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에게 유리벽은 죽음의 벽..스티커 붙여 충돌 막아요"

김태희 기자 2022. 10. 12.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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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조류 충돌방지' 봉사 나선 경기 하남시 시민들
경기 하남시 미사 호수공원에서 지난 8일 봉사활동에 나선 시민들이 유리 구조물에 ‘조류충돌방지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방음벽·난간·건물 등 설치된 유리
반사 풍경·실제 풍경 혼동해 ‘사고’
새 비행 특성 고려한 스티커 활용
주요 시설물에 부착 활동 ‘구슬땀’

“어느 날 길을 가다 유리에 부딪쳐 죽은 새를 봤어요. 사람들이 만든 유리 벽 때문에 애꿎은 새들이 죽는다는 게 마음 아프더라고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참여하게 됐어요.”

한글날 연휴 첫날이었던 지난 8일 오전 9시. 경기 하남시 미사 호수공원에서 만난 황다은양(12)은 두 달 전부터 ‘야생조류 충돌방지 스티커 붙이기’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황양은 “수의사를 꿈꾸고 있어서 동물보호에 관심이 많다”면서 “봉사활동을 통해 사람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 호수공원에는 ‘조류충돌방지 스티커’를 붙이기 위해 시민 20여명이 모였다. 연령대도 6세 어린이부터 청소년, 30~40대 성인까지 다양했다.

이들의 손에는 ‘30㎝ 자’와 ‘스티커’가 들려 있었다. 새들이 유리에 부딪치는 것을 막기 위한 조류충돌방지 스티커는 상하 간격 5㎝, 좌우 간격 10㎝로 붙여야 한다. 새들은 이런 크기의 공간은 통과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비행을 시도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봉사자들은 자로 유리 난간의 길이를 재고 간격을 맞춰가며 스티커를 붙였다. 어린이 봉사자들은 부모의 도움을 받아 가며 활동에 참여했다. 세 아이와 함께 봉사활동에 참여한 한 30대 학부모는 “하남에서 새들이 많이 죽는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평소 새를 좋아하는 아이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봉사활동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현재 하남시장도 이날 직접 현장을 찾았다. 이 시장은 “하남의 신도시에는 유리 시설물이 많아 새들이 충돌로 죽는 경우가 많다”면서 “자연 친화적이고 야생동물과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도시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지속해서 봉사활동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남시에서는 2년 넘게 시민들의 주도로 ‘야생조류 충돌방지 스티커 붙이기’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들은 주말마다 지역 내 조류충돌 현황을 파악하고, 주요 충돌 지점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이 활동은 하남시생명사랑협회(생명사랑협회)·하남시자원봉사센터의 주도와 지원 아래 진행 중이다.

시민들의 노력이 성과를 내기도 했다. 경기도가 활동을 통해 문제점을 인지하고 관련 조례를 마련한 것이다. 지난해 공포된 ‘경기도 야생조류 충돌 예방조례’는 경기도가 설치 또는 관리하는 건축물이나 투명방음벽 등의 시설물에 도지사가 야생조류 충돌 예방대책을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시민들은 하남 미사지구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미사지구는 2015년부터 입주를 시작한 신도시로, 다수의 유리 시설물이 있다. 방음벽과 난간, 버스정류장, 건물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생명사랑협회는 이런 시설물이 조류충돌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다.

생명사랑협회가 2019년 8월부터 이달 초까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사지구에서는 해당 기간 850여 마리의 조류가 유리 구조물 충돌로 목숨을 잃었다. 종류도 참새와 박새, 검은지빠귀, 물총새 등으로 다양했다. 지난해 8월에는 한 아파트 유리 방음벽에서 천연기념물 제324-3호인 솔부엉이가 죽은 채 발견되기도 했다.

전인태 생명사랑협회 활동가는 “새들은 유리에 투과, 반사된 풍경을 실제 풍경과 구별하지 못한다”며 “모든 종류의 유리 시설물들은 새의 죽음과 연관된다”고 말했다.

공공시설물에는 충돌방지 스티커 부착이 비교적 쉬운 편이지만 사유재산의 경우 소유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스티커 부착이 어렵다. 이에 협회는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과 캠페인 활동도 진행 중이다.

박선우 활동가는 “교육을 나가면 이런 문제를 처음 알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문제에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지속해서 활동을 알리는 교육 봉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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