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개념에 '창조적'으로 접근하십시오, 휴먼[인스피아]
인공지능의 창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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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모방 거치는 ‘창조적’ 활동, 인간과 AI는 대동소이하지만
분별하고 고르는 일은 아직 인간만의 것…‘협업’ 가능성에 주목
문제는 그다음…‘효율성’에 가려진 ‘인간 소외’는 어떻게 풀까
지난 8월 미국 콜로라도주박람회 미술전에서 제이슨 앨런과 인공지능(AI) 미드저니가 ‘그린’ 그림이 디지털 아트 부문 대상을 탔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은 세계적으로 대단한 이슈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죠. ‘창조력(예술)’은 더 이상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고 AI에 비해 인간의 솜씨가 썩 뛰어난 것도 아니라는 점이 사람들을 큰 실의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들게 합니다. “AI는 창조적일 수 있을까?” “인간은 AI에 의해 대체될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책들을 지팡이 삼아 AI에 대해 해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AI, 창조적일 수 있나” : 기계의 딸꾹질
“AI가 조만간 나의 밥그릇을 빼앗아가지 않을까?” AI가 날이 갈수록 발달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합니다. 수학자 마커스 드 사토이 역시 비슷한 고민을 했는데요. 계기는 2016년에 있었던 ‘알파고·이세돌 대국’이었죠. 그는 책 <창조력 코드>에서 “AI가 창조적일 수 있을까?”라는 묵직한 질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AI가 창조적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일단, 창조성에 대한 정의가 필요할 텐데요. 사토이는 창조력의 기준으로 ‘러브레이스 테스트’라는 걸 내놓습니다. 핵심은 ‘의외성’과 ‘놀라움’이죠. 누군가가 창조적이라고 하기 위해선 그가 내놓는 결과물이 재현 가능하되 예상치 못한 것이어야 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놀라움을 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선 ‘의외성’을 먼저 들여다보면, <창조력 코드>에는 다양한 ‘알고리즘이 만든 의외성’의 사례들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으로는 넷플릭스의 사례가 있죠. 과거 넷플릭스는 더 정확한 추천 알고리즘을 발견한 팀에 상금을 주는 대회인 ‘넷플릭스 프라이즈’를 주최했었는데요. 당시 이용자 개인정보와 영화 제목, 장르 등은 모두 1, 2, 3 같은 기호로만 표시되었음에도, 알고리즘을 통해 훨씬 더 개인에게 적합한 영화를 추천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많은 정보(빅데이터)가 쌓여서 ‘의외의 발견’을 만들어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다만 저자는 AI가 창조적일 가능성에 대해 시종일관 긍정적이지는 않습니다. AI가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인간에게 ‘놀라움’을 주기 어렵기 때문인데요. 사토이는 자동화된 수학적 추론 AI ‘미자르 라이브러리(Mizar Mathematical Library)’가 내놓은 난해하고 의미 불명한 수학 논증들을 보며 고개를 젓습니다. 분명 새롭긴 한데 도통 의미를 알기 어려운 새로움이었기 때문이죠.
저자는 수학 증명에 있어 단지 ‘무작위적인 새로움’은 창조성의 증거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중요한 것은 새로움들 사이에서 놀라움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선택력이라는 것이죠. 그는 푸앙카레의 입을 빌려 이처럼 말합니다. “창조는 바로 쓸모없는 조합을 만들지 않는 데 있다. 창조력은 곧 분별력이요, 선택력이다 (…) 무익한 조합은 애초에 창조자의 마음속에 떠오르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은?” : AI와 인간의 협력
AI는 의외의 결과를 뽑아내긴 하지만, 아직까진 방대한 자료 중 ‘스스로’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지 평가, 선별하는 작업을 하지는 못합니다. 실제 많은 ‘AI 예술작품’들은 인간이 알고리즘을 짜서 돌리고, 그 결과를 선별해 다듬는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제이슨 앨런은 수상작인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외에도 해당 대회에 출품한 3개 작품을 ‘그리는’ 데 약 80시간이 걸렸다고 하고요. 그림을 위한 구체적인 알고리즘을 짜고, 설정하고, 결과물 중 그럴듯한 것을 선택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저자가 처음 제시했던 질문은 어느새 방향을 바꿉니다. “AI는 창조적일 수 있을까?”에서 “애초에 ‘창조성’이란 무엇인가?”로요.
