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난산증(難算症)
정상 범주의 지능인데도 산술에 유독 취약한 경우 ‘난산증’(dyscalculia)을 의심해봐야 한다. 글자를 좀처럼 읽지 못하는 학습장애인 난독증(難讀症)처럼, 난산증은 숫자와 수학에 약한 것을 말한다. 난산증 어린이의 경우 더 큰 숫자를 구분하는 데도 애를 먹으며, 간단한 사칙연산도 잘하지 못한다. 거스름돈을 계산하거나 시계를 보는 데도 애를 먹어 또래의 놀림을 받곤 한다. 성인이 되어서는 요리재료를 계량하거나 지도를 읽고 안무를 외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거나 업무를 위한 시간 배분에 실패하기도 한다. 수학 시험은 공포 그 자체이다. 공식이 머리에서 뱅글뱅글 돌 뿐 도무지 답을 써내지 못한다. ‘수포자’가 되기도 한다. 이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은 이만저만 아니다.
난산증 개념이 등장한 것은 1940년대이다. 학계에서는 전체 학령기 아동의 3~7%가 난산증을 겪는 것으로 추정한다. 난산증 아동 11%가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로도 진단되고, 성염색체 이상 유전질환인 터너증후군 여성에게서도 발견된다는 연구도 있지만 정확한 원인은 밝혀진 바 없다. 여성이 수학에 약하다는 세간의 편견과 달리 난산증을 보이는 남녀 성별 비율은 거의 동일하다. 교육신경학자들은 산술 장애 아동이 비장애 아동에 비해 좌측 두정엽과 측두엽 등의 활성화가 낮다고 본다. 저명한 뇌과학자 스타니슬라스 드앤은 ‘숫자 감각’ 이론에서 사람은 정보를 오름차순으로 처리하는 데 필요한 ‘추정 수 체계’를 타고나는데, 여기에 이상이 생기면 난산증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뇌의 배열이 남과 달라 난산증을 가진 이들은 대신 탁월한 언어능력이나 창의적인 사고력을 보이기도 한다. “어릴 적 수학이 산스크리트어 독해 같았다”던 셰어는 세계적 가수 겸 배우로 성공했다. 피뢰침의 발명가이자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꼽히는 벤저민 프랭클린도 난산증을 겪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다르게 태어난’ 아이들의 잠재력을 꽃피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다른 교육’이다. 서울시교육청이 난산증 초등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진단 및 맞춤형 치료 프로그램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다양한 교육이 더욱 확대돼야 한다.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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