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감사원, 권익위 상대로 '불법 디지털 포렌식' 벌였다?

구정모 2022. 10. 14. 10:2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현희 권익위원장 "감사원, 무소불위식 불법 포렌식..모든 파일 열어봐" 주장
감사원 관련규정서 '자료 선별추출 원칙' 사라져..비공개 내부지침은 확인 안돼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감사원 감사를 받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전현희 위원장이 감사원에 대해 '불법 디지털 포렌식(디지털 증거물의 확보·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전 위원장은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감사원이 감사 기간 권익위 직원들의 컴퓨터 6대에 대해 디지털 포렌식을 한 것을 두고 "법원의 영장주의 원칙을 무시하고 (중략) 불법을 견제하는 아무런 관리·감독 기구나 절차도 없는 (중략) 무소불위식 디지털 포렌식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감사원이 "권익위 직원들이 동의한 특정 목적과 무관하게 사실상 컴퓨터에 있는 모든 파일을 열어보는 식으로" 포괄적으로 "불법 포렌식"을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전 위원장은 아울러 감사원이 포렌식 관련 규정을 공개하지 않아 "방어권 행사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라고도 지적했다.

감사원의 권익위 감사를 두고 야권에선 '전 정권 인사를 찍어내려는 정치 감사'란 의혹을 제기하는 가운데 나온 전 위원장의 주장은 얼마만큼 사실일까?

전현희 권익위원장 '삼각편대 정치공작 중단하라' (세종=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5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감사원 감사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2022.10.5 kjhpress@yna.co.kr

포렌식 관련 규정, 7장→2장으로 분량 줄면서 빠진 내용은 비공개 전환

확인 결과 우선 감사원이 포렌식 관련 규정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말은 대체로 사실인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디지털 포렌식과 관련한 훈령인 '디지털 자료 수집 및 관리 규정'을 홈페이지에 게시해 놓고 있다.

하지만 이 규정은 지난 7월 8일 전부 개정된 뒤 내용의 상당 부분이 비공개로 전환됐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감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개정 전후 규정을 비교해 보면 개정 전 A4 용지 7장 분량에 달하던 이 규정은 개정 후 A4지 2장으로 대폭 간소화됐다.

그러면서 "이 규정에 따른 세부사항은 별도로 정하는 바를 따른다"는 단서가 새롭게 추가됐다.

다른 규정과의 관계를 명시한 이 조항은 개정 전엔 "이 규정에서 정하지 아니한 사항은 '감사사무 등 처리에 관한 규정'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돼 있었다.

이런 사정을 두루 보면 감사원이 규정의 분량을 대폭 줄이는 전부 개정을 진행하면서 개정 전 내용의 상당 부분을 이 '별도의 정하는 바'로 돌린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 관계자도 "(축소된 내용이) 대체로 비공개 규정으로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며 "규정을 악용하는 사례가 있어 비공개로 했다"고 말했다.

또 공개된 규정만 비교해도 우려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우선 제3조 기본원칙에서 '수집한 디지털 자료를 감사 목적 외의 용도로 이용하거나 디지털 자료에 포함된 개인정보 또는 비밀 등을 누설해서는 아니 된다'는 항목이 현행 규정에서는 삭제됐다.

또한 디지털 자료의 수집을 규정한 조항(5조)은 '디지털 저장매체 등으로부터 추출하는 방법으로 제출받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변경되며 감사와 관련한 자료만 '선별'해서 수집한다는 내용이 사라졌다.

개정 전 조항은 '당해 감사의 대상인 직무수행과 관련된 디지털 자료를 선별해 추출하는 방법으로 제출받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돼 있었다.

감사원은 규정 악용을 비공개 전환 사유로 들었는데, 절차적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과는 정반대로 갔다.

개정 전 규정은 총 5개 장, 20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 중 제2장 디지털 포렌식 사전절차가 개정 후 규정에선 통째로 빠졌다.

