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시간 오페라 대작, 모르는 만큼 새롭게 보인다

임석규 2022. 10. 1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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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서 막오르는 독일산 오페라 4부작 '니벨룽의 반지'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4부작 가운데 <신들의 황혼>의 한 장면.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독일 무대를 그대로 옮겨왔고 가수들도 전부 독일 사람들이다 보니 여기가 한국인지 독일인지 헛갈리네요.(웃음)”

리하르트 바그너의 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연속 공연을 앞두고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리허설에 들어간 연출가 요나 김(Yona Kim)은 “한국에서 ‘반지 시리즈’를 하게 된다는 게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라고 했다. 10일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그는 “오페라 역사에서도 아주 특별한 이 작품이 한국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보였다.

바그너의 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올리는 독일 만하임극장 상임 연출가 요나 김은 “한국에서 반지 시리즈를 하게 된다는 게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라고 했다. © Benjamin Lüdtke

바그너가 대본과 곡을 쓴 이 장대한 오페라 4부작을 무대에 올리는 ‘링 사이클’(Ring Cycle)은 공연시간이 장장 16시간에 이른다. 하루에 4부작을 다 하는 건 불가능해 하루 한 작품씩 네 차례 나눠서 한다. 한 작품을 마치면 며칠 휴식을 취한 뒤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 전체 기간은 2주 이상 걸리는 게 보통이다. 유럽 주요 극장들도 쉽게 엄두 내지 못하는 이 엄청난 무대를 오는 16일부터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선보인다. 그것도 독일 만하임국립극장이 지난 7월 공연한 최신 프로덕션이다. 주역 가수와 오케스트라, 합창단 230여명은 물론 무대와 의상, 분장과 조명, 소품까지 모두 ‘독일 직수입’이다. <라인의 황금>(16일), <발퀴레>(17일), <지크프리트>(19일), <신들의 황혼>(23일) 순서다. 4부작을 불과 일주일 만에 끝마치는 ‘속도전 공연’이다.

‘링 사이클’은 국내에 딱 한번 전례가 있다. 2005년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이끄는 러시아 마린스키극장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펼쳤다. 국내 두번째인 이번 ‘링 사이클’은 바그너의 본향인 독일 프로덕션이란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만하임극장 오케스트라는 바그너의 오페라를 집중적으로 공연하는 바이로이트 축제에 자주 참석했다. 주도권이 성악이 아니라 관현악에 있고, 웅장한 스케일의 장중한 사운드가 특징인 바그너 악극에 최적화된 관현악단이라 할 만하다. 이 공연은 만하임극장과 대구오페라하우스의 문화교류 차원에서 성사됐다. 2026년엔 만하임극장에서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을 공연한다.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되는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4부작 가운데 <라인의 황금>의 한 장면. 독일 만하임극장이 지난 7월 공연한 무대를 그대로 옮겨온다.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연출을 맡은 한국 출신 요나 김은 현재 만하임극장 상임 연출가다.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았어요. 극장에서 인턴으로 일하다 오페라 연출 기회를 얻었는데, 마침내 내 몸에 꼭 맞는 옷을 찾아낸 듯한 느낌이었지요.”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에서 인문학을 공부한 그는 “음악, 무용, 연극, 미술, 퍼포먼스 등 다양한 분야를 접한 게 오페라 연출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지난 3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연출하는 등 지금껏 오페라 30여편을 무대에 올렸다. 2015년 우리 국립오페라단 초청으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후궁 탈출>을 연출하기도 했다.

북유럽 신화에 바탕을 둔 ‘반지 시리즈’는 인간 존재의 근원을 묻는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내용이다. 애호가들도 배경지식을 공부하고 대본을 읽어본 뒤에 관람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요나 김의 견해는 조금 다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들 하지만 모르는 만큼 보이기도 합니다. 그냥 아무 준비 없이 물에 뛰어들듯 이 오페라와 맞닥뜨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많이 안다는 건 그만큼 이 작품에 대한 편견이 있다고 볼 수도 있거든요.”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4부작 가운데 <발퀴레>의 한 장면.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그는 ‘바그네리안’(바그너 애호가)들이 끝없이 변주되는 ‘유도동기’(오페라, 교향시 등 악곡에서 특정 인물이나 상황 등과 결부돼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짧은 주제나 동기)를 따라가며 분석하는 감상법에도 살짝 이의를 제기한다. “유도동기는 요렇게 저렇게 끝도 없이 변주되면서 계속 흘러나오죠. 그것만 따라가다 보면 다른 건 못 볼 수도 있어요. 그게 오히려 입체적·다각적 접근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봐요.” 그는 “원전의 사전적 의미에 너무 집착하면 진짜 살아 있는 뜻이 보이지 않을 수 있다”며 “오페라에 대한 자세한 정보도, 편견도 없이 순수한 호기심으로 바그너를 마주할 한국 관객의 반응이 무척 궁금하다”고 했다.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4부작 가운데 <지크프리트>의 한 장면.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이번 무대의 특징을 묻자 그는 영상을 활용해 ‘영화 기법’을 가미한 점이라고 답했다. 이를 ‘리얼리즘과의 결별’이라고 표현했다. “실시간으로 촬영한 ‘클로즈업 영상’을 통해 관객들이 가수들의 입 모양과 표정까지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어요. 공감대를 넓힐 수 있는 셈이죠.” 이를 위해 카메라맨이 촬영 장비를 들고 무대 앞뒤를 누비게 연출한다. 요나 김은 “극장 먼 좌석의 관객들도 가수들의 제스처나 표정의 변화를 살필 수 있을 것”이라며 “미리 녹화한 영상들도 이 오페라에 영화의 숨결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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