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의 품격[편집실에서]

2022. 10. 12. 07:1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왕 조용필. 1980년대 가요계를 평정한 스타였습니다. ‘잊혀진 계절’의 이용, ‘못다 핀 꽃 한송이’의 김수철 등이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아성은 견고했습니다.

모래판의 황제 이만기. 역시 1980년대 천하장사 타이틀을 독식하다시피 했습니다. ‘인간 기중기’ 이봉걸이 거의 유일한 적수였으나 대세를 바꿔놓진 못했습니다. ‘강호동’이라는 괴물 신인한테 일격을 당할 때까지 난공불락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무슨 주장을 펴려고 밑밥을 이리 까느냐, 미국 얘기를 하고 싶어서요. ‘해가 지지 않던’ 영국의 뒤를 이어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을 이끌며 소련을 위시한 동구 공산주의 진영과 세상을 양분한 나라가 미국입니다. 소련의 몰락과 함께 단극체제의 중심국가로서 지금까지 세계를 제패해온 나라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라는 걸 들고나와 현지에서 생산하는 전기차가 아니면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현대기아차 등 국내 자동차, 배터리업계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첨단반도체 분야에선 사실상 중국 수출을 하지 말랍니다. 대중 수출 비중이 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보호무역주의 기치를 드높이 올리던 트럼프 정권 때부터 조짐이 심상치는 않았지만 바이든 정권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미국이 국익만 앞세워 기축통화국이라는 지위와 금리를 무기로 압박할 경우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국가들의 ‘붕괴’로 전 세계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겁니다. 미국과 대립 중인 중국 언론도 미 연준이 자국의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를 수출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조용필과 이만기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였던 건 맞습니다. 하지만 획일화된 사회 분위기, 한정된 매체 환경 등 당시의 여건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아무리 뛰어난 인재가 나타나도 기술 발전 속도, 관심의 다원화, 역량의 평준화 등으로 구조적으로 ‘롱런’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고들 합니다. 미국이라 해서 도도한 이런 역사적 흐름의 예외일 수는 없겠지요. ‘중간선거’라는 급한 불을 꺼야 하는 바이든한테 이런 경고가 먹혀들지 의문이지만 세계를 갈라치고 우방을 줄 세우는 지금의 방식이 지속가능하기 어렵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나만 아는’ 거인이 아니었던 조용필과 이만기조차 너무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얄밉다”, “제발 좀 져라”는 일각의 야유를 받아야 했습니다. 지위에 걸맞은 품격과 아량을 미국에 기대하는 까닭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중국의 반발, 유럽 대륙의 극우 돌풍 등 여기저기서 파열음이 들립니다. “나부터 살고 보자”는 미국의 일방통행식 진격이 지금 지구촌이 당면한 가장 큰 리스크(위험요인)로 작동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

인기 무료만화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