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개발, 지속가능성 고민을

박경만 2022. 10. 1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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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천연기념물 두루미와 재두루미들의 대표적인 서식처인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 상류 망제여울. 박경만 기자

[전국 프리즘] 박경만 | 전국부 선임기자

올해는 대륙 북쪽에서 추위가 빨리 시작됐는지 기러기들이 9월 말부터 국경을 넘어 날아들고 있다. 한반도 중서부 지역은 아직 추수하지 않은 들판이 많은지라 기러기들은 높게 편대를 지어 더 남쪽으로 날갯짓을 이어갔다. 이제 곧 가을걷이가 본격화하면 한반도 비무장지대(DMZ) 일원은 겨우내 재두루미, 두루미, 개리, 고니 등 희귀 겨울 철새들의 낙원으로 변신할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김포·강화 일대 한강하구(조강)와 파주·연천·철원의 임진강·한탄강 일원은 전쟁의 상처를 딛고 한반도를 대표하는 생물다양성의 보고가 됐다. 분단 이후 70년간 남북이 대치하면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비무장지대 인근 하천과 자연습지, 농경지는 두루미 등 멸종위기 철새들에게 안전한 휴식처, 먹이터 구실을 하고 있다. 지난해 한반도를 찾은 두루미류 총 1만2403마리 가운데 디엠제트 일원에서 월동한 개체 수는 8422마리로 약 68%를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남 순천만에 집중된 흑두루미(3033마리)를 빼면 두루미와 재두루미 90%가량이 디엠제트에서 겨울을 나고 있어 두루미 입장에선 “분단아 고맙다!”란 말이 나올 만도 하겠다.

지난 3~6일 남쪽 최북단 연천 태풍전망대부터 파주 오두산전망대까지 임진강을 따라 약 100㎞를 걷는 ‘2022 통일걷기’(경기권)에 참가했다. 분단 현장을 걷는 일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한 참가자는 “디엠제트를 걷는 일은 히말라야 트레킹보다 값진, 내 생애의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했고, 다른 이는 “디엠제트 순례길 개척을 일생의 사명으로 삼겠다”고 했다.

북 강원도 법동군에서 발원해 디엠제트를 통과해 파주까지 흐르는 ‘분단의 강’ 임진강은 전쟁과 평화, 생태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공간이다. 강 주변으로는 선사시대부터 한국전쟁까지 역사문화유적이 즐비하게 펼쳐진다. 1500년 전 고구려와 신라가 120년간 대치했던 관방유적, 한때 백화점이 들어설 만큼 번성했던 옛 포구,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주상절리 적벽, 수십종의 멸종위기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물권보전지역 등은 임진강이 가진 수많은 가치 중 몇 사례일 뿐이다. 최근에는 고성에서 강화까지 456㎞ 길이 ‘디엠제트 평화의 길’이 완성돼 디엠제트를 따라 걸으면서 전쟁의 참혹함과 생태·평화의 중요성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분단이 안겨준 불안한 평화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북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와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등 한반도를 둘러싼 위태로운 정세와는 별개로 디엠제트 접경지역은 도시의 팽창 욕구로 훼손이 가속되고 있다. 수도권에 속한 한강하구와 임진강 일원의 논과 습지는 도로와 건물 등으로 지속해서 바뀌고 있다. 디엠제트생태연구소에 따르면, 파주 성동습지에는 2009년 개리 1천마리와 재두루미 450마리가 월동했으나 김포·파주·고양 등 도시지역의 확대로 배후 먹이터가 줄어 현재는 월동하지 않는다.

디엠제트를 평화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역대 정부의 시도는 역설적으로 디엠제트의 생태와 평화를 해치는 위협요인으로 작용해왔다.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정부가 평화를 강조할수록 디엠제트를 관통하는 도로와 철도 건설, 대규모 도시·공원 추진 등 개발 압력이 커지고, 접경지역 주민은 삶의 터전과 정체성이 위협받는 딜레마에 직면했다. 문재인 정부 임기 안에 건설하겠다며 무리하게 강행한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건설사업이 환경단체와 지역주민의 반발에 부딪혀 사회적 논쟁거리가 된 게 대표적이다. 이제 디엠제트 개발은 현지 주민의 경제·사회문화적 욕구에 부응하면서도 미래세대가 이용할 수 있는 지속가능성이 먼저 고려돼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관계 경색에 대한 우려가 크다. 한편에서는 윤 정부 임기 동안엔 ‘평화’를 앞세운 디엠제트 개발 압력은 줄게 돼 다행이라는 ‘웃픈’ 이야기도 나온다.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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