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안토니오 이노키, 어떻게 시대의 카리스마가 되었나

박영서 2022. 10. 1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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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산 제안으로 17살에 레슬링 입문
뒤서 몸 꼬는 코브라트위스트 필살기
알리와 대결은 이종격투기 시대 열어
쇼와시대 국가영웅 죽음에 열도 애도
투혼의 인간, 끝까지 무언가와 싸웠다

일본 열도를 뜨겁게 달궜던 한 남자가 세상을 떠났다. 안토니오 이노키가 향년 79세로 사망한 것이다. 그의 죽음은 일본 국내에선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별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국장보다 더 반향이 크다. 그는 프로 레슬링의 황금 시대를 건설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고, 정치인으로서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행동으로 자신의 길을 넓혀갔다. '투혼(鬪魂)의 인간' 이노키, 그의 파란만장했던 인생을 조명해본다.

◇역도산과의 만남, "거기서 꿈은 이뤄졌다"

이노키는 1943년 요코하마(橫浜)에서 11남매 중 여섯째로 출생했다. 본명은 이노키 간지(猪木寬至)다. 아버지는 석탄도매상을 했다. 이노키가 5살때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가난했지만 신체조건은 좋았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이미 키가 180cm를 넘었다. 이노키는 스모 선수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꿈은 프로 레슬러였다.

이노키는 11살때인 1954년 TV를 통해 역도산의 경기를 봤다. "우리 동네에 TV가 있는 집이 딱 한 집 있었지요. 그 때 역도산을 보고 '언젠가는 프로 레슬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14살 때 전 가족이 먹고살기 위해 브라질로 이민을 갔다. 학교를 다니면서 상파울루 인근 커피 농장에서 노동을 했다. 그는 육상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브라질 육상선수권대회 주니어 부문에서 투원반 및 투포환 선수로 출전해 우승할 정도였다.

1960년 역도산이 원정경기를 위해 브라질을 찾았다. 그 곳에서 거구의 육상선수 이노키를 발견했다. 현지 신문에서 이노키의 육상대회 우승 기사를 본 것이었다. 두 사람은 호텔에서 만났다. 역도산은 엄청나게 큰 손, 떡 벌어진 어깨, '발달된' 그의 턱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이노키는 역도산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였다. 17살 때였다.

"나는 프로 레슬러가 되고 싶었지만 브라질로 가면서 꿈은 멀어졌지요. 그런데 역도산이 브라질에 와서 나를 보았습니다.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운명인 셈입니다."

1960년 4월 도쿄(東京)에서 입문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노키말고도 또 한명의 신인이 있었다.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투수 출신 바바 쇼헤이(馬場正平)였다. 바바는 키가 2미터가 넘는 거인으로, 팀 이름에 '거인'이 들어가 있는 요미우리에 '진짜 거인' 선수가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관심을 받았었다. 그는 레슬러로 전향하면서 이름을 자이언트 바바로 바꿨다.

역도산은 기자회견에서 이노키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태어난 일본인 2세라고 소개했다. 순수 일본인이지만 일본계 브라질인이라는 콘셉트로 데뷔한 것이다. 1962년부터 링네임으로 쓰기 시작한 안토니오 이노키 역시 브라질인 이미지를 위해 붙여졌다. '안토니오'는 브라질에서 가장 흔한 이름이다.

이노키와 바바, 두 사람은 1960년 9월 30일 동시에 데뷔전을 치렀다. 이노키는 오키 킨타로(大木金太郞; 김일)에게 패했고, 바바는 다나카 요네타로를 꺾었다. 이후 두 사람은 숙명의 라이벌 시대를 열었다. 두 사람은 역도산 사후 일본 프로 레슬링 역사를 새로 썼다.

◇필살기·쇼맨십·유행어로 시대를 풍미

이노키는 특유의 필살기와 쇼맨십, 그리고 유행어로 흥행을 몰고 다녔다. 이를 통해 일본 프로 레슬링 역사에 황금기를 열었다.

스승인 역도산은 제자들에게 프로 레슬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특기를 가져야 한다며 특기를 연마토록 했다. 김일은 '박치기'였고 자이언트 바바는 '16문 킥'이었다. 바바의 실제 발 크기는 320㎜로 13문이었는데, 그냥 16문으로 불렀다. 로프 반동으로 튕겨져 나오는 상대 선수를 큰 발로 걷어찼다.

