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수다..후배든 중학생이든 누구에게도 배울 수 있다"[논설위원의 단도직입]
1953년생. 일본 유학을 거치지 않은 순국산, 토종 바둑의 대명사로 꼽힌다. 중학생 시절 독학으로 바둑을 배워 17세 고교생 때 입단한 뒤 지금껏 프로 바둑기사로 활동하고 있다. 1986년 9단으로 승단했다. 19세 때 최연소로 ‘명인’을 따내는 등 수많은 국내 타이틀을 보유했고, 1992년 응씨배 우승을 차지하는 등 국제대회에서도 크게 활약했다. 생존을 위해 죽기살기로 싸움을 벌이는 바둑 스타일을 보여 잡초, 야전사령관, 야생마, 오뚝이 같은 별명을 얻었다. 지난 추석 연휴 때 국내 정상급 2030 후배 고수 5명과 잇따라 맞붙는 등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나이 들면 순발력과 집중력 떨어지며 하수 돼
선후배 떠나 고수에게 배우는 게 부끄럽지 않아
그것은 ‘열혈 도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대결이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서봉수 9단(69)에게는 애초부터 ‘위험한 도전’이었다. 이기기 어려운 승부였고, 지면 창피를 당하며 수십년 쌓은 화려한 명성이 깎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그는 도전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김지석·신민준·강동윤·변상일·박정환 9단. 현재 한국 바둑 랭킹 10위 안에 드는 젊은 후배 기사들이다. 서 9단은 지난달 추석 연휴 기간에 이들 5명과 잇따라 맞붙는 특별대국을 벌였다. 한 판을 질 때마다 핸디캡을 받는 ‘치수 고치기’ 승부였다. 결과는 1승4패. 첫 판 ‘호선(互先)’ 패배, 둘째 판 ‘정선(定先)’ 패배, 셋째 판 ‘2점’ 승리, 넷째 판 ‘정선’ 패배, 마지막 판 ‘2점’ 패배였다. 왕년의 고수와 37~47세 아래 당대 쟁쟁한 후배들 간의 실력차가 예상보다 컸다. 그러나 서 9단은 “후배들에게 바둑 한 수를 또 배웠고, 이렇게 배운 게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고 말했다.
서봉수의 바둑 인생은 지독한 싸움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동네 기원에서 어깨너머 독학으로 바둑을 배워 최고수의 반열에 올랐고, 국제대회에서도 끈질긴 승부로 혁혁한 성과를 거두며 이름을 널리 알렸다. 평생을 고독한 승부사로 살아온 서 9단을 지난 4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만났다. 젊은 날 트레이드마크였던 ‘덥수룩 머리’는 한참 전에 사라졌지만 대국장 밖에서 날카로운 눈빛을 풀고 파안대소하는 얼굴은 여전했다. 그의 바둑과 승부, 배움과 도전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짧고 굵게, 때로는 속시원하고 ‘쿨’하게 말했다.
갈수록 어렵고 모르는 것 투성이…난 학생이다
인공지능 2대 통해 예전보다 3배나 바둑 공부
- ‘열혈 도전’ 대국이 힘들지 않았나.
“그런 정도는 충분히 할 만하다.”
- 대국 결과에 만족하나.
“아니다. 아쉽고 불만스럽다. 두 점에는 지면 안 되는데, 결국 졌다. 속기 바둑이라 내가 질 가능성이 더 높기는 했다.”
- ‘위험한 도전’이 아니었나.
“후배들이 더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싶다. 나보다 고수, 상수들이니까. 나는 부담 없이 도전했다.”
- 이번 특별대국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해보겠다고 한 건가.
“물론이다.”
- 이번 대국에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바둑을 또 배운 것이다. 나는 원래 무엇이든 배우는 걸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취미도 꽤 많다. 50년 넘게 바둑을 두면서 처음 해보는 대국이라는 점도 새롭고 재미있었다. 난 처음 시도하는 것 또한 좋아한다.”
- 후배들에게 배운다는 것은.
“나이 들면 바둑에 필수인 순발력과 집중력이 떨어진다. 나는 늙었고, 내가 하수다. 두 점씩이나 놓아야 하는 하수가 맞으니 후배를 떠나서 고수에게 배워야 하는 게 당연하다. 후배에게 배우는 게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 나는 중학생에게도 기꺼이 배울 수 있다.”
