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시선] 대법관 공석 장기화와 국회의 책무

2022. 10. 13.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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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준처리 지연.. 재판공백·지체
동의권 행사 정략적 이용 안돼

대법원은 삼권 분립의 한 축이며, 헌법재판소와 더불어 사법부의 최고기관이다. 대법원이 제 기능을 못한다면 삼권 분립이 붕괴하고 국정 전반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 이는 과거 군사 쿠데타나 비상계엄을 통해 국회가 무력화되었던 것과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 인준 처리 지연에 따른 대법관 공석이 문제 되고 있다. 한 달이 훨씬 넘도록 대법관 공석이 계속된다는 것은, 비록 대법원의 기능 정지는 아닐지라도 심각한 기능 지체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전체 대법관 숫자는 불과 14명이다. 1명의 대법관이 공석이라는 것은 단순한 산술계산만으로도 14분의 1인 7.14%의 공백을 의미한다. 만일 300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국회의 14분의 1인 22명이 공석이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국회의 운영 자체는 가능하겠지만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할 것은 명백하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그런데 대법관 1명의 공석은 그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당시 헌법재판관 수는 1명이 공석이라 8명이었다. 그로 인해 적지 않은 우려가 있었다. 만일 그 공석으로 인해 탄핵 사건이 아슬아슬하게 기각되었더라면 국민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이와 유사하게 단 1명의 견해 차이로 대법원의 재판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민감한 사건에서 대법관 1명의 공석으로 인해 대법원의 재판 결과가 달라진다면 사건 당사자는 물론이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까?

그 밖에도 문제는 적지 않다. 김재형 전 대법관이 주심을 맡았던 대법원 3부의 330건 재판이 무기한 지연되고 있으며, 그 후임자가 배당받아야 할 사건을 현 상황에서는 다른 대법관들이 추가로 부담할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대법원의 사건 부담이 매우 높은데, 더욱 가중되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재판을 지연시키고,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그런데 국회는 왜 임명동의를 늦추고 있는가?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에 대해 헌법에서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한 것은 대통령의 인사권 오남용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대통령이 임의로 대법관을 임명한다면 대통령이 사실상 사법부를 지배하는 결과가 된다. 그러므로 국회의 동의권 행사 및 그 사전 절차로서 인사청문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중요성이 신속한 처리의 필요성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말처럼 때를 놓친 절차는 그 자체로서 정의에 반한다. 그러므로 국회의 임명동의 처리 지연은 그 자체가 정의에 반할 뿐만 아니라, 재판을 지연시킴으로써 정의에 반하는 사태를 더욱 확대시킨다. 헌법 제27조 제3항 제1문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단순히 ‘재판을 받을 권리’만 얘기하지 않고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명시한 것은 그 중요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 관철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볼모로 국회가 정부를 압박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만일 후보자에 대한 의혹 때문이라면 인사청문 절차에서 이를 검증하고 그 문제점을 국민 앞에 밝혔어야 한다. 그리고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키고 최대한 빨리 다른 후보자가 추천되어 대법관 공석을 채우게 했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정략적 이유로 헌법상의 권한이자 책무인 대법관 임명동의를 늦추는 것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국회의 대법관 임명동의권은,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권과 마찬가지로, 헌법에 의해 부여된 권한임과 동시에 책무다. 올바른 사법부 구성을 통해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지 정략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이러한 책무를 무시하고 정략적으로만 이용하려 한다면 그 결과는 전형적인 소탐대실이 될 것이다. 주권자인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정략을 앞세우는 국회를 국민이 어떻게 평가하고 심판할 것인가.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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