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보복' 푸틴, 내부 결속·자존심 챙겼지만..전력 한계 노출

김혜리 기자 2022. 10. 11.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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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층인 강경파 불만 잠재우고 '크름대교 파괴'에 사적 복수
이틀째 우크라이나 공격..전쟁 판도 못 바꿔 "전략적 무의미"
벨라루스와 연합 등 확전 가능성 높이지만 '자충수' 될 수도
호주서 푸틴 규탄 시위 호주 시드니에서 11일(현지시간) 전날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 미사일 공격을 가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시드니 | EPA연합뉴스

우크라이나의 크름대교(케르치해협 대교) 공격에 대한 러시아의 보복성 공격이 이틀째 계속됐다.

러시아는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서부 거점인 르비우의 에너지 시설을 비롯해 빈니치의 화력발전소에 공습을 퍼부었다.

키이우에서도 오전 내내 공습 경고가 내려졌다. 어린이 암 병원의 의사가 5세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공습으로 숨졌다. 러시아는 전날에도 키이우를 비롯해 12개 주요 도시에 무차별 미사일 공격을 퍼부었다.

러시아군의 이틀째 계속된 공격으로 우크라이나인 사망자는 최소 19명으로 늘었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은 최근 전세가 러시아군에 불리하게 기울고 있는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전쟁의 최대 지지층인 내부 매파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공습을 감행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겨울을 앞두고 우크라이나의 전력망이나 상수도 등 기반시설을 파괴해 우크라이나인들의 전투 의지가 약해지도록 압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군은 이번 미사일 공격에서 에너지 기반시설을 주된 공격 목표물로 삼았고, 강경파들은 공습 이후 러시아군이 마침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며 환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러시아군의 무능함을 비판했던 람잔 카디로프 체첸 공화국 수장은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이번 공격에 “100% 만족한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의 자존심도 공습의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뜩이나 전황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고 있는 와중에 크름대교까지 붕괴하면서 푸틴 대통령이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미국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 선임연구원은 푸틴 대통령이 크름반도 병합 이후 “가장 아끼는 아이”라 부를 정도로 소중하게 여겼던 크름대교가 파손된 게 그를 크게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며 “푸틴 대통령 본인도 극단적인 매파다. (이번 공습은) 개인적인 복수”라고 말했다.

이번 공격이 우크라이나에 인명·시설 피해를 초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략적으로는 무의미했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영국 왕립연합연구소(RUSI)의 시다르스 카우샬 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에서 미사일 공습은 민간인 사상자를 내고 중요 기반시설을 파괴해 사기를 떨어뜨릴 순 있으나, 지상에서의 작전이 동반되지 않으면 전쟁에 미치는 영향 자체는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 이번 공습은 국내 여론을 달래기 위한 ‘보여주기식’ 공격으로, 전쟁의 판도를 바꾸기엔 역부족이란 것이다.

오히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공격으로 러시아군의 공격에 한계가 드러났다고 봤다. 러시아군이 발사한 미사일 중 다수가 의도된 목표에서 크게 벗어났으며 육지 목표물을 공격하기 위해 해상 미사일을 사용하는 등 미사일 비축량과 격추 능력이 떨어졌다는 징후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문제는 70여일 만에 재개된 키이우 공습이 일회성으로 그칠지, 아니면 확전의 계기가 될지다.

확전 우려를 키우는 정황들도 관찰된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8일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 공격으로 악명 높은 세르게이 수로비킨 육군 대장을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지역 합동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그간 참전을 꺼려왔던 러시아의 맹방 벨라루스도 참전 가능성을 시사하고 나섰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이날 “어제 비공식 채널을 통해 우크라이나가 벨라루스를 공격할 것이란 경고를 받았다”며 러시아와 연합군을 편성해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 배치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국내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한 일련의 행동들은 푸틴 대통령에게 오히려 자충수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쟁에 대한 지지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갈수록 더 강도 높은 공격을 퍼부어야 하고, 그럴수록 푸틴 대통령의 선택지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치학자인 블라디미르 B 파스쿠호프는 푸틴 대통령이 대응 수위를 높인 것이 “본인 직관에도 반하는 판단”이라며 “핵 버튼을 누르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인 상황에서 벗어나려 한 결정이겠지만 오히려 그럴 위험은 더 커졌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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