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희의동행] 외줄타기

2022. 10. 11. 23:4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우연히 줄타기 공연을 봤다.

출렁이는 외줄 위에서 부리는 그 곡예에 가까운 연기라니.

한 컷 사진으로 볼 때만 해도 이런 게 있구나, 심드렁했는데 웬걸,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줄 위를 걷고, 지치고, 뛰고 하는 그 줄타기 공연은 예상치 못한 여운을 안겨주었다.

외줄 위에서 하루하루를 아슬아슬하게 살아내는 우리의 모습이 그 어름사니의 연기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줄타기 공연을 봤다. 출렁이는 외줄 위에서 부리는 그 곡예에 가까운 연기라니. 현장에 있었더라면 줄을 타는 어름사니의 표정과 재담까지 제대로 보고 들을 수 있었을 테지만 영상이어서 아쉬웠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그렇게나마 볼 수 있어서.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러려니 했다. 한 컷 사진으로 볼 때만 해도 이런 게 있구나, 심드렁했는데 웬걸,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줄 위를 걷고, 지치고, 뛰고 하는 그 줄타기 공연은 예상치 못한 여운을 안겨주었다. 사진으로만 볼 때는 그랬다. 그 줄타기가 과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만큼의 가치가 있나 하는 그런 부끄러운 생각을 했었다.

기실 줄타기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던가. 이국의 담력 좋은 사람들이 고층 빌딩 사이나 바람 씽씽 까부는 협곡을 장대 하나에 의지해 건너는 풍경은 종종 볼 수 있었고, 그런 까닭에 특별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 위험천만한 높이에서 용케 균형을 잡고 목표 지점에 도달해 보이곤 했다. 우리의 줄타기도 그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한데 평소의 그런 내 생각을 그 동영상 하나는 여지없이 깨트려 버렸다.

느슨한 줄 위를 걷는 그 어름사니의 모양새와 연기는 어쩌면 그렇게 우리의 삶과 닮았던지. 외줄 위를 걷거나 뛰는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기예가 아니었다. 줄 위의 그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다.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방심하지 말라고. 언제나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내디디라고. 삶은 방심한 순간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이라고. 영상 속 어름사니는 떨어질 듯 떨어질 듯 하면서도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 한 번, 위험한 순간이 있었지만 다행히 그는 줄을 붙잡고서는 바닥까지 떨어지는 것을 면했고 탄성과 반동을 이용해 다시 줄 위로 올랐다. 그 대목이 가장 인상 깊었다. 그 역시 어름사니는 말해주는 듯했다. 실수해 바닥으로 떨어지더라도 다시 줄 위로 올라오라는 것. 포기하지 말라는 것.

따져보면 그 느슨한 줄은 곧 여로의 상징이 아니겠는가. 재담 속에 들어 있는 그 풍자와 해학은 또 어떻고. 놀이 하나에도 그렇듯 삶의 의미를 실어내는 우리의 지혜와 웅숭깊음에 그저 감탄이 나온다. 그러니 어찌 우리의 줄타기가 외국의 단순한 줄타기 곡예와 같을 수 있을까. 어름줄타기는 남사당패의 주요 놀이 가운데 하나로, 부잣집이나 궁궐, 관아에서 놀던 광대줄타기와는 조금의 차별성을 갖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인생이란 줄 위에 올라서 있는 어름사니들이 아니겠는가. 외줄 위에서 하루하루를 아슬아슬하게 살아내는 우리의 모습이 그 어름사니의 연기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어름줄타기 공연을 보러 가야겠다. 삶의 모습을 담아낸 내공 깃든 놀이를 몰랐다니, 그동안 나는 도대체 뭘 알고 있었을까. 외줄 위의 어름사니가 주는 여운이 깊고 길다.

은미희 작가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