인간은 창조적일까요? 우리는 통상 인간의 ‘창조력’을 굉장히 신격화하곤 하는데,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일상, 창조 행동 역시 기본은 알고리즘적이고 반복적입니다. ‘창조’적인 일을 할 때도 기본적으로 ‘투입(기존 작품 학습)⇒모방⇒색다른 결과 산출’이라는 과정은 AI와 인간의 행동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 EMI(Experiments in Musical Intelligence)를 통해 제작한 바흐 스타일의 곡으로 청중 앞에서 연주 실험을 했던 과학자이자 작곡가인 데이비드 코프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아는 의미심장한 음악 중 작곡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알고리즘이 쓰이지 않은 곡은 하나도 없습니다 (…) 인간이 자기 영혼이나 신 같은 존재와 신비로운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재조합이나 형식 체계에 따른 결과가 아닌) 완전히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다는 관념은 제가 보기엔 터무니없는 생각 같습니다.”(마커스 드 사토이, <창조력 코드>, 이하 동일)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사토이는 ‘인간은 AI의 도움을 받아 더욱 창조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어쩌면 기계가 우리에게 충격을 주고, 새로운 제안을 하고, 우리가 매일 똑같은 알고리즘을 되풀이하는 것을 막아줄지도 모른다”며 “결국 기계가 인간이 보다 덜 기계처럼 행동하도록 도와줄지도 모르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바둑 기사들에게 알파고는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데이터 반복을 통해 쌓인 ‘의외성’은 때로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던 것들을 눈치채게 해줍니다.
“커제의 동료 구리도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인공지능과 힘을 합쳐 곧 바둑의 신비를 더 많이 밝혀낼 겁니다.’ (…) 허사비스(구글 딥마인드 CEO)는 알파고의 알고리즘을 허블 우주 망원경에 비유한다 (…) 새 인공지능은 전보다 더 깊이, 더 멀리, 더 폭넓게 탐험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들의 목적은 인간의 창조력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증대하는 것이다.”
AI와의 ‘협력’은 사실 이미 수많은 곳에서 진행 중입니다. 넷플릭스는 창작 과정에서부터 일찍이 AI를 활용하고 있고요. 저자는 AI와 ‘손잡고’ 미래에 어떤 새로운 창조성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현실 속 ‘진짜 AI 예술’?
<창조력 코드> 책을 덮고 나면 가슴이 두근댑니다. AI가 스스로 완전히 ‘창조적’이긴 힘들어도, 인간과 AI가 힘을 합하면 상상도 못한 창조력을 쏟아낼 수 있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우리의 ‘밥그릇 불안감’에 대한 해답은 여전히 오리무중인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오늘은 오페라를 작곡하고 내일은 불후의 명작 소설을 집필하는 등 현기증 나는 효율성 속에 살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당히 ‘안 창조적이고’ ‘안 최첨단’의 일을 하면서 먹고삽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AI로 인한 효율성이 극도로 오르고, 사회에서 기대하는 창의력의 기준이 높아질수록 대다수의 ‘밥그릇’은 작아질 수도 있는 것이죠. 만약 효율성만이 최대의 가치라면 이런 대부분의 ‘안 창조적인’ 사람들은 ‘도태’되면 그만인 걸까요? 그것은 자연의 섭리일까요? 이 밖에도 AI로 인한 알고리즘의 편견 문제, 플랫폼 대기업의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 거대 플랫폼들이 공유부(Common Wealth)를 바탕으로 돈을 벌지만 수익은 독점하는 문제 등이 있습니다.
미술비평가 조아나 질린스카는 책 <AI 예술>에서 “AI는 지금, 여기 - 현실의 문제다!”라고 외칩니다. 이미 AI는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고, 우리가 ‘지금, 여기’의 AI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야말로 ‘AI 예술’이라는 거죠. 질린스카는 최근의 AI 예술이 대중들 사이 받아들여지는 추세에 대해 ‘고상해 보이는 캔디크러시(게임) 같은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한편 저자는 ‘AI 예술’이 ‘창조성’ ‘미술’의 개념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계기라고 하기도 하는데요. 어디서부터가 ‘붓’이고 어디까지가 ‘화가’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죠. ‘AI 예술’은 AI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과 AI의 협업에 가깝습니다. 이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한층 더 가속화된 추세이죠.
