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체크K] 신종 피싱 '통장 협박' 사기, 꼼짝없이 당해야 할까?

임주현 2022. 10. 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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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피해 사례

A 씨는 최근 자신이 이용하는 은행에서 "전기통신금융사기 이용계좌로 신고접수돼 지급정지(계좌 동결) 됐다"는 안내 문자를 받았습니다. 처음엔 보이스피싱 문자겠거니 했던 A 씨.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계좌를 확인해 보니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15만 원이 입금돼 있었습니다. 은행 고객센터로 전화해 물어보니 당황스런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A 씨 계좌로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돈이 송금됐습니다. 보이스피싱에 이용된 계좌는 피해자가 신고하면 은행에서 즉시 지급정지가 가능합니다. 이 계좌 뿐 아니라 내일 아침이 되면 다른 은행 계좌들도 비대면 거래가 정지될 예정입니다."

A 씨는 "전혀 알지 못하는 돈"이라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지급정지를 풀 수 있는 방법을 문의해도 상담사로부터 "안타깝지만 도울 방법이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계좌 정지에 발만 동동 구르던 A 씨는 이후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연결된 사기범으로부터 "150만 원을 주면 지급정지를 풀어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최근 한 인터넷 카페에 올라와 화제가 됐던 사기 피해 사례입니다. 확인 결과 상담 과정에서 상담사가 일부 안내를 잘못한 부분이 있었고, 이후 우여곡절 끝에 3일 만에 문제가 해결됐지만 요즘 이런 방식의 '통장 협박(이하 통협)' 사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통협' 사기는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면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금융기관이 일단 범죄수익금으로 추정되는 돈이 흘러간 계좌를 모두 거래 정지시킨다는 점을 악용한 신종 수법입니다. 사기범들은 이런 식으로 피해자의 계좌를 정지시키고는 텔레그램 등으로 접근해 "돈을 주면 정지된 계좌를 풀어주겠다"고 꼬드겨 거액을 뜯어냅니다.

피해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상황입니다. 특히 매일 활발하게 돈이 돌아야 하는 자영업자나 법인 입장에서는 피해가 더 클 수 있습니다. 금융당국과 경찰청은 올해 들어 이런 통협 사기가 크게 늘어났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온라인에서는 '언제든 나도 당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통협 사기에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내용이 확산하는 분위기입니다. 여러 언론 매체의 보도를 봐도 뾰족한 방법이 없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식입니다. 해당 기사들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댓글이 다수 달렸고, 관련 내용을 언급한 SNS나 인터넷 게시판 글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댓글 반응 재구성


통협 사기, 정말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범죄'일까요? 혹시 잘못 알려진 부분은 없는지, 현 시점에서 취할 수 있는 예방책은 없는지 따져봤습니다.

■ 송금인·수령인 합의 시 바로 지급정지 해제 가능

통협 피해자가 대응할 수 있는 방법, 있습니다.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은 은행의 중재 하에 송금인과 수령인이 합의하는 것입니다. 은행이 송금자 정보를 수령인에게 직접 알려주는 건 불법이기 때문에 중재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 양측 간 합의를 이끌어냅니다. 빠르면 하루 만에도 지급정지를 해제할 수 있다는 게 금융권의 설명입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이렇습니다.

①'수상한 돈'이 입금됐다면 우선 해당 은행으로 전화를 걸어 문의하면 됩니다. "모르는 사람 돈이 입금됐는데 실수로 잘못 송금했거나 보이스피싱 범죄 수익금일지도 몰라서 문의한다"고 하면 은행에서 담당자를 연결해 줄 겁니다. 금융회사는 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금융사기 피해 방지 조치를 해야 하기 때문에 관련 담당자가 있습니다.

②담당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은행은 송금자에게도 연락을 취해 입금 경위를 조사하게 됩니다. 통협 피해자 계좌로 돈을 보낸 사람은 십중팔구 보이스피싱 피해자일 겁니다. 피싱범들에게 속아 수령자 계좌로 돈을 보냈거나, 피싱범들이 심어 놓은 원격 악성앱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송금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송금자가 경찰에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를 신고했기 때문에 통협 피해자 계좌가 지급정지된 거라고 보면 됩니다. 확인 결과 보이스피싱 피해로 인한 송금이 맞고 수령도 범죄 연루 정황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면 은행이 양측 간 합의를 권유합니다.

③최종 합의를 위해 은행은 송금자에게 계좌 지급정지를 풀 수 있는 '피해구제 취소신청서'를, 수령인에게는 입금된 돈을 보이스피싱 피해자인 송금자에게 반환하겠다는 '자금반환 동의서'를 써서 제출할 것을 요구하게 됩니다. 은행 측 중재에 따라 각자 은행 창구를 방문해 해당 서류를 제출하면 지급정지가 해제됩니다. 카카오뱅크 같은 인터넷 전문은행은 전화상으로 모든 절차를 진행할 수 있고 필요할 경우 대면센터로 가서 처리할 수도 있습니다.

④은행은 송금자와 수령자의 평소 입·출금 패턴 등을 분석해 의심스러운 거래를 탐지하고 당사자 확인을 통해 범죄 연루 여부를 판단합니다. 특히 송금자가 피해구제 취소신청을 할 때 반드시 경찰서에서 발급하는 '사건사고 사실확인원'을 함께 제출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범죄 피해 여부를 재차 확인하게 됩니다. 사건사고 사실확인원은 범죄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범죄 피해를 입었고 경찰서에서 관련해서 어떤 조사를 받았는지 등을 확인해주는 공문서입니다.

