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 태풍 힌남노 능가하는 슈퍼태풍 2~3년마다 올 수도

남성현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2022. 10. 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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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남노로 많은 비가 내리면서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 일대 도로가 불어난 하천에 휩쓸려 유실됐다. 연합뉴스 제공

태풍 '힌남노'는 역대급으로 강력했다. 힌남노는 8월 28일 서태평양 중위도 해역에서 태풍으로 발달했다. 이후 서쪽으로 이동하다가 대만을 거쳐 한반도로 북상했다. 9월 6일 오전 경남 거제시에 상륙했고, 동해로 빠져나갈 때까지 한반도 남부 지방에 상당한 피해를 남겼다. 9월 8일 기준으로 사망자 11명, 실종자 1명, 부상자 3명이 발생했다. 주택 침수 피해만 8370 건이 발생했다. 왜 이렇게 강력한 태풍이 한반도를 찾은 걸까. 해양학자의 시선으로 이번 태풍의 발생 배경을 들여다봤다.

힌남노는 여러 면에서 이례적인 태풍이었다. 우선 다른 태풍처럼 저위도 해상에서 발생해 북상한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북위 25°보다 북부의 중위도 해상에서 이처럼 강력한 태풍으로 발달한 경우는 없었다(힌남노는 북위 26.9°에서 발생). 

중위도 해역의 해수 표면 수온이 매우 높게 유지되며 나타난 것으로 여겨진다. 최근 한반도 남쪽의 동중국해를 포함해 북서태평양 해수 표면 수온이 전반적으로 평년보다 1°C 정도 높게 유지된 점과 무관하지 않다는 뜻이다.

태풍 경로도 기존의 여느 태풍들과 달리 독특한 궤적을 보이며 이동했다. 보통은 무역풍이 우세한 저위도 해상에서 발달해 북상하면서 서쪽으로 이동한다. 그러다가 편서풍이 우세한 중위도 해상에서 북상하면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시계방향의 회전 경로를 보인다. 

그런데 태풍 힌남노는 중위도 해상에서 발달해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며 남서진하다가 급격히 꺾인 후 북상하는 기이한 경로를 보였다.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과, 태풍의 남쪽에 발달했던 열대 저압부의 영향을 받아 이런 경로로 이동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위도에서 발달해 남서진했다가 북상하는 동안 다시 ‘초강력’ 단계로 재발달한 점 역시 독특하다. 태풍 강도는 중심 부근 최대풍속에 따라 ‘약-중-강-매우 강-초강력’ 등 5단계로 분류한다. 과거에는 ‘약-중-강-매우 강’으로 분류했는데, 최근 초속 54m 이상을 뜻하는 초강력 등급을 신설했다. 9월에 발생한 힌남노는 초강력 단계를 기록했다.

보통 태풍은 저위도의 따뜻한 해수가 활발히 증발해 에너지를 공급받으며 강력하게 발달한다. 그 뒤 북상하면서 해수의 수온이 상대적으로 낮은 중위도에 이르면 약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태풍 힌남노는 남서진해 대만 인근 해역에서 도달했을 때 ‘매우 강’으로 다소 약화했다가 오히려 중위도로 북상하면서 다시 강화해 초강력 태풍으로 재발달했다.

힌남노는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태풍 중 역대 세 번째로 중심기압이 낮았다. 중심기압이 낮을수록 중심으로 수렴하는 기류와 상승 기류가 강해 위력적인 태풍이다. 힌남노는 대한민국 역사를 통틀어 세 번째로 강한 태풍이라는 뜻이다. 

힌남노는 9월 6일 오전 5시경 부산 오륙도에서 중심기압이 955.9hPa을 기록했다.  1959년 태풍 사라(951.5hPa), 2003년 태풍 매미(954hPa)의 뒤를 잇는 수치다. 

일 최대풍속은 초속 37.4m로 그 강도에 비해 비교적 작은 편이었지만 이것도 역대 8위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최대 순간풍속은 제주에서 초속 43.7m, 통영에서 초속 43.1m를 기록하는 등 제주 산간 지방과 남해안 일대에서 강풍이 불었다. 누적 강수량도 제주에서만 1000mm 이상을 기록됐다. 특히 포항에서는 시간당 최대 110mm가 넘는 비가 쏟아지며 도심 곳곳이 범람하고 정전이 발생하는 등 큰 피해를 남겼다. 

 

요즘 들어 기록적 태풍이 부쩍 잦아졌다?

강력한 태풍으로 큰 피해를 경험한 건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최장기간 장마를 경험했던 2년 전에도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이 연달아 북상하는 등 강력한 태풍이 찾아왔다. 당시 전국 곳곳에서 강풍과 호우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과거 10여 년 동안에도 매년 태풍 피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쯤 되면 기록적 태풍이 최근 들어 부쩍 잦아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태풍은 우리나라에 가장 큰 피해를 주는 자연재해다. 우리나라는 오랜 기간 태풍 방재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방재 효과는 꽤 성공적이었고, 실제로 태풍으로 인한 피해 규모는 그간 지속해서 감소했다. 

