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근미 작가
인생은 생방송, 재방송은 없어
오늘 하루 충실해야 하는 이유
60대 이상서 최고 자랑은 현역
사회에 필요한 존재라는 자부심
열심히 못 살아도 포기는 안 돼
어느 순간 길은 열리게 마련이다
10여 년 전, 내가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 책을 낸 적이 있다. 그랬더니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된 비결이 있을 텐데, 그걸로 강의를 좀 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수필 형식의 글이라 강의를 위해 좀 더 짜임새 있게 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잘하는 것에 미쳐야 하고, 재능보다 앞서는 건 성실이며 고난과 정면 대결하고, 창의성과 소통을 챙기며 마음 관리를 하면서 미래까지 대비하라. 대충 이런 내용의 강의이다. 나의 주장이 아닌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예화(例話)로 들어서인지 강의장 반응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된 비결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갈무리한 몇 가지 주제를 풀어 놓으면 됐는데, 세상이 급속히 변하면서 덧거리가 자꾸 생겨난다. 급변하는 세상을 짚어보고 직업의 변화와 헤드헌터의 견해까지, 최신 진단부터 하며 시작한다. 4차 산업혁명에다 코로나19가 불러온 비대면 상황까지 세상은 정말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빨리 바뀐다고 해도 기본은 달라지지 않는 법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두 가지 사항이 있다. ‘눈이 훤해질 때까지 파 보라’는 것과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애초에 소설가로 출발한 작가 고정욱 씨는 2000권의 동화를 읽고 나자 눈이 훤해지면서 동화 작법이 저절로 다가왔다고 했다. 어떤 강의장에서든 1분 만에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장경동 목사님은 초창기에 설교 5000편을 듣고 받아 적었다고 한다.
취재에 응하지 않기로 유명한 배우 배용준 씨를 2004년 일본에서 만나 단독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그에게 “당신은 처음부터 톱스타였고 지금도 최정상인데 인기가 떨어질까 봐 걱정되지 않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오늘 하루가 의미 있고 열심히 살았다면 그걸로 행복하다. 그래서 하루가 중요하고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방송인 이성미 씨가 들려준 “인생은 본방 사수만 가능한 생방송이다. 재방송은 없다”는 명언도 오늘 하루에 충실하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대상에 따라 같은 내용을 다르게 전하는, 운용의 묘를 발휘할 때도 있다. 대학생들을 만날 때면 마음에 불을 지르기 위해 애를 쓴다. 그들에게는 ‘인도의 빌 게이츠’로 불리는 위프로 회장 아짐 프렘지의 “당신의 목표를 사람들이 비웃지 않는다면 그건 너무 작은 것이다”라는 명언을 들려준다.
인생 2막을 시작하는 분들에게는 함부로 불을 붙이면 안 된다. 실수를 만회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패의 패턴을 익히고 안전한 걸음을 옮기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잘 모르는 분야에 뛰어들어 지나치게 투자했다가 거대한 성(城)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황망해하는 분을 만났을 때는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시간이 많지 않은 쪽이 타이밍을 더 신중하게 따져야 하는 법이다. 나에게 맞는 일인지, 끌어올릴 만한 동력과 시간이 충분한지, 겸손하게 스스로를 점검하고 전문가에게 자문(諮問)도 해 봐야 한다.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어느새 하늘나라로 가신 분들도 계신다. 두 번 뵙고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던 김동길 선생님이 얼마 전 세상을 떠나셨다. 천수를 누리며 충분히 활동하신 듯해서 아쉬움이 덜하긴 했다. 인생 100세 시대에 반백 년을 조금 넘긴 나이에 가시는 분들을 보면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데도 지식을 나누느라 늘 바쁘셨던 변호사님이 칠순도 되기 전에 황급히 가셔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부인과 함께 납골당에 갔다가 바로 옆에 안치된 분의 존함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기업가로 왕성하게 활동하실 때 만난 분인데 검색을 해 보니 강연을 하고 와서 바로 그날 돌아가셨다는 기사가 있었다.
한참 일하셔야 할 연세의 두 분이 나란히 누워 계신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는지 밤새 ‘루시드 드림(Lucid Dream)’ 상태였던 기억이 난다. 루시드 드림이란 달리 자각몽(自覺夢)이라고도 하는데, 그날 나는 꿈에서 ‘너무 슬퍼. 이건 꿈이야’ 하고 나를 달래며 또 꿈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했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이 용어는 1822년 데르베드생드니 후작 마리 장 레옹이라는 프랑스의 중국문화학자가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그도 나처럼 자각몽을 꾸었을까?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하며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사던 분이 갑자기 좋지 않은 일로 뉴스를 장식할 때면 허탈해진다. 단순 실수라면 그래도 이해가 되지만, 악질적인 범죄인 경우 내가 소개한 글을 읽은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차오른다.
강의장에서 “60대 이상인 분들의 최고 자랑이 뭔 줄 아느냐”고 물으면 ‘건강, 자녀 성공’ 같은 답변이 나온다. 하지만 내가 기대한 답은 ‘현역’이다. 은퇴 시기를 넘긴 분들은 ‘지금도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늦게까지 일하는 분들의 공통점이라면 ‘성격이 담백하여 자기관리를 잘한다’쯤 될 것이다.
선한 마음으로 착실하게 살아도 때때로 태산이 가로막아선 듯 답답한 경우를 만나기도 한다. 그런 때는 내 얘기를 슬쩍 풀어 놓으면서 ‘질기면 이긴다’고 귀띔해 준다. 눈이 훤해질 만큼 파고드는 성격도 못되고 날마다 열심히 살지도 못하지만, ‘버티기, 포기하지 않기’만 해도 어느 순간 길은 열리게 마련이니까.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내 강의의 마지막 문장이다. 내가 닿고 싶은 지점을 입으로 시인하며 달리다 보면 어느덧 이르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삶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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