은행은 수사기관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사기 이용 계좌로 의심된다는 정보를 받기도 합니다. 계좌정지가 풀려도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수사기관의 수사는 계속됩니다. 만약 은행이 해당 민원을 자의적으로 계속 무시할 경우 민사소송에 걸릴 수 있어 가급적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게 금융감독원과 은행 측 설명입니다. 해당 민원 발생 시 금감원은 은행의 적극적 중재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는 실제 현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하루에도 10건 이상씩 이런 민원이 발생할만큼 워낙 많아져서 내부적으로 대책을 많이 마련해 놨습니다. 은행 실무자들끼리 공유하는 매뉴얼도 있고요. 그래서 빠르면 하루만에도 풀립니다. 어제 지급정지 됐는데 오늘 풀리는 경우도 많아요."
- 시중은행 금융사기대응팀 관계자

"지금으로선 금융기관이 중계해서 해결하는 게 가장 긍정적이고 빠른 방법입니다. 저희는 인터넷 은행이다 보니까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카카오뱅크 관계자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은행에 피해구제 신청취소를 내면 바로 계좌정지는 해제가 됩니다."
- 고병완 금융감독원 금융사기대응팀장

■ 송금자와 합의가 안 될 경우에는 어떻게?

앞서 살펴본 것처럼 대부분 송금자와 수령자 간 합의를 통해 정지된 계좌를 풀 수 있지만, 일부 피해구제 신청취소가 안 될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이스피싱으로 인해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는 송금자가 범죄 연루 정황이 없다는 은행 측 설명에도 끝까지 수령자와 합의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매우 드물긴 하지만 송금자를 특정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해결 방법은 있습니다. 엉뚱한 돈이 들어와 계좌가 지급정지된 통협 피해자가 은행에 이의신청을 하는 겁니다. 이의신청이 받아들여 지면 지급정지를 풀 수 있습니다. 이의신청 절차는 해당 은행 측에 문의하면 알려줍니다.

다만, 이게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려면 스스로 '사기 이용 계좌가 아니라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소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매일 생업으로 바쁜 '생활인' 입장에서 '범죄 연루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처리에 수개월씩 걸릴 수 있어 효율적이지도 못합니다. 이의신청보다는 송금자 설득이 훨씬 현실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이 방법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텔레그램 등으로 사기범과 나눈 대화를 캡처하는 등 자신이 통협 피해자라는 점을 입증할만한 자료를 최대한 확보해서 제출하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밖에 수사기관이나 금융감독원이 '정지된 계좌가 사기 이용 계좌가 아니라고 인정하는 경우'에도 지급정지가 풀릴 수 있지만, 이는 수사 진행 상황에 따른 것이므로 한시가 급한 통협 피해자 입장에선 마찬가지로 우선하여 기대할만한 방법이 아닙니다.

통협 피해자가 사기범으로부터 협박받은 텔레그램 대화 내용 재구성


■ 피해자가 직접 나서야 하는 문제, 개선할 수 없나?

이처럼 통협 사기 시도에 대처할 방법들이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피해자가 문제 해결에 능동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점에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피해자가 직접 은행에 연락해 범죄에 연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고 관련 서류를 준비해서 제출하는 등 번거로운 점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런 방식의 대응만 가능한 이유는 현행법의 한계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 피해를 방지하고자 2011년 제정된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약칭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이 지금까지 살펴본 모든 절차의 법적 근거입니다.

그런데 현행법이 주로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재산상 피해를 신속히 회복하는 측면'에 집중돼 있다 보니 최근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사기 수법에는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즉, 보이스피싱 범죄의 일차적 피해자 구제에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신종 사기로 인해 발생한 통협 사기 피해자 같은 부차적 피해자들에 대해선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힘든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고려할 부분이 많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빠지지 않습니다.

"현재 금융기관의 판단에 따라 지급정지 해제 여부를 결정하고 있는데 해제 요건이 관련 법으로 더 상세히 규정된다면 저희 입장에서도 부담을 덜 수 있죠."
- 시중은행 금융사기대응팀 관계자

"지급정지라는 제도를 완화하거나 없애면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길 거라서 고민이 많습니다. 일단 저희는 통협 사기가 늘어난 만큼 대응법을 이용자들께 최대한 널리 알려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카카오뱅크 관계자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이 처음 만들어질 땐 이런 상황을 예상 못 한 거죠. 그래서 지급정지 해제 요건을 보완하는 등의 방안도 필요해 보이는데, 피해자 구제라는 현행법의 장점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시대에 맞게 법령 개정을 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많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 고병완 금융감독원 금융사기대응팀장

"금융기관의 재량을 좀 더 발휘할 수 있게 하고 처리 절차를 지금보다 간소화할 필요가 있지 않으냐는 생각은 합니다. 그런데 또 바로 그렇게 하자니 걸리는 문제가 많거든요. 금감원에서 은행권과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것 같은데 저희가 뭐라고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 김태훈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경제범죄수사과 경감

■ 효과적인 예방책은?

사후 대처보다 중요한 건 예방일 겁니다. 어떻게 하면 통협 사기를 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우선 본인의 계좌번호와 연락처를 공개된 인터넷 공간에 함부로 공개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기범들은 주로 인터넷 공간에 공개된 계좌번호와 연락처를 함께 수집해 활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야 피해자의 계좌를 정지해놓고 연락을 취해 돈을 뜯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해당 정보를 수집하기 쉬운 법인이나 자영업자들이 통협 사기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일반 개인 피해자의 경우는 불법 도박 사이트를 이용했거나 다른 범죄에 연루된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설명입니다.

전문가들은 은행의 '입출금 내역 알림' 서비스를 신청해 활용하는 방안도 권고합니다. 수상한 입금 내역이 확인되면 바로 은행에 문의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 취재지원:강혜림 SNU팩트체크센터 인턴기자 kangnews.hi@gmail.com
인포그래픽: 김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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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현 기자 (le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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