했다. 알렉사도 종류가 여러가지인데, 첫 제안은 자동차에 탑재되는 AI 스피커에 에이슬립 솔루션을 넣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자동차용 AI 스피커에 수면테크를 넣기엔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후 알렉사와 스타트업을 이어주는 아마존 내 부서인 ‘알렉사 스타트업’과 접촉해 5개월간 2주에 한 번 꼴로 협력 방식과 기술적 부분을 논의했다. 결국 지난해 8월 에이슬립이 아마존의 공식 협력사로 선정됐다. 국내 기업들 중에서는 최초였다.”
一 국내 증시보다 미국 나스닥에 먼저 상장할 계획인 걸로 아는데, 아마존 제안을 받고 자신감을 얻은 건가.
“아마존 측 제안 이전부터 나스닥 상장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었다. 헬스케어 산업 중에서도 수면테크 분야는 전 세계 선진국들에서 모두 수요가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국내보다는 헬스케어 산업의 최전선에 있는 미국 진출을 먼저 해야 경쟁력 있게 치고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업력이 짧은데도 CES에 꾸준히 나섰던 것도 그런 이유다. 아마존은 에이슬립의 기존 플랜에 추진력을 더해준 셈이지, 나스닥 상장을 먼저 하겠다 결심하게 해준 요인은 아니다.”
一 향후 목표가 있다면.
“수면 케어를 시작으로 고객들의 생활 전반에 걸쳐 건강에 도움을 주는 기업이 되고 싶다. AI 솔루션을 기반으로 한 ‘토탈 헬스케어 기업’이 되는 게 목표다. 수면은 그 목표를 위한 시작점이자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기업 활동을 통해 사람들 삶을 바꾸고 싶다는 건 내 오랜 신념이다. 회사가 기술력을 인정받고 투자 유치도 잘 되면서 합병 제의를 받은 적도 여러 번 있지만 모두 거절했다. 매일 매일 고객들에게 어제보다 더 나은 하루를 선사하는 기업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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