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그가 있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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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시집을 출간하려던 윤동주(1917∼45)는 일제의 검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시집 원고 세 부를 만들어 한 부는 자신이 갖고 나머지는 스승 이양하 교수와 후배 정병욱(1922∼82)에게 건넸다.
광양예술창고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윤동주·정병욱의 모교인 연세대 문과대학과 백영기념사업추진회가 후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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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필원고 간직 1948년 유고시집 출간
고향 광양시 '탄생 100돌 기념' 전시
1941년 시집을 출간하려던 윤동주(1917∼45)는 일제의 검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시집 원고 세 부를 만들어 한 부는 자신이 갖고 나머지는 스승 이양하 교수와 후배 정병욱(1922∼82)에게 건넸다. 윤동주와 이 교수의 원고는 유실됐으나 정병욱의 원고는 남아 해방 뒤 윤동주의 시가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광양시는 12일부터 30일까지 광양 진월면 출신인 백영 정병욱 선생 탄생 100돌 기념으로 <시를 품어 빛을 전하다> 특별전을 연다. 광양예술창고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윤동주·정병욱의 모교인 연세대 문과대학과 백영기념사업추진회가 후원한다.
전시에서는 연희전문 학적부, 연희전문 성적표, 졸업증서, 학술원 임명장 등 ‘문서와 선생의 국문학 연구 원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한국문학 집필 자료’, 강의노트, 저서 <한국의 판소리 목차 구상> 등을 전시한다. 또한 ‘광양 진월 자택에서 형제들과 함께한 사진’, ‘소학교 입학 때 부친과 함께 찍은 모습’, ‘윤동주와 정병욱 졸업 기념사진’, ‘윤동주 시비 건립’ 등 사진 32점을 공개한다.
정병욱은 1940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며 윤동주를 만났고 기숙사와 하숙집에서 2년간 함께 지냈다. 그는 1944년 학도병으로 끌려갈 때 윤동주에게 받은 시집 원고를 어머니에게 맡겼고, 어머니는 이를 광양 집의 마루 밑에 숨겨두었다. 1945년 8월 해방이 되자 귀국한 정병욱은 연희전문 동기, 윤동주 유족과 함께 1948년 1월 윤동주의 첫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펴냈다. 정병욱의 아호 ‘백영’은 윤동주를 평생 잊지 않기 위해 그의 시 ‘흰 그림자’에서 가져온 것이다.
정병욱은 이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다시 들어가 졸업한 뒤 부산대, 연세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재직하며 고전 시가, 고전소설, 한문학 등 국문학을 주로 연구했다. 1974년 판소리학회를 창립해 판소리의 보존 연구에 힘썼으며 1970년대에는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에 ‘한국문학’ 항목을 집필해 전 세계에 알렸다. 국어교육을 문법과 지식 위주에서 작문과 문학 중심으로 전환하는 데 앞장선 공로로 한국출판 문화상저작상, 3·1문화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기도 했다.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에 있는 정병욱 가옥은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이라는 명칭을 붙여 등록문화재 제341호로 지정됐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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