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관료들, 통화스와프 뒤로 숨지 말라 [오늘과 내일/박용]

박용 부국장 2022. 10. 12.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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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7일 '달러 마이너스 통장'인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에 대한 진실 한 조각을 꺼냈다.

이 총재는 미국이 나서려면 "전제조건인 글로벌 달러 유동성이 위축되는 상황이 와야 한다. 적절한 때가 오면 깊이 있게 논의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외환위기 가능성이 매우매우 낮다"면서 한미 통화스와프에 공개적으로 매달리면 시장은 "한국이 우산을 찾는다"고 오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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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통화스와프 기우제 지내며
30억 달러 경상적자 막지 못해
박용 부국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7일 ‘달러 마이너스 통장’인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에 대한 진실 한 조각을 꺼냈다. 이 총재는 미국이 나서려면 “전제조건인 글로벌 달러 유동성이 위축되는 상황이 와야 한다. 적절한 때가 오면 깊이 있게 논의하겠다”고 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나 코로나19 사태처럼 ‘달러 기근’이 닥치지 않는 한 미국의 ‘오케이’ 사인을 받기 어렵다는 얘기다. 동맹에 너무 야박한 거 아니냐고 하지만, 미국은 14년 전에도 그랬다. 2008년 9월 15일 세계 4위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무너지고 45일이 지나서야 브라질 멕시코 싱가포르와 함께 한국에 통화스와프 라인을 열어줬다.

통화스와프는 비가 올 때 쓰는 우산이다. 정부가 “외환위기 가능성이 매우매우 낮다”면서 한미 통화스와프에 공개적으로 매달리면 시장은 “한국이 우산을 찾는다”고 오해한다. 통화스와프는 양국이 은밀하게 추진할 비상대책이지 대통령의 순방 성과로 치장하거나 외환시장 구두 개입용으로 공공연히 입에 담을 일이 아니다.

통화스와프가 고비를 넘기기 위해 먹는 청심환이라면 경상수지 흑자는 외환위기를 예방하는 백신이다. 경제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통화스와프 ‘기우제’를 지내기 전에 스스로 노력해 성과가 날 수 있는 과제라도 제대로 해놨다면 8월 경상적자가 30억 달러까진 나진 않았다.

적자의 상당 부분은 에너지 수입에서 나왔다. 돈을 잔뜩 풀어 물가가 오른 데다 대선, 총선 등 정치 일정까지 겹쳐 전기요금을 묶어두고 유류세 보조로 ‘진통제’만 놔주다 보니 달러를 주고 사와야 하는 연료 가격이 폭등하는데도 국내 수요가 줄지 않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에너지 수입이 늘어나 무역수지 적자가 커지면 원화 가치가 하락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한미 통화스와프를 얘기하기 전에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처럼 ‘진통제’와 함께 강력한 에너지 절감 등의 ‘수요관리’ 대책을 내놓고 국민을 설득하는 일부터 시동을 걸었어야 했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최근 영국의 돈 풀기용 감세가 국채 투매와 파운드화 폭락으로 이어진 것처럼 정부가 실기나 오판을 하면 시장의 공포감이 커진다. 벌써 미국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됐다. 미국의 이자가 더 높으면 한국에 투자할 유인이 줄어든다. 자본 이탈 가능성도 커진다. 정부와 정치권은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려야 할 때 부채 부실 위험 때문에 올리지 못하는 ‘부채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재정 적자와 민간 부채를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정부와 한은이 “경상수지 적자가 일시적이고 연간 기준으로 흑자를 낼 것”이라 했지만 산유국의 감산 움직임에 유가가 다시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 안심할 수 없다. 중국 등의 경기 침체로 수출도 심상치 않다. 서비스수지 역시 해상운임 하락과 해외여행 증가로 8월에 7억 달러 이상의 적자로 돌아섰다.

1997년 외환위기는 경상수지 적자로 달러 곳간이 비는데 갚아야 할 단기외채가 늘어나는 걸 방치한 정부의 실패였다. 환율을 안정시키려면 달러 곳간부터 지켜야 한다는 게 외환위기의 뼈저린 교훈이다. 위기 때를 대비해 한미 통화스와프를 물밑에서 치밀하게 준비하되 경상수지 관리의 끈도 다시 바짝 조여야 한다. 통화스와프 방패 뒤로 숨는 경제 관료들을 뛰게 하려면 대통령 집무실에 수출입 실적을 관리하는 ‘국제수지 현황판’이나 ‘에너지 절감 상황판’이라도 갖다 놓아야 할 판이다.

박용 부국장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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