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배터리 육성 2.7조 쐈다.. 롯데 '첨단 제조업' 변신
내수 유통 대기업 이미지 탈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1일 배터리 핵심 소재 중 하나인 동박 생산 세계 4위인 일진머리티얼즈를 2조7000억원에 인수하는 조 단위 '빅딜'을 체결하는 결단을 내렸다. 금액으로 보면 지난달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약 2조원 규모)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재계로 보면 최근 한달 여 사이에 2조원이 넘는 대형 인수·합병(M&A)이 10대 그룹 내에서 2건이나 나온 것이다.
이번 M&A는 유통 대기업에서 신사업 제조·수출 기업으로 혁신하겠다는 신 회장의 의지가 강력하게 담겼다. 특히 내수 중심의 유통 대기업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배터리와 같은 성장 산업을 선도하는 수출 제조업체로 변신하겠다는 신 회장의 강한 뜻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신 회장은 올 초 상반기 VCM(Value Creation Meeting·옛 사장단회의)에서 "시대의 변화를 읽고 미래지향적인 경영을 통해 신규 고객과 시장을 창출하는 데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고 경영진들에게 주문한 바 있다.
롯데그룹은 신 회장의 이 같은 주문에 맞춰 다양한 디지털 혁신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기차 충전을 비롯해 전기차용 소재, 도심항공교통(UAM), 자율주행 셔틀 등 모빌리티 생태계 구축을 신성장 테마로 삼고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계열사별로 보면, 먼저 롯데정보통신의 자회사인 중앙제어는 지난 8월 22일 전기차 충전서비스 브랜드인 'EVSIS'를 출시했다. 전용 앱으로 충전소 검색은 물론 예약, 결제, 평가까지 모두 할 수 있으며, 운영자는 원격으로 모니터링·제어해 실시간으로 장애를 관제하고 정산할 수 있다. 롯데는 EVSIS 충전기를 2025년까지 1만3000기 이상 구축할 예정이다.
롯데는 지난 5월에는 국토교통부의 한국형 도심항공교통 그랜드챌린지 실증 사업에 '롯데 UAM 컨소시엄'으로 도전장를 내밀기도 했다. 롯데는 UAM의 안전성 검증 뿐만 아니라 이·착륙장과 충전 등 운영장비 등 제반 인프라 구축·운영을 추진한다. 또 전남 고흥군 내에 롯데렌탈이 투자한 자율주행차량을 이용해 UAM 사용자가 지상과 항공 모빌리티로 이어지는 통합 모빌리티 서비스를 체험할 수 있도록 시연할 계획이다.
이번에 2조7000억원 규모의 빅딜을 성사시킨 전기차용 배터리 소재는 롯데그룹이 가장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신 회장이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분야다. 신 회장은 지난 6월 헝가리 터터바녀 산업단지에 조성된 '롯데 클러스터'를 방문해 롯데알미늄 공장의 첫번째 시제품을 직접 확인하고, 1100억원의 추가 투자를 결정했다. 롯데알미늄은 이 투자를 바탕으로 연간 1만8000톤 규모의 이차전지용 양극박 생산규모를 2배로 늘리기로 했다.
롯데케미칼의 경우 지난 6월 자체기술로 개발한 전해액 유기용매 핵심소재 EMC(에틸메틸카보네이트)와 DEC(디에틸카보네이트) 생산 공장 건설에 약 14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작년 5월에는 대산공장 내에 약 2100억원을 들여 국내 최초의 배터리용 전해액 유기용매 제품인 EC(에틸렌 카보네이트)와 DMC(디메틸카보네이트) 공장 건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미래 배터리 소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공격적인 투자도 추진하고 있다. 올 1월 세계 최초로 바나듐 이온 배터리를 개발한 스타트업 '스텐다드에너지'에 650억원을 투자해 2대 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바나듐 이온 배터리는 현재 리륨이온 기술의 뒤를 이을 차세대 ESS 배터리로 주목받고 있다.
올 4월에는 미국 배터리 소재 스타트업인 '소일렉트(SOELECT)'와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하고, 오는 2025년까지 미국 현지에 약 2억 달러(약 2900억원) 규모의 리튬메탈 음극재 생산시설을 구축하기로 업무협약을 맺었다.롯데가 이처럼 공격적으로 배터리 소재 시장에 투자하는 이유는 전기차 시장에서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어서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이차전지 배터리 시장 규모는 전기차 보급 확대에 힘입어 2020년 461억달러(약 66조원)에서 2030년 3517억달러(약 504조원)로 10년간 약 8배 증가할 전망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이번 인수로 유럽·미국 등 주요 시장을 선점해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성장할 계획"이라며 "기술 확보와 계열사 간 협력관계 구축 등 다양한 시너지 방안을 도출하고 미래 배터리 소재 사업을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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