한편 이 책을 읽으면서 제 눈을 특별히 사로잡은 부분은 ‘AI로 그려진 예술’보다도 ‘AI에 대한 예술’을 소개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AI와 프라이버시의 문제, AI와 인간 노동의 문제 등을 고찰한 예술작품들을 다수 소개하고 있는데요.
그중 하나는 2019년 미국 예술가 로런 매카시의 ‘인간 알렉사 프로젝트’입니다. 그는 참여자들의 동의하에 24시간 이들의 아파트를 감시하면서 ‘인간 알렉사(아마존의 비서 AI)’가 되어 직접 음악이나 전등을 켜고 끄는 등의 업무를 대신합니다. 아무리 동의를 했어도 하루 종일 누군가가 나를 들여다본다는 게 역시 약간은 꺼림칙할 텐데요. 사실 이런 ‘작은 편리함’을 얻기 위해 자신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실시간으로 기업에 떠넘기는 것이야말로 꺼림칙한 일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AI가 대부분의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성과 노동의 가치에 대해 궁리한 예술도 있습니다. ‘엠터크 포엠(Mturk Poem)’이란 프로젝트인데요. 아마존의 프리랜서 플랫폼인 ‘아마존 메커니컬 터크(Amazon Mechanical Turk)’와 ‘시(Poem)’를 합한 단어입니다. 엠터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컴퓨터 앞에 대기하며 푼돈을 받고 단순 컴퓨터 문서 작업 등 허드렛일들을 처리해주는 프리랜서인데요. 고된 대기시간, 업무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적은 돈만을 받고 보험 등 혜택도 없습니다. 바로 이들에게 1달러도 안 되는 적은 돈을 주고 ‘허드렛일’ 대신 ‘시 쓰기’를 의뢰한 프로젝트였죠. 노동자들은 대체로 그 적은 보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된 처지와 노동조건을 한탄하는 진솔한 시들을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해당 프로젝트는 플랫폼에서 단지 ‘수행 실적’ 숫자로만 표시되는 이들이 실제 ‘살아 있는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 책을 덮으면서는 어쩌면 렘브란트풍의 AI 그림이나 오페라를 작곡하는 AI보다도 이런 작품들이 더 ‘AI의 예술’에 적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예술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요.
“예술은 보이는 것을 다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든다.”(파울 클레)
■맺음말
꽃에 물을 주고 짐을 나르는 로봇은 굳이 173㎝의 인간 모양일 필요가 없고(일론 머스크가 공개한 테슬라봇처럼), 설령 최첨단 기술이 탄생해도 여전히 로봇 농기구의 한편엔 수천년 전에 발명된 쟁기를 쓰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다가오지 않은 최첨단의 미래를 적극적으로 상상하는 것은 필요하고도 두근대는 일입니다만, 어쩌면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하는 건 그 기술들이 우리의 삶, 사회와 어떻게 어우러지는지여야 할 것입니다.
과학기술사 연구자들은 주장합니다. 기술은 최첨단의 반짝거리는 실험실에서만 탄생하지 않고 그 기술이 실제 사람들의 요구와 자원, 정치에 따라 탄생하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과학식보다는 생명체에 가깝다는 것이죠. 정치, 사회의 문제는 제쳐두고 단지 최신 기술에만 주목한다면, 한 공간에서 최첨단의 AI 물류 시스템과 사람을 죽게 만드는 에어컨도 없는 찜통 환경이 공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AI가 그린 그림’은 신기해서 대단히 우리의 눈을 끕니다. 실제로 이런 최첨단 기술은 근미래에 우리 사회의 창조성이나 그림의 모습을 다소 바꿀 것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최첨단의 기술이 ‘대부분의’ 사람들과 어떻게 어우러지게 할 것인지, 새로운 사회의 정의는 어떻게 만들어질지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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