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녹조를 보고도 괴담이라 치부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한겨레 2022. 10. 12.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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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이 애초 4대강 사업을 구상할 때부터 녹조 발생 가능성은 지적됐다.

4대강 사업 이후 10년이 지난 현재, 1300리 낙동강 물길 전 구역에서 녹조가 피어났고 낙동강 물로 재배한 농산물에서 녹조 독이 검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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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이어지던 지난 8월4일 경남 창녕군 길곡면과 함안군 칠북면 경계에 위치한 창녕함안보 일대 낙동강에서 녹조가 관찰되고 있다. 강물이 녹색 물감을 푼 듯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왜냐면] 이승렬 | 대구환경운동연합 의장·영남대 영문과 교수

이명박 정권이 애초 4대강 사업을 구상할 때부터 녹조 발생 가능성은 지적됐다. 흐르지 않는 강은 강이 아니고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식에 근거한 비판은 바로 괴담으로 취급됐고, 정부와 4대강을 지지하는 학자와 보수언론은 ‘보 설치가 강물을 맑게 해줄 것이다’ ‘강을 오가는 선박의 스크루가 산소를 공급해줄 것이다’ 같은 장밋빛 청사진으로 4대강 사업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4대강 사업 이후 10년이 지난 현재, 1300리 낙동강 물길 전 구역에서 녹조가 피어났고 낙동강 물로 재배한 농산물에서 녹조 독이 검출됐다. 나아가 공기 중 독성 입자가 주민들 호흡기로 흡입될 수 있고, 수돗물 꼭지에서도 녹조 독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4대강 사업의 결과를 내 몸의 온 감각기관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눈앞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누군가는 여전히 10년 전과 똑같이 ‘녹조괴담론’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짙은 녹조가 녹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 강 전역을 뒤덮고 있는 모습을 항공사진을 통해서 접하곤 한다. 인간은 생명을 잃어버린 녹색 강의 이미지에서도 어떤 차원의 미학을 느낄 수 있다. 생명이 빠져나가 생동감은 사라졌지만, 사진 이미지상 어떤 종류의 아름다움으로 뒤덮여 있다고 볼 수 있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자유에 시비를 걸 필요는 없다. 그러나 녹조괴담론을 펼치는 전문가나 기자는 녹조의 미학이 두렵고 낯설며 기괴한(uncanny) 죽음의 이미지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앤디 워홀이 그려낸 매릴린 먼로의 마네킹 이미지가 워홀이 탐색한 산업문명의 죽음 이미지와 겹쳐지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강물의 흐름이 멈추고 모래톱이 사라진 강변에서, 햇볕에 아롱져 몽글몽글 피어오르며 물결 따라 일렁이는 녹조 알갱이의 움직임을 들여다볼라치면 당신은 강변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콧속으로 파고드는 역겨운 냄새, 죽음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당신은 이미 고농도의 독성 물질, 마이크로시스틴에 피폭됐다. 만일 당신이 젊은이였다면 당신을 닮은 2세를 생산할 생식능력의 훼손을 안타까워해야 할 것이다. 죽음의 강물을 원수(原水)로 온갖 약품을 투입하고 여과 과정을 거치면 지극히 건강한 생명의 물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며 환경단체를 괴담 유포자로 치부하는 4대강 사업 이데올로그들은, 과연 누구 이야기가 기괴하고 두려운 것인지, 진정 괴담을 유포하고 있는 자는 누구인지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프로이트는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이야기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의한 아비의 거세 위협을 확인하지만, 우리는 녹조의 위험을 괴담으로 간주하는 전문가와 보수언론한테서 또 다른 거세 위협을 느낀다.

낙동강에 녹조가 창궐해 녹조 독성의 피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들이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반성과 참회는커녕 인간의 기술로 녹조의 위험 따위는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두렵고 낯설고 기이한 이야기 아닌가? 4대강 사업으로 오히려 물이 맑아졌다는 주장이나 독극물이 풀려 있는 낙동강 물을 그대로 두고도 수돗물은 안전하다는 이 기괴한 공포 이야기는 결국 자본이라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생명을 거세하겠다는 위협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흐르는 강물이 삶이고 사랑이라는 위대한 시인들의 노래에 대한 거세 위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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