1959년 태풍 사라가 한반도를 강타했을 때 사망자와 실종자 수는 무려 800명 이상에 달했고, 당시 37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보다 최근인  2002년과 2003년에도 각각 태풍 루사와 매미가 한반도를 관통해 100명 이상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했고, 재산피해는 수조 원에 이르렀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2010년대 말까지 태풍으로 인한 피해는 꾸준히 줄었다. 실제로 매년 태풍으로 인한 재산피해 규모는 1조 원을 넘지 않는 수준으로 유지됐다. 방재 효과가 어느 정도 발휘된 것이다. 

그러던 흐름이 몇 년 사이에 달라지기 시작했다. 2020년 제8호 태풍 바비, 제9호 태풍 마이삭, 제10호 태풍 하이선이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연속적으로 한반도를 강타했다. 기록적으로 강한 바람과 호우는 수많은 인명피해와 1조 원이 넘는 재산피해를 줬다. 

특히 태풍 마이삭 접근 시에는 제주 한라산 남벽에서 일 강수량이 1000mm에 달해 당시까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태풍 바비 때 전남 신안군의 가거도에서는 순간풍속이 초속 66m에 달해 이전 최고 기록을 넘었다.

자료  기상청 / 일러스트 동아사이언스

태풍의 고향 ‘웜풀’ 2배 커졌다  

실제로 기후변화가 심화하며 한반도 영향 태풍뿐만 아니라 허리케인, 사이클론으로 불리는 열대성 저기압의 발생 빈도나 강도, 전파 경로 등의 주요 특성이 전반적으로 변화를 겪고 있다. 그 특성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사전에 잘 대처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태풍 피해가 급증하는 일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구온난화로 인해 해표면 수온이 상승하면서 열대성 저기압 활동이 전반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경고해 왔다. 상위 1% 이내의 가장 강력한 태풍 강도가 증가하고 있는데, 이것이 해수면 수온 상승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따뜻한 해상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상승하여 상공의 찬 대기와 만나 응결할 때 방출되는 잠열(숨은열)이 태풍의 에너지원이다. 이 때문에 해수면 수온이 상승한다는 말은 점점 더 위력적인 태풍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산업화 이후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 증가로 온실효과는 강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지구 안에 열에너지가 점점 더 많이 축적되는 중인데, 그중에서도 해양에 대부분(90% 이상)의 열에너지가 흡수돼 해수의 온도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중이다. 

태풍을 비롯한 열대성 저기압이 만들어지는 열대 해역의 해수 수온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인도양과 태평양에 걸쳐있으며, 해표면 수온이 가장 높은(28°C 이상) 영역인  ‘웜풀(warm pool)’의 확장세가 심상치 않다. 

한반도 면적의 200배 이상 되는 이 웜풀 해역이 기존 면적의 거의 두 배에 가까워질 정도로 확장해왔다. 웜풀 해역 내 해수의 수온도 상승했고, 이러한 웜풀 확장 속도 역시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매년 한반도 면적(23만km²) 만큼씩 증가하다가 최근에는 그  두 배 정도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면적(40만km²) 만큼씩 넓어지고 있다.

 

슈퍼 태풍, 2~3년마다 찾아올 수도

태풍의 에너지원이 되는 웜풀 해역이 확장된다는 건 좋지 않은 신호다. 앞으로 더 습하고 더 강력한 바람을 동반하는 위력적인 태풍을 한반도에 더 근접한 위치에서 마주할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힌남노처럼 중위도 해역에서도 강력한 태풍이 발생하고 한반도에 근접해 다시 강화돼 그 대처를 어렵게 하는 일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다. 

중심 부근의 순간 최대풍속이 초속 67m 이상인 ‘슈퍼 태풍’도 앞으로는 수십 년만이 아니라 10년마다, 아니 어쩌면 2~3년이나 매년 찾아올 수도 있다. 국립기상과학원에 따르면 지금처럼 온실가스 배출을 지속하는 경우 2100년까지 한반도 영향 태풍 발생은 57.5% (1.5배), 태풍의 강도는 42.1%(1.4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모든 자연재해가 마찬가지이지만 사전에 잘 대비하면 그 피해는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후 대책이 아니라 ‘소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선제적 대응책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출발점은 과학이다. 심화하는 기후변화 시대에 날로 진화하는 이례적인 태풍을 과학적으로 잘 이해하고 언제, 어디에, 얼마나 강한 풍속과 얼마나 많은 양의 강우가 발생할지 더욱 정확히 예측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런 과학적 특성을 고려한 태풍 시나리오별 재해지도를 만들고 취약한 지점에 방재 노력을 강화하는 한편 대피 훈련과 교육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기후변화 시대에 방재 대책을 전반적으로 강화하는 일은 이제 생존이 걸린 문제다. 

[남성현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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