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과 '오겜'에서 봐야할 것은 불평등에 상처입은 자화상이다

김종목 기자 2022. 10. 1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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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 17명의 연구 결과 엮어낸
'한국의 불평등 현황, 이론, 대안'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나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구성원들에게 사회의 자원이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는 사회적 현상”을 가리키는 불평등에 관한 여러 지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하위권이다. 최장집(고려대 명예교수)은 최근 나온 <한국의 불평등 현황, 이론, 대안>(한울아카데미) 추천사에서 “신자유주의적 발전국가라 부를 수 있을, 경제 발전 모델을 통한 외양적 성장과 발전에 가려진 한국의 사회적 불평등과 노동 문제는 경제적 선진국가에 이르렀다고 자부할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책은 학자 17명의 연구 결과물을 모았다. 엮은이 김윤태(고려대 공공정책대학)의 ‘거대한 분열과 불평등의 다차원성 추이, 원인, 정책 방향’ 글이 여러 통계를 추렸다. 이 수치들은 “1992~2022년 30년 동안 한국의 불평등이 역사상 유례없이 증가”한 사실을 나타낸다.

지니계수는 도시 2인 이상 가구의 경우 1995년 0.26에서 2020년 0.345, ‘상위 10% 소득집중도’는 1995년 35.15%에서 2019년 46.45%, ‘상대적 빈곤율’은 1995년 7.7%에서 2018년 16.7%다. 상대적 빈곤율은 코스타리카, 미국, 이스라엘에 이어 4번째로 높았다. 2018년 기준 노인 빈곤율은 43.4%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20년 영세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합한 비정형 노동자 비율은 58.4%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위 90% 가구의 연간 소득은 1997년 이후 전혀 증가하지 않고 있다.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급감했다. 1995년 92.4%에서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77%, 1999년에는 54.9%로 줄었다. 2002년 80.1%로 올라갔다가 2009년 54.9%,2011년 52.8%,2013년 51.4%로 줄었다. 2015년 53%, 2017년 55.2%, 2019년 56.6%다. 한국인의 삶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5.8점으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경제성장으로 물질적 성공을 이룬 나라가 심각한 정신적 불행감에 직면”한 현실을 보여준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과 최고 수준의 자살률 문제도 놓였다.

재난불평등추모행동 회원들이 지난 8월 16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불평등이 재난이다’ 폭우참사 추모행동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부 세습은 불평등을 심화한다. 한국의 주식 부자들은 재벌 2, 3세 비율이 높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4개국의 주식 부자 상위 40명씩 총 160명을 추려 분석한 결과, 2016년 한국은 40명 중 25명꼴(62.5%)로 상속형 부자였다. 미국은 40명 중 10명(25%), 일본은 12명(30%), 중국은 1명(2.5%)이다.

교육도 계급 세습 도구로 변했다. 이른바 ‘SKY’ 대학의 장학금 신청 학생 중 부모의 소득이 상위 20%인 학생 비율이 전체 학생의 46%,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은 각각 3% 수준이다. 2021년 OECD 통계를 보면 “인생의 성공에서 부모의 부가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OECD 평균 두 배다.

한국은 최고 수준의 불평등 국가로 불평등이 최긴급 문제이지만 분노와 저항, 담론 활동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가 만연한 미국이나 호주 같은 국가 청년들이 대안으로 사회주의를 호명하는 것과는 다른 분위기다.

소득·자산·건강·교육·젠더 등…최근 30년 한국사회 변화 분석
계급 세습도구로 전락한 교육, 세계 최저 출생률·최고 자살률
패배한 자가 차별을 감내하는 소름돋는 경쟁·성장 제일주의

윤홍식(인하대 사회복지학과)은 ‘한국 복지국가의 불편한 이야기-왜 한국은 불평등한 복지국가가 되었을까’에서 ‘대안을 생각하지 않는 각자도생의 사회’ 문제를 분석한다.

그는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은 차별과 불평등한 처우를 감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무서운 믿음이 ‘공정’이라는 탈을 쓰고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지금 한국 사회의 여러 부문은 이 불평등을 당연하거나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불평등은 위대한 사상가와 정치인들의 머리와 가슴을 끌어당겼다”(김윤태)는데, 말 그대로 고대 옛사람들만의 일이 된 듯하다. 논의나 토론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불평등을 의제화하고, 해결해야 할 정치와 정책도 잘 보이지 않는다. 적대적 공생을 위한 진영 간 소모적 정쟁에 불평등 의제는 주목받지 못한다. 광범한 기득권은 ‘한류의 성취’를 불평등 현실을 가리는 장치로 활용한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456명의 사람들이 거액의 상금을 얻기 위해 서바이벌 게임을 한다. | 넷플릭스 제공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주인공 일가는 반지하방에서 근근이 살아간다. | CJ ENM 제공

여러 학자는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에서 봐야 할 건 불평등 자체라고 말한다. 김윤태는 “ ‘한류의 승리’로만 열광하는 대신 불평등의 상처가 남긴 한국의 자화상이라는 점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윤홍식은 “<오징어 게임>, <기생충>과 같이 불평등을 극단적으로 묘사한 드라마와 영화가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복지국가에서 만들어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한국의 문화적 성공은 우리가 겪고 있는 처참한 고통까지도 상품으로 만들어 팔아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의 소름 돋는 성장 제일주의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책은 소득, 자산, 건강, 교육, 젠더 등 여러 불평등의 추세와 현황을 분석한다. ‘불평등과 조세 재정 정책’ ‘불평등과 경제 발전’ 등도 분석 대상이다.

권혁용과 한서빈의 ‘소득과 투표 참여 불평등’은 “중도 진보 또는 진보 정당이 어떻게 재벌, 노동, 조세, 복지 개혁을 도외시하고 불평등을 줄이는 정책을 외면했는지, 소위 ‘강남 좌파’의 함정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탐구해야 하는 학문적 과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논문이다. 불평등과 평등 이데올로기 문제 분석도 실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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