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일승천'하는 일본 군사력..방위비 440조 원 '돈 폭탄' 투하

현영준 yjun@mbc.co.kr 2022. 10. 15.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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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방위성 [자료사진]

■ 욱일승천하는 일본 군사력

일본 방위성은 요즘 매우 분주합니다. 어느 날은 러시아 군용기와 전함이 도발하고, 잊을만하면 북한이 머리 위로 미사일을 쏘거나 중국이 오키나와로 탄도미사일을 쏘기 때문입니다. 북한, 중국, 러시아가 돌아가면서 위협을 하는 탓에 방위성은 거의 매일 군사력 강화안을 내놓습니다.

① 장사정 순항 미사일 1,000기 배치 지난 8월, 요미우리신문은 육상자위대가 북한이나 중국까지 공격 가능한 사거리 1,000km의 장사정 순항 미사일을 2024년까지 1,000기 이상 배치할 계획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당연히 우리나라도 사거리에 들어갑니다.) 현재 보유중인 일본의 12식 지대함 유도탄의 사거리를 늘리는 개량형으로, 실전 배치될 경우 정말로 '적 기지 공격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② JAXA 극초음속 미사일 엔진 시험비행 일본우주항공연구소JAXA가 지난 7월, 가고시마현에서 '스크램 제트' 엔진의 시험비행을 마쳤습니다. 공식 발표는 '극초음속 비행체'의 엔진 시험 비행이었지만, 그동안 JAXA에 개발비 175억 원을 대 준 건 방위장비청입니다. 그래서 일본이 곧 극초음속미사일을 보유할 거란 우려가 나왔습니다.

③ 차세대전투기FX, 영-일 공동개발 요미우리신문은 지난 5월, 일본과 영국이 함께 차세대 전투기 개발에 나섰다고 보도했습니다. 영국 차세대 전투기 '템페스트' 개발엔 이미 스웨덴이 합류해 있습니다. 여기에 군수산업강국 이탈리아까지 힘을 보탠다고 합니다. 템페스트는 증강현실, 인공지능을 접목한 전투기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일본도 AR, AI를 갖춘 제6세대 스텔스기를 갖게 됩니다.

④ 2만 톤급 '공룡' 이지스함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큰 배수량 2만 톤급 이지스함을 2척이나 건조합니다. 미국이나 중국도 1만 4천 톤을 넘지 않습니다. 신형 이지스함엔 ①에서 개발한 사거리 1,000km의 순항미사일 등 각종 첨단 무기를 탑재할 계획입니다. 1척당 5조 원 정도가 든다는데, 만드는데만 5년 넘게 걸려서 2027년에 1척, 2028년에 1척을 취역시킬 예정입니다.

⑤ 독일 유로파이터와 일본 F-2 전투기의 연합훈련 제일 황당한 뉴스로 꼽힙니다. 2차 대전 전범국인 독일과 일본이 '2022년 9월'에 전투기 연합훈련을 했습니다. 심지어 일본, 독일의 공군참모총장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앞으로도 양국 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라며 "일본과 독일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것은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 그대로 일본의 군사력이 욱일승천旭日昇天하고 있습니다.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 이즈모 [자료사진: 일본 해상자위대 제공]

■ 방위비에 440조 원 '돈 폭탄' 투하

이를 위해 2027년까지 440조 원의 방위비가 들어갑니다. 올해부터 방위비를 점증적으로 늘려서 5년 뒤에는 현재의 2배로 방위예산의 '덩치'를 키우겠다는 겁니다.

'군비확장 5개년계획'이라고 이름 붙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올해 일본 방위비는 54조 원으로 우리나라 국방예산과 비슷합니다. (우리나라 국방예산의 일부는 건물을 짓는 데 쓰고 있어 실제론 더 적을 겁니다)

2022년 기준 한국의 군사력은 세계 6위, 일본은 세계 5위입니다(Global Firepower Index).

우리는 '전력질주'를 한 결과이고 일본은 '몸풀기'만 한 결과입니다. 앞으로 440조 원을 쏟아붓고 '전력질주'한다면 5년 뒤 일본은 우리가 넘볼 수 없는 군사 대국이 됩니다.

갑자기 이 어마어마한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 일본 정부는 고민 중입니다.

그래서 '증세'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기업에게 법인세를, 개인에게 소비세를 더 걷어서 매년 50조 원 이상 늘어나는 방위비 증액분을 채우겠다는 겁니다.

지금 일본은 유례없는 엔저, 기록적인 물가상승, 내수침체와 무역적자로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증세'를 한다면 일본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은데, 놀랍게도 NHK의 여론조사 결과 일본 국민의 55%가 방위비 증액에 찬성하고 나섰습니다.

