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건강보험증·주민등록증 통합' 발표..국민 반발 큰 이유
일본 정부가 현행 건강보험증을 2024년 가을에 폐지, 한국 주민등록증 격인 마이넘버카드와 일체화한 ‘마이너 보험증’으로 전환하겠다고 지난 13일 발표했다. 병원 등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을 때 필수인 보험증을 마이넘버카드와 통합함으로써 전 국민에게 보급하겠다는 취지다. 개인정보가 남에게 알려지는 걸 꺼리는 일본 국민들이 이를 반기지만은 않는 분위기다.
일본 마이넘버카드는 지난 2016년 발급되기 시작했다. 출생과 함께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되는 한국과 달리, 관련 시스템이 없었던 일본에서 행정 통합을 위해 도입된 것이었다. 하지만 마이넘버카드 발급률은 6년이 지난 지금 49.6%(지난 11일 기준)에 그치고 있다. 카드 취득 여부를 의무가 아닌 개인의 판단에 맡겨 왔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난해 9월까지 20%를 밑돌았던 수치를 발급 시 2만엔(약 20만원)을 지급하는 캠페인을 통해 절반 가까이로 끌어올렸다.
일본 정부의 이번 마이넘버카드·의료보험증 일체화 발표는 ‘디지털 사회’ 실현을 위한 본격 단계로 풀이됐다. 아날로그 행정 탈피를 위해선 행정기관별 국민 정보 관리 시스템을 통합해야 하고, 이에 앞서 마이넘버카드의 전 국민 보급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지난 2년여간 급박한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도 팩스로 확진자 수를 집계하는 등 아날로그 행정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났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후 총리 직속 조직으로 지난해 9월 디지털청이 발족되는 등 정부의 디지털화 움직임에 가속이 붙었다는 관측이 나왔다.
정부의 이번 발표에 대해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일본 국민 사이에선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13일 보도했다. 일반 종이에 출력된 방식인 기존 의료보험증이 아닌 마이넘버카드를 발급받을 경우, 개인정보가 디지털 상에 전산화됨으로써 유출 및 악용 가능성이 커진다는 우려 때문으로 해석됐다. 한 네티즌은 “폐지해야 할 건 보험증이 아닌 정보 유출 위험성이 높은 마이넘버카드”라고 반발했다. 아사히신문도 “카드 분실 등에 의한 개인정보 유출 우려, 예적금계좌 등과 연계될 경우 정부가 개개인 정보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는 (국민들의) 두려움이 크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마이넘버카드엔 세금이나 연금, 병력 등에 관한 프라이버시성이 높은 정보는 기록되지 않는다”며 “이 밖에도 여러 안전관리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의구심은 꺾이지 않는 모양새다. “처음엔 (취득 여부가) 임의라고 하더니, 사실상 의무화하겠다는 정부의 방식이 비열하다” “마이넘버카드 취득은 법률에 임의성이 담보돼 있다. 그 원칙을 무시하는 건 법치국가에서 허용될 수 없는 일”이라는 등 반응이 나왔다.
발표에 앞서 정부가 어떠한 심의 과정을 거쳤는지 밝혀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런 중요한 일은 정밀한 논의 없이 ‘이미 결정했다’는 식으로 발표해선 안 된다” “국회가 어떤 심의를 거쳤는지 규명하라”는 등이다. 마이니치신문은 특히 “지난달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장(國葬) 진행이 국회 논의 없이 각의 결정된 것에 대한 불만이 겹쳐 국민 반발이 커지는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강한 반발이 나오는 한편, 정부 발표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는 국민도 있다. 한 네티즌은 “정리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빨리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이넘버카드로의 통합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마이니치신문은 “긍정적 반응이 나오고도 있지만, 카드를 취득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2024년 가을까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를 (정부가)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디지털청 관계자는 “발급을 원치 않는 이들의 경우 우선 설득하는 것이 대방침”이라면서도 “그들을 위한 대책도 확실히 마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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