제3장(디지털 자료의 수집 및 분석), 제4장(디지털 자료의 관리), 제5장(보칙)은 개정 후 규정에서 '디지털 자료의 수집 및 관리'라는 1개 장으로 통합됐다.

결국 절차에 대한 내용이 비공개로 바뀐 셈이다. 이는 감사원의 디지털 포렌식이 적절한 절차를 밟고 진행된 것인지 피감사 대상자나 제3자가 확인할 방법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개정 전후 감사원 '디지털 자료 수집 및 관리 규정' 감사원의 '디지털 자료 수집 및 관리 규정' 중 디지털 자료 수집에 관련 규정에서 선별 추출 원칙이 삭제됐다.

디지털 증거 압수 때 '선별수집'하도록 한 형사소송법 위반 소지

이런 절차적 불투명성은 포괄적 포렌식 논란으로도 이어진다.

감사원이 권익위 사무실 컴퓨터에 있는 모든 파일을 열어보는 식으로 포렌식을 했다는 전 위원장의 주장과 관련, 권익위는 구체적인 경위를 밝히기를 꺼렸다.

권익위 관계자는 "감사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감사 절차 등 관련 사항을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포괄적 포렌식은 현행 법 체계에서 불법의 소지가 크다. 형사소송법 106조는 디지털 증거를 압수할 때 정보의 범위를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심지어 영장에 의하지 않고 임의제출한 디지털 자료도 범죄 사실과 관련된 내용만 선별해서 압수해야 한다고 대법원은 판시하고 있다.

감사원의 개정 전 규정에도 이런 내용이 있었다.

통째로 삭제된 사전절차 규정들을 보면, 디지털 포렌식을 할 때 개별 사안별로 필요성(감사 목적 달성에 필요한 경우), 보충성(인멸·위변조 우려로 감사자료를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 관련성(구체적으로 특정돼야 하며 감사 목적과 관련된 경우)을 검토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었다.

또한 포렌식 착수 일시와 장소, 디지털 자료 수집의 범위, 대상이 되는 디지털 저장매체 등을 사전에 피감기관에 통지해야 한다.

하지만 개정 후 규정에선 이런 내용이 모두 빠졌다. 다만 이른바 '비공개 지침'에 이런 내용이 들어갔는지 여부는 감사원이 알려주지 않아 디지털 자료의 선별수집 원칙이 완전히 폐지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법률사무소 휴먼의 김종보 변호사는 "형사소송법 등 수사 진행과 관련된 법령에서는 포괄적인 디지털 포렌식 등의 수사는 허용되지 않는다"며 "공개된 감사원 규정에서 선별 추출 원칙이 삭제돼 포괄적 포렌식 방향으로 개정된 것은 법률에 근거가 없는 것으로, 법률유보 원칙을 위반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법률유보 원칙이란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때는 반드시 국회 의결을 거친 법률에 근거를 둬야 한다는 원칙이다.

김 변호사는 "비공개 지침은 기관의 내부 사무처리지침으로, 여기에 선별 원칙이 담겨 있다고 하더라도 비공개 내부 지침이므로 고려할 필요가 없다"며 "선별 원칙이 있다면 그런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주민 의원은 "감사원이 축소한 규정대로 무분별하게 수집한 포렌식 자료를 바탕으로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고 해당 자료를 넘긴다면, 수사기관은 사실상 영장 없이 광범위한 포렌식 자료를 습득하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감사원이 디지털 포렌식 규정을 6월 30일 한 번 개정하고서 일주일여 만인 7월 8일에 전부 개정한 점도 이례적으로 보인다.

이 규정은 2020년 10월 30일 제정된 후 2021년 9월 14일 한 차례 개정됐고, 올해 들어 3월 29일, 6월 30일, 7월 8일 등 3차례 더 개정됐다.

감사원 관계자는 "권익위 직원의 입회하에 파일을 보기로 했는데 해당 직원이 보여주지 않아 못 본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권익위 위원장의 말씀과 (실제 조사 과정이) 다르다"고 반박했다.

디지털 포렌식 수사 (PG) [장현경 제작] 일러스트

pseudojm@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