마른 수건을 짜내면서까지, 일본 정부뿐만 아니라 일본 국민도 '군사력 증강'에 목말라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일본이 '관민일체'가 되어 군사력 증강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구한말 청나라의 군사력에 맞서기 위해 지금처럼 '군확8개년계획軍拡八カ年計画'을 밀어붙였던 적이 있습니다.

■ 군확8개년계획軍拡八カ年計画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공부하고 온 김옥균 등 친일파 개화당 세력이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킵니다. 청나라가 수구세력들과 손잡고 조선을 속국으로 삼으려 하자 일본군을 끌어들여 수구파를 처단하고 개혁정부를 수립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청나라 군대와 마주친 일본군은 김옥균을 배신하고 도망쳤습니다. 정변은 3일천하에 그쳤고, 핵심인물들은 일본으로 망명했습니다.

우리 역사 교과서에선 '비록 일본을 끌어들이긴 했으나 최초의 근대화 운동이라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평가돼 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이 무슨 양두구육같은 소리인가 했던 기억이 듭니다.

우리나라에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지만, 갑신정변은 일본을 '바꾼' 사건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일본이 군국주의로 가는 길을 열어준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갑신정변을 '조선사건朝鮮事件'이라 부르며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먼저, 친일파를 양성해 조선에서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버립니다. 대신 군사력으로 청나라를 몰아내고 조선을 차지한다는 전략을 세웁니다.

둘째, 일본의 군국화입니다. 갑신정변에서 일본군은 청나라 군대에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충격에 빠진 일본에선 군비 확장론이 나왔습니다. 당시 침체된 일본 경기에도 불구하고 증세를 단행해, 나라 예산의 20~30%까지 군비를 확장했습니다. 이를 '군확8개년계획軍拡八カ年計画'이라고 불렀는데, 2022년의 '군비확장 5개년계획'과 너무나도 닮았습니다.

셋째는 탈아론脱亜論의 등장입니다. 조선과 청나라, 그리고 일본이 함께 개화하여 서양 제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자던 일본은 '갑신정변'을 계기로 조선과 청에 대한 기대를 버립니다. 메이지유신의 개혁가였던 후쿠자와 유키치는 "이제 일본은 동양의 나쁜 친구들을 버리고 서양 제국처럼 독자적인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탈아입구脱亜入欧, 그건 일본도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본격적인 식민지 침략전쟁에 나선다는 의미였습니다.

갑신정변 10년 후 청일전쟁(1894), 그리고 10년 후 러일전쟁(1904). 모두 일본이 승리했고 일본은 조선과 전쟁을 한 적이 없지만, 조선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자료사진

■ 동지에서 침략자로 표변한 일본

탈아론脱亜論을 주장한 일본의 개혁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는 김옥균, 박영효의 스승이었습니다. 김옥균 등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본받기 위해 갑신정변을 일으킨 겁니다. 사상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일본과 '동지'였던 셈입니다.

"조선과 청나라, 그리고 일본이 함께 개화하여 서양 제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자"

그러나 갑신정변이 자신들의 뜻대로 성공하지 않자, 일본은 표변했습니다.

특히 훗날 '일본 육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전면에 나서면서 일본 육군의 병력이 급격히 증가합니다. 1885년 병력배증계획에 따라 3개 사단이었던 일본군이 7개 사단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1876년 39,315명이었던 일본군은 군확8개년계획軍拡八カ年計画이 끝날 무렵인 1893년엔 73,963명으로 급증했습니다.

일본 학자들은 '국토방위군國土防衛軍'이었던 일본 육군이 '외정군外征軍'으로 바뀐 전환점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외정군은 외국을 정벌하는 군대입니다. 그리고 '외국'은 조선을 뜻했습니다.

이 모든 과업을 수행한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자신이 손수 육성한 외정군外征軍을 조선으로 몰고 와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고, 그 공로로 '공작'의 작위를 받습니다.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조선 침략의 반석을 닦은 야마가타 아리모토는 나중에 일본 최초의 내각 총리가 됩니다.

■ 역사는 흐르되, 반복된다

이제와서 후쿠자와 유키치의 제자, 김옥균을 탓해봐야 역사는 바뀌지 않습니다. 그들은 청나라의 속국이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일본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그들의 강변強辯대로 '친일'이 아니라 조국을 위한 '우국충정'의 발로였습니다.

다만, 만약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일본을 몰랐다는 '무지의 죄'일 것입니다. 임진왜란을 겪고도 일본이 진정으로 조선의 동맹이 될 수 있을 거라 순박하게 믿었던 죄입니다. 갑신년, 무지에서 싹튼 우국충정의 죗값은 26년이 지난 경술년에 나라를 빼앗기는 국치로 뼈아프게 치러야 했습니다.

대한민국과 일본의 동맹.

다시, 김옥균의 그림자가 우리 역사에 드리워졌습니다.

현영준 기자 (yjun@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2022/world/article/6417193_356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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