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철학도 비전도 없는 여가부 폐지
여론 수렴도 조율 과정도 '깜깜'
무작정 "여성 보호 강화" 되풀이
'견강부회' 尹정부 첫 조직개편
창조적 파괴는 없었다. 지난 6일 발표된 정부 조직개편안에는 국정 철학도, 비전도, 미래지향적 메시지도 보이지 않는다.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만 도드라질 뿐이다.
결과도 실망스럽지만 과정은 더 문제다. 21년 역사의 중앙행정기관을 없애고 새 본부를 출범시키면서 준비 과정이 깜깜이다. 여가부는 지난 6월 전략추진단을 구성하면서 전문가와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누구를 몇 번 만나 무슨 논의가 오갔는지, 여가부 기능을 흡수하는 복지부와 고용노동부를 비롯해 조직개편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 국무조정실과 어떻게 조율했는지 모두 공개하지 않고 있다. 회의록조차 남겨놓지 않았다고 한다. 밀실행정이라고 실토하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장관은 “중간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최종 결과를 어떻게 가져오는지가 중요하다”고 한다.
결과물이 시원찮으니 과정을 물어보는 것이다. 대체 어떻게 준비했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느냐고. 어떻게 인구와 가족과 양성평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인지 새 본부의 운영방안과 기대효과도 제대로 설명을 못하고, 여가부와 대통령실 모두 앵무새처럼 ‘여성 보호’, ‘여가부 기능 강화’라는 말만 반복하니 답답할 따름이다.
사후 여론 수렴 과정 역시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여가부는 10일 장관 주재로 현장 소통간담회를 열었는데 여가부 폐지를 반대해온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YWCA 등은 제외했다. 초대받은 7개 단체 중 한국여성경제인협회, IT여성기업인협회, 한국여성벤처협회, 한국비서사무협회 등 경제 관련 단체만 4곳이다. 소통을 얼마나 더 할지 모르겠지만, 정책에 반대하는 집단부터 만나 이해를 구하고 설득하는 게 순리 아닌가.
전국 115개 여성단체가 여가부 폐지 반대 성명을 냈다. 이들을 설득하는 것은 물론 쉽지 않다. 그렇다고 반대 목소리를 배제한 채 정책에 동조하는 이들만 불러 진행한 반쪽짜리 간담회는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불투명한 협의 과정, 부실한 준비와 대응은 반대하는 쪽의 명분과 화력을 키워줄 뿐이다.
여론 수렴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거대 야당은 무슨 수로 설득해 국회 문턱을 넘겠단 말인가. 국회에서 여야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여가부 폐지의 당위성을 놓고 싸우는 모습을 봐야 한단 말인가.
정부조직은 행정수반인 대통령의 국정 비전을 실현하는 통치수단이다. 역대 정부는 시대 상황과 수요 변화를 반영해 정부조직을 개편했다. 국민은 거기서 정부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비전을 가늠한다.
윤석열정부는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복합경제위기에 출범했다. ‘잘해야 본전’도 찾기 힘든 불리한 출발선상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첫 정부조직 개편에 이런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지와 비전은 없고, 앞뒤 안 맞는 설명으로 정쟁과 갈등만 예상되는 여가부 폐지에 방점을 찍었다. 대체 어디로 가려는 건가.
김수미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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