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 그 사연] 배일호 '신토불이', 우리농산물 잊지 말아야

2022. 10. 12.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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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값이 폭락해 수확을 앞둔 농민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농민의 주제가 '신토불이'를 되새기며 쌀값문제는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임을 상기하고자 한다.

그는 농민을 위한 노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우리 땅과 몸이 둘이 아니니 농민이 수확한 곡식과 음식을 잊지 말자는 내용의 가사를 민요나 시조처럼 운율에 맞춰 썼다.

당시 배일호는 '성실맨'으로 소문이 자자했고 그의 노력은 방송사 피디(PD)의 눈에 들어 '전국노래자랑'에 자주 출연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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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토불이’가 수록돼 1993년 발표된 배일호의 독집.

쌀값이 폭락해 수확을 앞둔 농민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과 정치권이 정쟁을 일삼아 언론을 점령하는 바람에 농민의 시름이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농민의 주제가 ‘신토불이’를 되새기며 쌀값문제는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임을 상기하고자 한다.

1993년 발표된 ‘신토불이’는 KBS 음향담당 직원이자 작사가로 활동하며 송대관의 ‘네박자’, 현철의 ‘봉선화 연정’ 등의 노랫말을 쓴 김동찬의 기획에서 시작됐다.

그는 농민을 위한 노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우리 땅과 몸이 둘이 아니니 농민이 수확한 곡식과 음식을 잊지 말자는 내용의 가사를 민요나 시조처럼 운율에 맞춰 썼다.

김동찬은 가수 데뷔를 준비했던 배일호에게 노래를 줬다. 당시 배일호는 ‘성실맨’으로 소문이 자자했고 그의 노력은 방송사 피디(PD)의 눈에 들어 ‘전국노래자랑’에 자주 출연하기에 이른다. 그 덕분에 노래가 크게 알려졌다.

한편 1993년 세계 117개국이 우루과이에 모여 다자간 수출장벽을 허무는 조약을 체결했다. 이것이 ‘우루과이라운드(UR)’다. 이때 쌀시장이 개방되자 농민들이 거리로 나와 반대시위를 벌였다.

시위 때는 늘 노래가 필요한 법이다. 배일호는 전국을 다니면서 ‘신토불이’를 부르며 시위에 동참했다.

배일호의 노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자유무역협정(FTA)이 시작되며 시위가 재개되자 또다시 농민과 함께했다. 이쯤 되면 운 좋게 히트곡을 받아 이름을 알린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농민을 위해 ‘신토불이’를 부를 자격이 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이 때문인지 2007년 충남 논산에 ‘신토불이’ 노래비가 건립됐다. 높이 5m, 폭 2.5m로 국내에서 가장 큰 노래비라고 한다.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 농민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으리라. 논을 갈아엎을 정도로 사달이 나고 있지만 정부의 이렇다 할 대책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우리 조상이 쓰는 말 가운데 ‘동티가 나다’는 표현이 있다. 한자 ‘동토(動土)’에서 온 말이다. 뜻밖의 재앙이 닥칠 때를 의미하는데 ‘건드리면 안되는 땅을 망가뜨려 지신(地神)을 노하게 해 화를 입었다’는 것을 어원으로 한다. 우리 땅과 자연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옛말임에 틀림없다.

하루빨리 우리 논밭이 현대 경제 논리에 휘둘려 훼손되지 않도록 정부가 나섰으면 한다.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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