- 이번과 비슷한 기회가 또 생긴다면.
“당연히 또 나간다. 배울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나.”
서봉수가 누구인가. 1972년 19세, 2단 시절에 당시 최강이던 조남철 8단을 꺾고 명인전 우승을 차지한 뒤 지금까지 국내에서 30여차례 타이틀을 거머쥔 고수다. 프로 입단 1년8개월 만에 최연소, 최저단 기록을 쓰며 첫 명인에 올랐을 때부터 한국 바둑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후 조훈현 9단과 더불어 ‘조·서 시대’를 열며 한국 바둑을 이끌었다. 1992년에는 국제대회인 응씨배 대회에서 조치훈 9단, 오다케 히데오 9단 등을 꺾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44세 때인 1997년에는 한국·중국·일본 국가대항전 격인 진로배 대회에서 무려 9연승을 올리며 한국 우승을 결정짓기도 했다. 나중에 이창호·이세돌 등이 뒤를 이었지만 서봉수 또한 한국 바둑의 대표 기사로 손색이 없다. 한국기원에 따르면 서 9단의 현재 국내 통산 전적은 총 2775전 1746승3무1026패로 승률 62.99%다. 1994년에 국내 최초로 1000승을 올렸고, 가장 많은 대국을 했다.
- 국제대회를 포함해 수천번의 대국을 했는데 기억에 남는 대국은.
“너무 많아서 대국 하나하나가 기억나지는 않는다. 첫 명인전 우승, 응씨배 우승, 진로배 9연승이 가장 큰 일이었다. 하나를 꼽으라면 응씨배다. 상금이 40만달러나 됐다. 하하.”
- 가장 아깝고 안타까웠던 대국은.
“그것도 수없이 많아서 어느 한 판을 꼽기 어렵다. 오늘도 반집을 져서 억울한 마음이다. 준우승을 많이 했다는 기억은 남아 있다. 아마도 준우승 횟수로는 세계기록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1인자의 전성기보다 2인자로 산 날이 훨씬 많아
준우승 횟수는 세계기록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 전성기는 언제였다고 생각하나.
“딱히 없었던 것 같은데…. 1인자로 전성기를 누린 것보다 2인자로 살아온 날이 훨씬 많다. 나는 항상 2인자였다.”
서 9단은 조훈현 9단이 1인자로 앞서 나갈 때 그를 끈질기게 추격했다. 두 번 지고 한 번 이기는 정도라서 “샌드백 역할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 9단은 조 9단의 유일한 라이벌로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준우승하고 나서 다음 대회 예선을 치러 또 결승에 올라갔으니 대국 수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 이기지 못해 답답할 때도 많았겠다. 그럴 때는 어떻게 지나갔나.
“가서 그냥 싸웠을 뿐이다.”
- 치열한 싸움바둑 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는데.
“다들 그런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고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내가 유별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둑 자체가 그렇게 싸우지 않고는 이기기 어려운 게 아닐까 싶다. 격투기 경기장 안에서 주먹이 막 날아오는데 여유 있게 즐기면서 할 수는 없지 않나.”
- 끈질긴 승부근성 때문에 야전사령관, 잡초, 야생마 같은 별명이 많이 붙었는데.
“별명은 제일 많은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별명 안 쳐다본다. 누가 그러는지도 모르겠고….”
- 예전에는 죽기살기로 싸우느라 피곤하고 스트레스도 받아서 밥도 못 먹었다는 얘기도 했다.
“젊었을 때는 그랬다. 지는 게 싫어서 힘들었다.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다. 지금도 지기는 싫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조금 여유가 생기고 나아졌다. 어느샌가 승부의 세계에서 약간 밀려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언제부터인가. 진로배 9연승은 40대 중반 때였는데.
“하도 오래돼서 기억도 안 난다.”
서 9단은 2016년 알파고 등장이 시대를 확연히 갈랐다고 말했다. 비단 바둑계뿐만이 아니라고 했다. 인간의 바둑이 인공지능의 바둑을 이길 수 없다는 현실. 싸움이든 세력이든 상관없이 최선의 수만 딱 찾아서 두는 인공지능 앞에서 인간의 감이나 승부수는 무의미해졌다. 서 9단은 알파고를 배우는 게 아니라 알파고에게 바둑을 배워야 하는 세상이라고 했다.
