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우리] 북한의 도발과 강대국 정치의 본질

2022. 10. 13.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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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잇단 무력시위에 '핵무장론' 고개
美, 확장억제·동맹보호 제고 부담
中·러와 '전략적 협력' 합의 가능성
한반도 상황 새 거래 수단 될 수도

최근 한반도 주변의 긴장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 한·미·일 연합 해상훈련을 마치고 동북아를 떠났던 미국의 핵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응하고자 한반도 해역에 다시 접근했다. 북한도 다시 전투기와 폭격기 등 150여대를 동원해 대응했다. 이후에도 장소와 시간을 바꿔가며 미사일 도발을 계속했다.

북한의 이 같은 행동은 대단히 이례적인 것일 뿐 아니라 기존 공식의 틀을 깨는 것이다. 북한은 통상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킨 후 한·미가 연합 전력으로 대응하면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의 이례적인 무력시위는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북한식 자신감의 표현이자 핵전력을 완성했다고 주장한 후 내세운 선제타격 논리와 능력을 분명하게 다시 강조하는 것일 수 있다.
김석환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국제정치학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도 북한의 이런 식의 도발은 엄청난 부담이자 도전이다. 현실적인 ‘확장 억제력’과 ‘동맹 보호 의지’를 북한과 우방 모두에게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다 북한의 핵위협에 맞서기 위해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아시아태평양 지역 핵심 동맹국들에게서 나오는 것을 억제해야 할 필요성도 커졌다.

‘핵무기의 유용성’과 ‘대응 차원에서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확산하고 있다. 핵을 가진 적국과 비핵 우호국가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을 때 미국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대처할 수 있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분명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을 명확히 한 것으로 보인다. 핵 선제타격론을 명문화한 후 미국 영토뿐 아니라 한·미 연합전력에 대한 타격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분명히 과시한 최근의 행보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미국의 핵우산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불안감이 한국과 일본에서 싹트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유사시 자신들의 영토가 핵으로 공격받을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참전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러한 불안감은 중국 위협에 직면한 대만에서도 비슷할 수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런 불안감이 커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무너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북한을 자제시키고 핵을 포기시켜야 한다. 하지만 최근의 지정학적 상황은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를 명확히 해 북한의 행동을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현실적으로도 북한을 제재할 뾰쪽한 방안이 없다. 결국 더 확대된 확장억제 능력을 보여주고 핵무장 필요 논란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전격적인 미군 전술핵의 재도입이 이뤄져야 한다거나 더 강력한 군비 증강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확산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보다 더 큰 틀에서 보면 이런 지정학적 교착은 역설적으로 강대국 거래의 효용성을 부각시킨다. 상호 핵심 이익이 훼손되지 않는다면 전략적 거래를 진행할 수 있다는 강대국 정치의 논리를 재생시킨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전선이 동시에 형성되면 동북아 이슈와 글로벌 차원의 지정학적 안정을 위한 거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에도 협력의 모멘텀을 제공할 수 있다.

서로 이견이 있고 세계관적 대립을 하더라도 ‘전략적 협력’에 대한 합의가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 강대국 정치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러한 본질적인 이해관계의 합의를 통해 세력 균형을 이룩하는 것이 가능하고 중요하다는 것이 현실주의 정치 이론의 근간이다.

북한의 도발은 다양한 파장을 몰고 올 복합 방정식이다. 미·중, 미·러 양국 관계가 최악의 상황이라 하더라도 세계 전략적 영역에 있어 상호 이익이 공유되고 예측 가능한 합의의 범위가 있다면 한반도 주변 상황은 새로운 강대국 정치의 전략적 거래와 협력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합의와 거래가 꼭 약소국의 국익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김석환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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