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파워 인터뷰 | '극한 갈등'의 저자 아만다 리플리] "한국, 진영 갈등 세계 1위.. 상호 경멸 멈추고 경청하라"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2022. 10. 1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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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만다 리플리 작가 코넬대 정치학과, 현 ‘타임’ 기자,‘극한 갈등’ ‘언씽커블’ 저자 사진 아만다 리플리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미라클마일 지구에는 선사시대부터 내려온 죽음의 함정이 있다. 검은색 호수인 타르 웅덩이에는 300만 개가 넘는 동물 뼈가 묻혀 있다. 아스팔트 덩어리에 빠져 죽은 동물 사체가 다른 짐승을 불러들여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타르 웅덩이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재앙의 함정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갈등 전문가 아만다 리플리는 갈등이 점점 고조되어 특정 지점을 지나면 이 타르 웅덩이처럼 된다고 지적한다. 이름하여 고도 갈등이다. 건전한 갈등은 뭔가 진전이 이뤄진다. 그러나 고도 갈등은 그 자체가 목적지다.

정치적 양극화, 이혼, 이웃 간 층간소음 분쟁, 노동 쟁의에 이르기까지⋯, 옴짝달싹할 수 없는 고도 갈등의 풍경을 보라. 문제는 교착 상태! 시야가 좁아지면, 상대를 악마화하고 결국 가장 소중한 것에 해를 입힌다. 가족이든 나라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글로벌 베스트셀러인 ‘극한 갈등’의 저자 아만다 리플리를 인터뷰했다. 기자인 아만다 리플리는 맬컴 글래드웰 등 최고의 언론인에게 수여되는 타임 매거진어워드를 두 번이나 받았다. 

아만다 리플리 작가. 사진 아만다 리플리

고도 갈등은 무엇인가. 
“고도 갈등은 선과 악의 구도, 우리와 그들 간의 경계를 긋는 갈등이다. 모든 관계가 대결 양상을 띠고, 시간이 갈수록 나의 우월성과 상대의 미스터리가 커진다. 고도 갈등의 노예가 되면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갈등의 제물로 바치게 된다.”

건전한 갈등과 어떻게 구별되나.
“갈등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살아가면서 겪는 마찰, 즉 건전한 갈등은 우리를 더 나은 상태로 이끈다. 스트레스와 분노를 동반하지만, 자존감이 꺾이진 않는다. 반면 고도 갈등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다.”

한국의 고도 갈등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런던 킹스칼리지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중에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상당한 정도의 갈등’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조사 대상 28개국 2만3000명 중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컨설팅 기업인 에델만 조사에서도 한국인은 언론과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신뢰 수준이 낮은 사회일수록 갈등 수준은 높아진다.”

미국의 갈등 양상은 어떤가.
“미국도 만만치 않다. 선거 결과를 놓고 친구나 가족 간 대화를 단절한 미국인이 무려 3800만 명에 이른다. 뉴스를 피하는 사람, 뉴스에 몰입해 격분하는 사람이 늘어만 간다. 현재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는 상대 진영을 인간 이하로 본다. 유럽도 다르지 않다. 절반 이상의 유럽인은 10년 전에 비해 관용 정신이 후퇴했다고 느끼고 있다.”

한 사회의 갈등 정도를 진단할 수 있나.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라. 우리 사회는 ‘다른 편’의 고통을 즐기는가? 갈등을 묘사하기 위해 언론이 거창하고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하는가? 음모론이 존재하는가? 갈등을 끝내기 위한 말과 행동이 대체로 그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가?”

우리는 왜 점점 더 서로를 괴물로 보게 됐나.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증오도 일종의 증상이다. 고도 갈등에 대한 증상. 그리고 고도 갈등은 일종의 시스템이다. 적대적인 법률 체계, 정치 뉴스, 소셜미디어 플랫폼⋯, 이런 시스템이 고도 갈등을 교묘히 이용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주식 시장, 거대한 갈등 산업 복합체가 탄생했다.”

그는 ‘극한 갈등’ 책에서 고도 갈등에 빠졌다가 탈출한 여러 인물을 소개한다. 갱단의 일원이었다가 어느 날 아들의 졸업식 노래를 듣고 마약 운반책에서 빠져나온 커티스, 반군 게릴라로 정부군에 쫓기다 언니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 산드라⋯.

그러나 피부에 와닿는 현실적인 사례는 냄비 하나로 치고받고, 레고 장난감 한 세트를 양보 못 해 교착 상태에 빠진 이혼 법정의 부부였다. 뛰어난 중재 변호사 게리 프리드먼의 사무실에서 벌어진 이야기는 갈등의 덫에 빠져 제자리를 맴도는 우리 모두의 ‘속사정’을 거울처럼 반사하고 있다.

‘성경’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갈등 촉진자는 매우 우려스럽더라. 그들을 어떻게 분별하나.
“한탄을 내뱉을 때마다 맞장구를 치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이 누군지 보라. 이런 사람이 눈에 띄면, 심리적·물리적으로 멀리하라. 갈등 촉진자는 어디에나 있다. 가장 친한 친구, 형제, 동료가 갈등 촉진자가 될 수도 있다.