- 옛날 2인자 시절의 바둑과 요즘 바둑은 어떻게 달라졌나.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예전과 비교할 수 없다. 상상할 수 없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바둑은 훨씬 더 어려워졌다. 예전에 알던 상식과 정서가 모두 무너졌다.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한다.”
- 요즘 바둑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나.
“예전에는 집에서 하루 3시간쯤 기보를 보고 공부했다면 지금은 3배쯤 더 많이 한다. 영상도 가끔 보지만 컴퓨터에 있는 인공지능 2대를 통해 배우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참고도와 해설을 조목조목 보여주고 알려준다. 인공지능 없이 바둑 공부를 한다는 건 바둑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 온라인 바둑도 두나.
“예전에는 많이 뒀는데, 지금은 안 둔 지 몇 년 됐다.”
- 서봉수의 바둑은 최악의 상황을 먼저 분석하는 비관적인 성향인데, 바둑 인공지능 등장은 어떻게 보나.
“알파고는 불가능을 현실로 실현한 대사건이었다. 지금 인간보다 두 점 이상의 실력을 가진 인공지능이 나왔는데, 인간과 인공지능의 실력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이제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은 없다. 인간끼리 경쟁할 뿐이다. 인공지능은 바둑의 묘미를 넓혔다. 바둑은 미지의 세계라서 모험심과 도전 정신으로 헤매는 재미가 있는데, 인공지능이 ‘두 점 이상’의 미지의 세계를 열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는 즐거움을 준다고 본다.”
예전에 지기 싫어 힘들었지만 지금은 여유 생겨
한걸음씩 내려놓으며 시야 넓히니 절로 즐거움
- 헤매는 재미란.
“안갯속을 헤매다 무얼 하나 발견하면 즐겁고 또 헤매다 하나 찾으면 재미있고 그런 것이다. 갈수록 어려운 문제를 풀어나가는 즐거움이다.”
그래서 서 9단은 배우는 즐거움을 다시 말한다. “바둑은 갈수록 어렵고, 모르는 것투성이”라면서 “모르는 게 있으니 물어보는 것이고, 모르는 걸 알려주는 이는 누구라도 고마운 게 당연하지 않으냐”고 했다. 그는 예전부터 “나는 학생이다. 체력이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는 계속 배운다. 바둑은 공부할수록 는다”고 말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연구생들 틈에 껴서 한 수 배우는 모습도 익히 알려져 있다.
- 서봉수에게 바둑은 어떤 존재인가.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머리 나쁘고 못생겼는데, 평생 밥걱정 없이 살게 해준 은인 같은 존재다. 좋아하는 바둑으로 지금까지 왔으니 정말 다행이고 고맙다. 바둑이 나를 살린 것 같다.”
- 바둑의 좋은 점은.
“돈 안 들이고 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좋은 놀이다. 집중력과 순발력을 발휘하는 두뇌 게임이기도 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면 좋겠다.”
- 다시 태어나도 지금처럼 프로 기사의 길을 걷겠나.
“그건 생각이 다르다.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 상대방은 져서 괴롭고 나는 이겨서 즐거운 개인 승부의 분야가 아니라 함께 모여 즐거움을 나누고 다 같이 잘살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서 9단은 평생 변함없이 열정적으로 승부하는 모습으로 후학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의 승부사 인생은 나이가 들면서 더 큰 여유를 찾은 것 같다. 한 판 승부에 얽매이지 않고, 무게 잡지 않으며 격식 없이 사는 인생.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고 말하는 그는 나이 들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계속하고 즐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는 세상에서 딱 한 글자를 꼽으라면 즐거울 ‘낙’(樂)자를 꼽겠다고 했다. 불꽃 튀는 승부의 세계를 겪고나서 한 걸음씩 내려놓으며 시야를 넓힌 서봉수가 사는 법이다. “오늘 하루 이 순간이 즐거우면 된다”며 “나이 들면 즐거움을 즐길 줄 알아야 건강에도 좋다”고 말했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그의 열정은 이제 즐거움이 됐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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