이노키의 필살기는 '코브라 트위스트'였다. 상대의 뒷편에서 오른발로는 상대의 오른발을 걸고, 오른팔로는 상대의 오른팔을 걸면서 몸을 일으켜 세움으로써 고통을 주는 기술이다. 마치 코브라가 몸을 감는 듯하다고 해 그런 명칭이 붙었다. 이 기술은 후에 '만지카타메', 우리말로는 '만(卍)자 굳히기'로 발전했다. 문어가 감싸는 것처럼 보여 '옥토퍼스 홀드'로도 불린다.

또 다른 필살기로는 '엔즈이기리'도 있다. 우리말로 '연수 베기'다. 연수는 촉수 뒷목덜미에 있는 급소다. 거구의 이노키가 점프해서 발등으로 상대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기술은 보기만 해도 아찔했다.

그는 유행어도 숱하게 남겼다. 대표적인 것이 "겡키데스카(건강합니까)!"다. 그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외치면서 일본인들에게 에너지를 주입했다. 이른바 '투혼 싸대기'도 유명한 퍼포먼스다. 이노키에게 뺨을 맞으면 소원이 성취된다고 해서 그에게 뺨을 맞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였다.

전후(戰後) 쇼와(昭和) 시대, 일본의 모든 소년들은 그런 그에게 매료되어 그의 기술, 그의 말과 퍼포먼스를 따라했다. 이노키는 일본인들의 우상이 됐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스승 역도산을 넘어 그 이상을 보았다.

◇무하마드 알리와의 대결

1976년 6월 26일 도쿄 부도칸(武道館)에서 무하마드 알리와 벌인 대결은 34개국 14억명이 TV로 지켜봤다. 당시에는 복서와 레슬러가 경기를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두 사람의 맞대결은 전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경기 방식이 문제였다. 이노키에는 금지 항목이 너무 많았다. 스탠딩 발치기, 관절 꺾기, 허리 위 타격, 그래플링(상대를 잡아 던지는 것) 등이 금지돼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이었다. 알리 측은 이노키의 손과 발을 묶는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경기를 취소하겠다고 암시했다. 이노키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알리를 반드시 링에 올리겠다고 결심한 터라 룰을 받아들였다.

경기가 시작되자 이노키는 거의 대부분 누워서 알리의 다리에 킥을 시도했고, 알리는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15 라운드 내내 이런 경기가 이어졌고 결국 무승부로 끝났다. 관중은 일제히 야유를 쏟아내면서 온갖 쓰레기들을 링 위로 집어던졌다.

'세기의 일전(一戰)'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세기의 졸전(拙戰)'이 됐다. 비난이 쇄도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평가는 180도 바꿨다. '격투 스포츠' 역사를 바꾼 경기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노키의 도전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이종 격투기는 아예 태동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장 강했던 일본인, 전설이 되다

알리와의 대결은 그에게 장기적으로 큰 피해를 입히지는 않았다. 그는 새로운 영역에 계속 도전을 했다. 이노키는 1989년 스포츠평화당을 만들어 같은 해 참의원(상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세계 최초로 레슬러 출신 국회의원이 된 것이다. 당선된 다음 해인 1990년 이라크로 직접 날아가 협상을 벌여 이라크에 인질로 잡혀있던 일본인 41명을 구해내는 탁월한 외교 성과를 거뒀다. 또한 이노키는 스승 역도산이 북한 출신(함경남도 홍원군)이라는 배경 등을 이유로 북한을 자주 방문해 북일 관계 개선에도 큰 공헌을 했다. 1995년부터 2017년까지 32차례 북한을 방문해 북일 관계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논의했다.

하지만 이노키도 세월을 이길 수는 없었다. 2018년 난치병인 '심장 아밀로이드증'을 앓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숨기지 않았고 자신의 전매특허인 '투혼'을 강조했다. 2022년 10월 1일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은 그가 이날 오전 7시 40분 도쿄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긴급뉴스를 내보냈다. 일본 언론들은 이렇게 표현했다. "시대와 함께 살았던 슈퍼스타, 이노키와 같은 국가 영웅은 결코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는 영원한 전설로 남았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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