갈등 촉진자는 대개 내 삶에서 중요하고 집단에서도 카리스마 있는 주요 인물일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갈등 촉진자를 인식하고 그의 감정이 ‘나의 감정’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실제 많은 도움이 된다.”

고도 갈등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좀 더 주도적인 해법은 없나.
“최고의 해법은 경청이다. 남의 말을 듣는 것과 듣는 척 연기하는 것은 다르다. 사람들은 남에게 이해받기를 너무나 갈망한다. 상대가 내 말을 듣는다는 느낌을 받으면 마법이 일어난다. 스스로 모순을 인정하기까지 한다.

타르 웅덩이를 빠져나오려면, 진짜 들어야 한다. 비록 사실과 다른 말을 하더라도 정성을 다해 들어주는 것만으로 갈등의 악순환은 멈출 수 있다. 들은 후 이게 맞는지 재확인 과정을 꼭 거쳐야 한다.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내용을 정확히 표현하면 상대의 눈빛이 달라질 거다. ‘맞아요! 그거예요!’ 그게 바로 이해의 순환고리다.”

경청하고 내용을 재확인하는 습관이 건전한 갈등을 유지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했다. 아만다 리플리는 이 훈련은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의사 소통에도 환상이 있다는 건 무슨 말인가.
“자신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놓고 그렇게 했다고 착각하는 현상이다. 문제는 우리는 자신의 욕망조차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의 위선조차 깨닫지 못한다. 그뿐 아니다. 인간은 화를 낼 때 두뇌에서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영역이 자동으로 멈춘다. 그래서 제3의 중재자가 필요하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인들조차 시뮬레이션 임무 때마다 지상팀과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우주에서 얻은 교훈은 무엇인가.
“지상 통제팀과 공중팀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서로 다른 압력을 경험하는 두 그룹이다. 우주에서 얻은 핵심 교훈은 이거다. 문자나 이메일 등 메시지를 사용하는 것보다 항상 실시간으로, 육성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낫다. 우주에서는 힘든 것이 지구에서는 가능하다. 저마다 감정의 중력이 다르겠지만 차이를 좁히려면, 할 수 있을 때마다 육성으로 소통해야 한다!”

고도 갈등에서 탈출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들은 모두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포화점을 놓치지 않았다. 포화점이란 갈등으로 인한 손실이 이득보다 더 커지는 지점을 말한다. 너무 지치면 어느 순간 포화점(Saturation point)이 온다. 일종의 해탈 상태라고나 할까.”

포화점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나.
“아니다. 포화점은 반드시 깨닫고 붙잡아야만 알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가 버린다. 이를테면 부모님과 너무 심하게 다투다가 이대로는 더 안 될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지 않나? 그 느낌이 바로 포화점이다.”

타인을 설득할 수 있다는 건 착각인가.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생각에는 ‘내가 옳고 당신은 그르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늘 내가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고 설득하려고 하나? 이제는 제발 소셜미디어에 그런 글을 올리지 마라. 그런 행동은 역풍을 불러온다. 남을 설득하기 전에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이해하려면 경청해야 하고.”

갈등을 연구하기 이전과 이후 당신은 어떤 점이 달라졌나.
“명상하는 습관과 사람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습관이 새로 생겼다. 명상하면 갈등 상황을 마음속으로 재평가할 수 있다. ‘정신적, 감정적 발코니’로 물러나 갈등 상황을 조용히 바라보려 한다. 상상의 발코니는 고요하고 자기 절제가 가능하며, 오로지 이 관계의 진정한 목적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갈등의 극한 지점을 오가는 한국인이 좀 더 현명하게 이 시기를 지나가기 위한 일상적 조언을 부탁한다.
“결혼 연구의 권위자인 가트맨 박사는 수많은 임상 연구를 통해 ‘경멸적 언어를 쓰는 부부는 99% 이혼한다’는 걸 발견했다. 싸움 횟수와 상관없이 그렇다. ‘경멸은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황산을 뿌리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 언어가 중요하다. ‘범주’라는 영어 단어는 ‘비난’이라는 그리스어에서 기원했다. 나는 무심결에라도 젊은 기자들을 험담하면서 다른 언론인과 유대감을 강화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다른 사람들을 한데 묶어서 ‘그들’ ‘저 사람들’이라고 부르지 않으려고도 조심하고 있다.

역사를 통해 얻은 큰 교훈이 있다면 사람은 너무도 쉽게 서로를 악마화할 수도 있고 반대로 협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갈등 촉발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라. 다양한 논조를 읽어라. 복잡한 글을 읽은 사람은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높은 수준의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복잡성은 감염된다. 호기심도 감염된다. 갈등이 극한에 달했다고 할지라도 더불어 살아가려는 태도가 있으면, 갈등은 반드시 극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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