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황당무계당 이해극 당수의 잡초 공적비

남종영 2022. 10. 12.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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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강원도 평창군 청옥산에 있는 잡초 공적비. 한국유기농업협회 제공

남종영 | 기후변화팀 기자

강원도 평창군 청옥산에 가면 ‘잡초 공적비’가 있다. 한국 유기농 역사의 산증인 이해극(73)씨가 3000만원을 들여 세운 비석이다. 비문을 읽어보자.

“태초에 이 땅에 주인으로 태어나/ 잡초라는 이름으로 짓밟히고 뽑혀져도/ 그 질긴 생명력으로 생채기 난 흙을 품고 보듬어/ 생명에 터전을 치유하는 위대함을 기리고자/ 이 비를 세우다”

이해극씨는 자칭 ‘황당무계당 당수’다. 하지만 그가 잡초를 위해 공적비를 세운 것은 이상한 정당의 우두머리라서가 아니다. 한평생 농사를 지으면서 잡초를 통해 땅과 식물과 햇빛의 순환원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풀과 잡초가 땅이라는 탄소저장고를 꽉 붙들고 기후붕괴를 막고 있는 사실을 최근 들어 과학자들이 알아냈으니, 그가 농사를 지으며 얻은 직관은 황당무계가 아니라 사실 적시에 가깝다.

우리는 보통 자동차를 타고 에어컨을 켜는 것이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수백만년 전 동식물 사체가 썩어 쌓인 석탄이나 기름 같은 화석연료를 태우면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가 나온다고 말이다.(모든 생명체의 재료는 탄소이고, 그것이 썩은 것도 탄소이고, 그걸 태워 나오는 것도 탄소다.)

거기에 더해 열대우림 같은 숲을 없애면 온실가스가 늘어난다는 것도 안다.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는 나무가 없어지니, 온실가스 농도가 느는 건 당연지사다.

하지만 우리는 온실가스 배출의 세번째 경로는 잘 모른다. 바로 땅에서 온실가스가 나온다는 사실이다.

사실 땅은 탄소를 머금은 대용량 탄소저장고다. 지구 대기에는 총 800기가톤의 탄소가 있는데, 땅에는 그 세배가 넘는 2500기가톤이 있다.

탄소는 어떻게 땅에 들어가는 걸까? 나무나 풀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그런데 그 탄소의 40%는 뿌리를 통해 토양 미생물에 전해진다. 토양 미생물은 ‘글로말린’이라는 탄소 흡착 물질을 만든다. 탄소를 흙 속에 저장하는 일종의 접착제인데, 토양 유기탄소를 풍족하게 가둔다. 동물과 식물도 죽어서 분해돼 탄소로 토양에 흡수된다. 동물의 배설물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토양은 탄소를 저장하는 창고가 된다.

그런데 땅을 갈아엎으면 어떻게 될까? 흙이 잘게 부서지고 땅이 척박해지면? 땅에 있는 탄소가 대기로 날아갈 것이다. 이때 풀과 잡초는 탄소저장고를 결박하는 역할을 한다. 미세한 뿌리는 땅을 지지하면서 주변에 뻗은 작은 공극으로 물을 보내며 땅을 잘 다져 놓는다. 매서운 바람과 큰비에도 땅이 침식되지 않으므로, 탄소도 날아가지 않는다.

현대의 관행농법은 이런 땅의 탄소저장 기능을 빼앗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일년 내내 한 작물을 심고(단작), 매년 밭갈이를 하고(경운), 제초제로 풀을 없앤다. 전 지구 이산화탄소 농도가 치솟은 20세기 중반이 바로 관행농법이 본격화한 시기다.

하지만 토양의 탄소 저장·배출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는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보고서도 토양의 탄소 배출∙감축량을 공식적으로 산정하지 않고 있다. 그래도 변화의 조짐은 있다. 재생에너지 전환에 앞선 나라들은 최근 들어 농업에 눈길을 돌린다. 유럽연합은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농업부문에서 유기농 강화를 천명했다. 비료와 농약 투입을 최소화하고 토양을 탄소저장고로 인정해 온실가스 감축을 인정받겠다는 계획이다. 유기농은 윤작(복수 작물 돌려짓기)이 기본이기 때문에 땅심을 돋우는 데 중점을 둔다. 기름진 땅일수록 탄소를 붙들어 맨다.

미국은 토양 구조를 개선하는 재생농법으로 탄소중립을 향해 뛴다. 여러 작물을 돌려짓고, 지면을 덮어 토양 침식을 막는 피복작물을 심고, 무엇보다 밭갈이를 최소화한다. 2015년 파리기후협정 때 프랑스는 ‘1000분의 4(4퍼밀) 이니셔티브’를 제안했다. 토양의 탄소를 매년 0.4%씩 늘려 지구 온도상승을 1.5도 이내로 막자는 계획에 30개국이 서명했다.

이씨는 한국유기농업협회 대표다. 청옥산 자락 그의 육백마지기 농장에 겨울이 되면 호밀을 심는다. 거두려 심는 게 아니라 땅심을 좋게 하려고 심는다.

“풀이 농토를 붙잡아주잖아요. 그런데 제초제를 마구 들이 치니까 장마 지면 좋은 땅이 다 떠내려가 버리는 거야. 잡초는 박멸할 대상이 아니에요.”

그의 주장은 이제 황당무계하지 않다. 잡초가 기후변화를 막는 무기가 됐기 때문이다.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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