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쉽기만 한 일이 어디 있으랴
원망 메일 받은 후 재빨리 사과
잘못 시인하는 건 정말 어렵지만
자신과 상대방 맘까지 해방시켜
나는 잘하는 게 별로 없다. 똥손에 기계치에, 낯선 것은 뭐든 주춤주춤 뒷걸음질 친다. 사람이든 음식이든 기계든 새로운 프로그램이든. 어렸을 적 서울로 전학 갔더니 학교 앞에 떡볶이집이 즐비했다. 웜마? 서울 것들은 떡을 꼬치장에다 볶아묵네이. 그게 내 첫 반응이었다. 한 삼 년 지나 아이들과 떡볶이를 먹기 시작했다. 맛있었다. 지금도 떡볶이는 최애 음식이다. 낯선 것도 좋아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번번이 새로운 것 앞에서 뒷걸음질 친다. 파스타나 피자라는 이름을 듣고도 십 년이나 지나 처음 먹었다. 천생 촌년이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그것도 매우 빠르게 잘하는 게 있다. 잘못을 시인하는 것! 오래전 상처 많은 제자의 상처를 호기롭게 건드렸다가 뼈아픈 원망의 메일을 받았다. 읽자마자 깨달았다. 책임질 수 없다면 남의 상처를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바로 사과의 메일을 보냈지만 녀석의 마음은 이미 굳게 닫힌 뒤였다. 녀석은 근 십 년 가까이 연락이 없었고, 나는 답이 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간혹 사과의 메일을 보냈다. 나로 인해 상처가 더 덧난 건 아닌지 너무 미안해서였다. 얼마 전, 녀석의 전화가 왔다. 그리고 머지않아 참으로 오랜만에 녀석을 만났다. 잘 산다는 말끝에 녀석이 말했다.
“잘못했다고 먼저 말해준 건 선생님뿐이었어요. 그래서 자꾸 선생님 생각이 났나 봐요. 어른들은 그런 말, 절대 안 하잖아요.”
잘 살아줘서 너무 고마웠고, 잘못은 했지만 잘못했노라 말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했노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면 녀석과 나의 연은 다시는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고, 잘못하지 않는 사람도 없다. 순간에야 창피하겠지만 실수든 잘못이든 인정하면 그만이다. 인정하면 그만인 그 쉬운 일이 실상은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아들이 네 살이었을 때 뭔가 잘못을 했다. 뭐였는지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로 사소한 잘못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끝까지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회초리를 들었다. 물론 아프게 때리지는 않았지만 매를 맞고 난 아들은 내 목에 매달려 섧게 울었다. 그러면서도 잘못했다는 말은 끝끝내 하지 않았다. 고작 네 살짜리가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사과한다는 게 나처럼 쉽지 않은 모양이다. 예전에 깔끔쟁이 우리 엄마가 우리 집에만 오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이고, 창틀 쪼깨 딲는 것이 멋이 그리 힘드까이. 젓가락에 행주 꿰가꼬 딲으먼 그만인디.”
그러게. 그 쉬운 일이 나에게는 쉽지 않았다. 귀찮기도 했거니와 눈에 잘 보이지도 않았다. 내가 청소하고 부지런 떠는 게 어려웠듯 누군가는 사과하는 게 그토록 어렵겠지. 그러니 누군가 사과하지 않는다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함부로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한마디만 덧붙이겠다. 엄마가 우리 집 청소를 꼼꼼하게 해주면 날아갈 듯이 상쾌했다. 더러운 건 잘 안 보였어도 깨끗한 건 매우 쾌적했다. 사과도 마찬가지다. 하고 나면 마음의 짐이 덜어지고 죄의식도 가벼워진다. 몸과 맘이 날아갈 듯 가볍다. 뿐이랴. 사과는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몸과 맘까지 가비얍게 만들 수 있다. 그게 사과의 백미다. 제발 잘못했다고 좀 하자!
정지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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