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여야 의원 간 골프 운동이라도 해봐라

CBS노컷뉴스 구용회 논설위원 2022. 10. 1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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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윤창원 기자


정치권에서 논쟁은 왜 사사건건 극단적 프레임으로 귀결되는 것일까. 윤석열 정부 들어 처음으로 안보 논쟁이 제기되었다. 지난 대선 시절 안보와 경제 등 거대 담론이 실종됐었고, 북한이 이젠 상상도 못했던 저수지 밑바닥에서 전술 핵무기 발사 실험까지 했으니 당연히 필요한 논쟁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 논쟁이라는 것은 시작부터 '친일' 대 '친북' 프레임으로 귀결되고 만다. 토론은 한 발도 튀어 나갈 수 없다. 각 진영은 그것을 노렸을 것이고 속으로 만족했을 것이다. 국민을 위한다고 입으로 떠들지만 어차피 지지자 만을 위한 갈라 치기 정치가 본심이었을 테니까…


오늘 한반도 위기는 건설적 토론을 요구한다. 프레임으로 장벽을 칠 일이 아니다. 무슨 얘기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비핵화 추진은 이제 휴지 조각처럼 버려야 할 유산이 된 것인지, 그래도 관여(engagement)와 억지(detterance)라는 전략적 측면에서 대화의 끈으로 여전히 생명은 남아 있는 것인지, 한미 동맹에 한일 군사 협력을 더하는 것이 한미일 동맹으로 나가는 관문인지, 북핵 대응을 위해 그것이 최선의 선택지인지, 반대로 한일 군사 협력은 미래 어느 시점에 '트로이 목마'가 될 개연성은 없는 것인지, 그렇다면 더 자주 국방을 강화할 것인지, 그 방안은 무엇인지 등을 두고 토론이 강물처럼 흐르게 해야 한다. 정치가 싸울망정 차단 시켜선 안 된다. 오히려 외교·안보 기관과 학계가 국민과 함께 치열하게 논쟁할 수 있도록 수도 꼭지를 열어줘야 한다. 그것이 국민적 힘을 모아가는 과정이다.

연합뉴스


'한 극우 인사의 정치 실험(중앙일보, 10월 11일자)이란 글을 보았다. 미 육군 대령 출신 더그 마스트리아노는 트럼프를 등에 업고 미국 중간 선거에서 펜실베니아 주지사 공화당 후보가 되었다. 그런데 마스트리아노는 선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지만 TV 광고도, 유권자에게 우편 공보물도 일체 보내지 않는 특이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주 상공회의소 초청이든 모든 토론회와 미팅도 거절하고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다른 진영이나 중도층을 설득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한다. 오직 핵심 지지층의 표만 얻겠다는 전략이다. 상대에 대한 혐오를 기반으로 지지층, 팬덤만을 대상으로 하는 극단적 정치 실험이 어떤 귀결로 이어질지 이번 선거에서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 만일 그가 펜실베니아 주지사로 당선된다면 펜실베니아 주민 절반의 존재는 정치에서 '무의미'해지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29일 오후 국회 본관 계단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안에 항의하는 피켓 시위를 가진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해임안 처리를 마친 뒤 계단을 지나고 있다. 윤창원 기자


한국 정치가 복사해가는 미국 정치는 언제부터 혐오로 치달았을까.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그 실마리를 전해준다.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워싱턴은 화기애애 했던 곳이었다. 그들은 미친 듯이 논쟁했지만 밤에는 여야가 같이 골프를 치러 나갔다. 1980년대 치열한 논쟁을 하고 전화를 건 레이건 대통령에게 민주당의 하원 의장인 팁 오닐은 "대통령 님. 그게 정치에요. 6시 땡 하면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때 의회는 오늘날보다 더 많은 법안을 발의하고 통과시켰다.

미국의회. 연합뉴스


1995년부터 판이 바뀌었다. 뉴트 깅그리치가 공화당 의원이 되자 극단적 양당 정치가 시작되었다. 그는 노골적으로 공화당과 민주당의 우호적 관계를 어렵게 만들어 나갔다. 깅그리치는 의사당에서 공화당 의원이 민주당 의원과 협조하는 것을 금지 시켰다. 민주당에 발언할 때 "부패했다. 역겹다"같은 혐오감을 유발하는 어휘를 사용하라고 권고했다. 또 의원들이 워싱턴보다는 지역구에서 집중하게 만들어 워싱턴에 머물지 못하게 했다. 미국 땅이 얼마나 넓은가. 정치인들이 소속을 초월해 우정을 쌓던 전통도 무너뜨렸다. 2017년 공화당의 존 메케인 상원의원에 대한 조 바이든의 회고는 시사적이다.

"1990년대에 존과 나는 논쟁에 참여하고 옆에 나란히 앉아서 얘기를 나눴는데 양당 지도부가 질책을 하더군요. 논쟁 중에 그런 식으로 친한 티를 내면 어쩌자는 거죠. 깅그리치 혁명 이후의 일입니다. 우리가 같이 있는 것을 원치 않았어요. 그때부터 분위기가 바뀐 겁니다."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나경원 당시 원내대표와 소속의원들이 지난 2019년 4월 26일 국회에서 사법개혁특별위원회 회의를 저지하기 위해서 회의장 입구에서 드러누워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윤창원 기자


오늘 한국에서 여야 혐오는 언제 시작되었을까. 정치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르겠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서 양측은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증오와 분열의 정치는 그때 악화됐고 박근혜, 문재인 전 대통령은 그 대립과 혼돈의 정치를 이용함으로써 오히려 강화 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때부터 여야 의원 간 친목이나 사교 관계도 끊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의사당서 싸울 때 싸우더라도 밖으로 나오면 서로 교통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이적 질로 취급될 만큼 불순하고 불충한 일이 되었다. '바이든 당'과 '날리면 당'은 돌연변이로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오로지 권력자를 위해 혐오를 자양분 삼아 온 결과이다.

황진환 기자


넋두리 같은 얘기라는 것을 안다. 총선 공천을 위해 권력자의 눈치만 봐야 하는 의원들의 현실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그러나 한국 정치의 혐오와 분열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작은 것, 사소한 것부터 노력해야 했으면 좋겠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제안했던 여야 중진협의체를 구성해서 서로 교통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양당 지도부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여야 중진협의체가 결정 기구 역할을 할 수는 없다. 친목 교류라도 좋다고 본다. 솔직히 언론의 감시가 무섭겠지만 혐오 정치를 완화시킬 수 있다면 정당한 범위 내에서 여야 의원 간 골프 운동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대통령실도 언론사가 가짜 뉴스로 한미동맹을 훼손한다고 '자학적' 어휘를 자꾸 동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통령은 국민의 대통령이다. 혐오와 분열을 녹여낼 수 있도록 서로 작은 것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가다가는 국내 선거에서도 마스트리아노의 '극우 정치 실험'이 도래하지 않을 것이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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