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와 친구가 되는 방법

한겨레 2022. 10. 1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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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윤의 환상타파]

게티이미지뱅크

[전명윤의 환상타파] 전명윤 | 아시아 역사문화 탐구자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전사자와 종전 뒤 도쿄 전범재판을 받고 전범으로 처형된 사람들이 합사돼 있다. 여기에 뜬금없게도 ‘라다비노드 팔’이라는 인도인 한명이 함께 모셔져 있다. 그는 도쿄 전범재판의 판사 중 하나였는데, 유일하게 전범으로 기소된 피고인 전원이 무죄라는 소수의견을 냈다.

그는 어차피 전쟁이라는 행위 자체가 범죄인데, 공동의 범죄자들끼리 승자와 패자로 나눠 승자가 패자를 범죄인 취급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봤던 것 같다. 게다가 법률적으로도 도쿄 전범재판 당시 신설된 개념인 에이(A)급 전쟁범죄와 인도적 범죄 개념을 2차 대전 전범들에게 적용하는 건 소급 적용이라고 판단했는데, 그의 이런 법리 해석은 동시에 벌어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네덜란드와 프랑스 판사의 동조를 끌어내기도 했다.

물론 이런 기초 논리를 뒷받침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오판도 했다. 난징대학살을 부정하는 등 숱한 무리수를 뒀다는 사실도 부정할 순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일본 극우파로서는 이 일이 두고두고 고마웠던 모양인지, 그는 죽어서 야스쿠니에 모셔져 일본의 신이 됐다.

우리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주장을 한 사람이지만, 당사국인 일본과 인도의 생각은 달랐던 듯하다. 팔 판사의 이야기는 언제나 두 나라를 연결하는 접점이 됐다. 2005년 만모한 싱 인도 총리는 일본을 방문해 ‘어려운 시기에 서로의 편이 돼주었다’는 말을 했고, 이후 아베 신조 총리는 인도를 방문해 ‘팔 판사가 보여준 고귀한 용기’를 언급하며 그의 유족을 30분에 걸쳐 단독면담하기까지 했다.

한국인으로서 불편한 이야기지만, 팔 판사를 매개로 한 인도와 일본의 외교는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 많다. 과거의 인연을 상기하고 현재의 이익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보자면 말이다.

국가 간의 연결고리는 중요하다. 사람들에게 어떤 나라에 대해 친근함을 불러일으키는 건 이런 스토리의 발굴이다. 일본은 한국보다 해외 진출 역사가 길다 보니 이런 사례들을 발굴하기에 훨씬 유리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다.

내년은 인도-한국 수교 50주년이다. 인도 탐구자로서 느끼기에 올해의 인도는 뭔가 특이점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경제 뉴스가 쏟아지는 한해였다. 인도는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듯 우리와는 민족해방기념일이 같은 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해방 이후 분단을 맞이했고, 분단의 와중에 엄청난 실향민이 발생했다는 점도 같다.

인도는 근래 분단과 실향민을 배경으로 하는 ‘상흔문학’이 한창 흥하는 중이다. 국경도시 암리차르에는 세계 최초로 분단박물관이 들어섰고, 상흔문학의 여파는 미국 할리우드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물 <미즈 마블>의 주인공 카말라 칸의 가계가 인도-파키스탄 분단 와중의 실향민이었다는 배경으로까지 쓰였고, 분단과 실향은 드라마 전개의 주요 축이었다.

물론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단은 그들 스스로 내린 결정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분단과 그 와중에 벌어진 비극은 충분히 두 나라가 함께 공유할 만한 역사적 경험이다.

그래서 우리가 인도에 할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같은 날 해방을 맞이했고, 분단됐으며, 실향민의 아픔이 있다. 인도의 실향민들이 탄두리치킨과 버터치킨을 만들었듯, 한국의 실향민들은 평양냉면이라는 국수를 전파했다. 실향민의 요리는 각각 인도와 한국을 대표하는 요리가 됐다. 인도와 한국은 한때 같은 나라의 구성원이었던 사람들끼리 전쟁을 했다. 인도는 한국전쟁 당시 의료부대를 보내 우리를 도왔다. 당시 남과 북 모두 싫다며 제3국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현동화라는 사람은 인도를 선택했다. 분단과 전쟁의 와중에 한 한국인이 인도를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많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한국과 인도는 친구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굳이 허황옥을 발굴해 신화를 가짜 역사로 둔갑시키지 않아도 한국과 인도 사이에는 이미 이처럼 많은 접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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