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우산, 생명연장..'공유 우산'으로 활용
코로나로 실직 50년 경력 구두공
자활센터 우산 수리공 교육 이수
동료 2명과 960개 폐우산 ‘재생’
관악구 ‘고장난 우산 수거함’ 설치
쓰레기 줄이고 자원 선순환 ‘호평’
지난 6일 오전 10시30분, 녹슨 우산살을 펜치로 뜯어내는 김계영씨(64)의 손길엔 망설임이 없었다. 우산을 한 번 접었다 펴면 진단명이 나왔다. 쇠가 휘어진 것, ‘찰칵’ 소리 나며 잠금장치가 맞물리지 않는 것, 우산 접는 버튼이 눌리지 않는 것 등. 김씨는 맞춤형 처방을 내렸다. 알맞은 부품을 창고에서 찾아 실과 드라이버로 연결하거나 사포질을 했다.
김씨는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관악봉천자활센터 환경지킴이 사업단에 고용된 ‘우산 명의’다. 사업단은 신림동주민센터, 미성동주민센터 등 7곳에 고장 난 우산 수거함을 설치해 우산을 수거한 뒤, 우산수리센터에서 직접 수리한다. 이렇게 새로 태어난 우산은 공유우산으로 활용된다. 우산 수리공들은 120만원에서 130만원 수준의 월급을 받는다.
“우산살이 6개짜리냐 8개짜리냐에 따라 부품 길이가 다 달라요.” 김씨가 창고에서 부품을 고르며 말했다. 쇠를 구부리고 뜯어내는 데엔 힘이, 실 바느질엔 섬세함이 필요하다.
50년 경력의 구두공인 김씨가 우산 수리 일을 하게 된 건 지난 6월부터이다. 30년 넘게 근무하던 고양시의 구두방이 코로나19로 문을 닫아 실직한 김씨는 지난 3월 관악봉천지역자활센터를 찾았다. 이후 센터에서 남대문시장 기술자로부터 한 달간 우산 수리 교육을 받았다. 구두방에서 쓰던 우레탄 망치와 쪽가위 등 장비들을 이제 우산을 고치는 데 쓴다.
김씨는 허용호씨(58), 이모씨(41)와 약 4개월째 팀을 이뤄 우산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쇠 부품 교체 담당인 김씨는 접이식·자동 우산을 주로 수리하고, 허씨는 장우산 위주로 천갈이를 한다. 이씨는 고칠 수 없는 우산의 부품을 해체해 정리한다. 이 부품들은 다른 우산을 고치는 데 사용한다.
고장 난 우산의 98%가량은 관악봉천지역자활센터가 서울 관악구 7곳(자활센터·주민센터 등)에 설치한 ‘고장 난 우산 수거함’에서 수거했다. 폐건전지함처럼 쓸 수 없는 우산을 기증받는 통이 도시 곳곳에 설치돼 있다. 6월부터 9월까지 1477개의 우산이 수거됐다. 그중 절반 이상인 960개의 우산이 수리 기술자 세 명의 손을 거쳐 되살아났다. 나머지는 다른 우산을 수리하는 데 부품으로 쓰인다.
살아난 우산의 손잡이에는 초록색 ‘공유우산 스티커’가 붙는다. 이후 관악구 소재 자활센터와 주민센터 등 7곳에 설치된 ‘공유우산함’에 꽂힌다. 회색 우산 공유함에 적힌 ‘갑자기 내리는 비 누구든지 부담 없이 사용하세요!’라는 안내처럼 누구나 자유롭게 가져가면 된다. 버리지 않고 고쳐 쓰는 우산의 순환이 이뤄진다. 우산의 수거와 공급은 자활사업단원 16명이 맡는다. 월·수·금요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센터에 방문해 우산 수리를 요청할 수도 있다. 한 달 평균 10여명이 방문했다.
우산 수리 기술자 세 명은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허씨는 “고맙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주민들도 좋아해 보람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보람도 있지만 기술을 배울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조상훈 관악봉천지역자활센터 사회복지사는 “사업단에서 길거리 청소를 하다 보면 우산 폐기물이 너무 많아 사업을 구상하게 됐다”며 “고장 난 우산수거함 설치 후 폐우산 쓰레기가 준 것이 체감된다”고 했다.
글·사진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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