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은 감옥의 상징..여성만이 아닌 모두의 문제"

이진주 기자 2022. 10. 11.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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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유학생 아이사
이란 유학생 아이사가 지난 7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의 한 카페에서 이란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여하게 된 이유를 얘기하고 있다.
‘아미니’ 의문사 규탄 시위
히잡 강제…“외출 두려웠다”
“내게도 닥칠 수 있는 일
이란, 자유 향한 갈망 시작
긴 싸움…마지막엔 이길 것”

지난해 8월 한국에 온 이란 유학생 아이사(24). 탑승한 비행기가 이란 상공에서 벗어났다는 기내 방송이 나오자 주변에 있던 여성들이 일제히 히잡을 벗었다. 히잡을 벗었을 뿐인데 여성들의 경직된 얼굴에 편안한 미소가 걸렸다. 아이사도 착용했던 히잡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지난 7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아이사는 “자유를 향한 갈망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위로가 됐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히잡은 이슬람 여성들이 머리와 목 등을 가리기 위해 쓰는 두건의 일종이다. 이슬람 국가마다 각기 다른 형태의 히잡을 쓰지만 착용을 강제하는 나라는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아프가니스탄뿐이다.

아이사는 이란에서 태어나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 6세 무렵부터 히잡을 썼다. 이란에서 여성은 히잡을 쓰지 않으면 외출도 못한다. 지도 순찰대(가쉬테 에르셔드)가 도시 곳곳에서 여성의 복장 등을 감시한다.

아이사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으면 경찰에 잡혀가거나 남성들에게 갖은 모욕을 당한다”며 “외출이 너무 두려워 학교 갈 때 빼고는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이사는 학교에서 이슬람 문화에 대해 궁금해하거나 질문하면 안 된다고 교육받았다고도 했다. 인터넷으로 이슬람 문화에 관해 검색하면서 알게 된 불평등에 대해 질문하면 어른들은 그를 불편해했고 학교에서는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히잡을 ‘감옥’이라고 표현한 아이사는 “감옥은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타인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가는 곳, 히잡은 제가 원하지 않는 것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아이사는 이란의 ‘MIT’로 불리는 샤리프공과대학교에서 산업공학과 경제학을 복수전공했다. 한국에서는 카이스트 경영대학원(MBA)에 재학 중이다. 국내 그룹 엑소의 열혈팬인 그는 예쁜 한글 노랫말에 반해 4년간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했다.

한국에서 안전하게 거리를 걷고 대학 축제와 콘서트 등을 경험하는 일상이 즐거웠던 아이사에게 고향 이란에서 벌어진 ‘아미니’의 죽음은 슬픔과 분노로 다가왔다. 지난달 16일(현지시간)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는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도 순찰대에 체포됐다가 의문사했다.

죽음을 둘러싼 의혹과 분노로 이란 내 80여개 도시와 마을에서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다. 시위는 이제 이란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란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란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다.

아이사는 “아미니의 죽음이 나와 친구들에게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일”이라며 시위에 참여했다. 페르시아어, 한국어, 영어를 할 수 있어 시위대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성명서를 읽고 목소리를 냈다.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주한 이란대사관 앞에서 열린 시위에서 아이사는 아미니를 추모하고 이란 정부에 저항하는 의미를 담아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가위로 잘랐다. 아이사는 “우리의 자유에 비하면 머리카락은 아무것도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추모와 연대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얼굴을 노출하고 시위에 참여하는 아이사를 걱정하지만 그는 “이란에서 시위하다 총에 맞고 죽거나 끌려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자유로운 나라에 있으면서 더는 침묵할 수 없다”고 했다.

아이사는 이번 사태가 여성 문제, 히잡 문제가 아닌 이란 모두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히잡을 쓰는 여성을 존중하지만 히잡 착용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며 “현 이란 정권은 여성뿐 아니라 국민 모두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사는 공부를 마친 뒤 이란에 돌아가 자유롭고 더 좋은 이란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번 시위로 이란은 변하기 시작했다. 여성과 남성이 같이 시위하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지금은 함께 싸우고 있다”며 “자유에 대해 꿈꾸기 시작했고 더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긴 싸움이 되겠지만 마지막에는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이진주 기자 jin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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