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물가 못잡으면 내년 '스태그플레이션' 온다
올해 다섯차례 연속 인상 행진
"고물가·고환율에 불가피" 판단
11월 금통위도 추가 인상 시사
IMF 잠재성장률 밑도는 성장 예고
한국은행(한은)이 12일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를 열고 시장의 예상대로 '빅 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는 연 2.50%에서 연 3.00%로 올랐다. 연 3%대 기준금리는 2012년 10월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한은이 한꺼번에 0.50%포인트(p)를 인상한 것은 지난 7월에 이어 두번째다. 또 4·5·7·8월에 이어 다섯 차례 연속 올린 것으로, 한은 역사상 최초 기록이다. 이로써 지난해 8월 기준금리를 0.25%p 인상하며 '통화정책 정상화'에 돌입한 이후 이날까지 1년 2개월 새 총 2.50%p를 올렸다.
한국은행은 지난 8월 금통위 직후 밝힌 '0.25%p씩 점진적인 인상'이라는 선제적인 가이드를 깨고 '빅 스텝'을 결정했다. 그만큼 우리 경제 여건이 녹록치 않다는 뜻이다.
금통위는 이날 의결문에서 "높은 물가 오름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환율 상승으로 물가의 추가 상승 압력과 외환 부문 리스크(위험)가 증대되는 만큼 통화정책 대응의 강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국내 경기와 관련, "앞으로 글로벌 경기 둔화, 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성장세가 점차 낮아질 것"이라며 "올해 성장률은 지난 8월 전망치(2.6%)에 대체로 부합하겠지만 내년의 경우 전망치(2.1%)를 하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내 경기가 둔화되고 있지만, 물가가 목표 수준을 크게 상회하는 높은 오름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며 올해 한차례(11월) 남은 금통위에서 추가 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물가 상승률이 5%대면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며 "11월 인상 폭은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올 연말 기준금리가 연 3.5% 수준이 될 것으로 보는 시장 예상에 대해 "다수의 금통위원들이 말씀하신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게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로써 한·미간 기준금리 격차는 0.50%p~0.75%p에서 0.00∼0.25%p로 좁혀졌다.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도 11월과 12월 올해 남은 두차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대폭 올릴 것으로 예상돼 금리 격차는 다시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중 금리도 덩달아 뛰면서 성장은 둔화되고, 가계와 기업 차주들의 이자부담은 급증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창용 총재는 "이번 기준금리 인상이 경제성장률을 0.1%p 전후로 낮출 것"이라며 "가계와 기업을 합해 이자 부담은 12조2000억원 정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한은이 이처럼 경기침체를 감내하고라도 '빅 스텝' 단행을 결정한 것은 물가를 잡지 않을 경우 내년엔 스태그플레이션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은 '불경기'(stagnation)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경기가 침체되는 상황에서 물가가 상승하는 상태를 뜻한다. 과거 1970년대 초반 오일 쇼크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 시기 일자리는 급감하고 물가는 급등해 서민 생활이 엄청나게 어려웠던 경험이 있다.
실제로 소비자물가는 2021년 4분기 3.5%(전년 동기비)에서 올 1분기 3.8%, 2분기 5.4%, 3분기 5.9%로 급등 추세다. 월별로 보면 5월 5.4%, 6월 6.0%, 7월 6.3%, 8월 5.7%, 9월 5.6%로 8, 9월 소폭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상당 기간 고공행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지속, 미·중 갈등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여전히 강세이기 때문이다.
반면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4분기 1.3%(전기비)에서 1분기 0.6%, 2분기 0.7%로 급락했다. 노무라는 3분기엔 마이너스 2.2%로 역성장을 했을 것으로 추정했다.국제통화기금(IMF)은 11일 내년 한국 경제 성장률을 2.0%로 전망했다. 이는 우리나라 잠재 성장률을 밑도는 수준으로, 경기침체를 예고한 것이다. IMF는 또 우리나라 물가상승률 올해 5.5%, 내년 3.8%로 내다봤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미 금리차가 더 벌어지면, 환율이 뛰어 수입물가 상승을 유발하고 국내 물가 상승까지 유발하게 된다"며 "한은이 11월 금통위에서도 '빅 스텝'을 밟아 기준금리 격차가 1%포인트 안으로 유지되는 상황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문혜현기자 moone@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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