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학수의 골프 오디세이 <105> 일본 다이센골프클럽의 꿈] 27년 인연 두 사내의 약속..한·일 화합 골프 대회 다시 열자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2022. 10. 1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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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일본골프협회(JGA)가 주관할 일본학생골프선수권과 일본여자학생골프선수권 안내판이 있는 다이센골프클럽 1번홀. 이 골프장은 재일동포 최종태 야마젠그룹 회장이 2013년 인수했다. 사진 민학수 기자

재일동포 사업가 최종태(70) 야마젠그룹 회장은 지난해 10월 5일 제15회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에서 재일동포의 지위 향상과 한·일 관계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으로 최고 등급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1980년대 재일동포 지문 날인 거부 운동이 한창일 때 한국에서 50만 명의 서명을 받아 일본 정부에 제출했던 그는 그 후 재일동포의 지방참정권 운동에도 나섰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언제나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살라는 어머니 뜻을 조금이라도 따르고 싶었을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그의 어머니 고(故) 권병우 여사는 재일 대한부인회의 대모이자 재일대한민국민단의 중심인물로 1994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었다. 어머니의 뒤를 이어 아들이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한국의 베른하르트 랑거’라 불리는 김종덕(61) 프로는 올해 8월 19일 KPGA시니어챔피언십에서 대회 2연패를 차지했다. 그는 환갑을 지내고도 50세 이상 선수들이 참가하는 시니어투어를 호령하고 있다. 통산 32승(KPGA 코리안투어 9승, 일본투어 4승, KPGA 챔피언스투어 14승, 일본 시니어투어 4승, 대만 시니어투어 1승)을 거두었다. 

최종태(오른쪽) 야마젠그룹 회장과 김종덕 프로는 1995년 유러피언투어 대회 코스에서 만나 27년간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사진 민학수 기자

두 사람은 각별한 인연과 함께 골프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거리를 좁히는 우정의 사절 역할을 해나가고 있다. 

인연은 1995년 시작됐다. 김종덕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유러피언(EPGA)투어에 출전하고 있었고, 최 회장은 당시 세계 최강으로 꼽히던 닉 팔도(65·잉글랜드)가 경기하는 모습을 보러 간 갤러리였다. 우연히 김종덕의 경기를 보게 된 최 회장은 한국 식당에서 음식을 대접했다. 김종덕이 1997년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기린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다시 인연이 이어졌다. 당시 김종덕의 기린 오픈 우승은 한장상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고문 이후 24년 만에 한국인이 일본 투어에서 거둔 우승이었다. 기린 오픈 우승 직후 다시 만난 최 회장은 김종덕에게 일본에서 후배 선수들의 터전을 마련할 때까지 꼭 살아남는다는 다짐과 함께 투어 생활을 끝낼 때까지 후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최 회장은 통역과 교통, 호텔 예약 등 선수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도왔다. 두 사람은 약속을 지켰다. 

김종덕은 “기린 오픈으로 시드를 얻었는데도 한동안 일본 선수들은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인사를 해도 받지 않았다. 최 회장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 시절을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라고 회상했다. 최 회장은 한국 골퍼들에게 오랜 시간 따뜻한 손을 건넨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다. 김종덕 프로를 비롯해 최경주, 양용은, 허석호, 장익제 등 남자 골퍼들과 구옥희, 고우순 등 여자 골퍼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일본 골프 주간지 ‘파골프’가 “효고현 고베의 최씨 집은 한국 골퍼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곳”이라며 그를 “일본 속의 골프 한류(韓流)를 만든 사람”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최 회장과 김 프로를 이어주는 또 하나의 끈은 일본을 대표하는 골프장 중 하나인 다이센골프클럽(Daisen Golf Club)이다. 김종덕은 KPGA시니어챔피언십을 2연패 할 때 모두 다이센골프클럽 로고가 박힌 모자를 썼다. 후원 계약을 맺자는 곳이 있어도 김종덕은 “오랫동안 최 회장의 후원과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1970년 개장해 일본 최고의 경관과 코스를 자랑하는 다이센골프클럽은 일본의 상징 후지산을 빼닮은 돗토리현의 명산 다이센(大山·1720m)을 에워싼 다이센국립공원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수백 년에서 1000년 이상의 수령을 지닌 아름드리 적송(赤松)들로 가득한 곳이다. 이 골프장은 일본 2400여 개 골프장 가운데 20대 골프장으로 꼽히는 곳이다. 

최 회장은 이 골프장을 2013년 일본 굴지의 종합상사인 이토추(伊藤忠)상사로부터 인수했다. 처음엔 “하필 한국인에게 골프장을 넘기느냐”는 기존 회원들 반발이 심했지만, 최 회장이 인수하고 철저한 회원 관리와 코스 품질이 향상되자 회원권을 내놓는 이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한다. 

최 회장은 "한국인이 일본 명문 골프장 하나 정도는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포기하지 않고 지루한 골프장 인수 협상을 해냈다”며 “골프장을 한국과 일본이 외교 무대에서 해내지 못하는 우정과 화합을 다져나가는 자리로 만들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김종덕은 프로골퍼의 경험을 살려 인수 전 골프장에 대한 평가와 인수 후 개선 방향 등 전문적인 조언을 통해 각종 프로와 아마추어 대회를 여는 데, 손색없는 명문 코스로 발전하는 데 이바지했다.

골프장을 인수한 이후 적송이 잘 자랄 수 있게 숲을 정리하고 가지치기를 하는 작업이 매년 계속되고 있다. 이 골프장에서는 18홀 어느 곳에서도 다른 홀 경기가 방해를 받지 않도록 적송이 차단막 역할을 해준다. 그러면서도 다이센과 시가지와 바다가 잘 보이도록 해놓았다. 쾌적한 라운드를 위해 ‘하루 최대 50팀’ 원칙을 지키기 때문에 앞 뒤 팀이 마주칠 기회가 거의 없다. 

클럽하우스는 나무로 지어진 오래된 옛 모습을 바탕으로 해, 국내의 화려한 클럽하우스에 비하면 소박해 보인다. 하지만 정갈한 시설을 갖추고 있고 일왕의 요리사 경력이 있는 유명 요리전문가 야부사와 이즈미가 식당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최 회장은 ‘골프장은 으리으리한 클럽하우스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골퍼들이 편안하게 라운드를 즐길 수 있도록 코스와 서비스를 제대로 하는 것이 좋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그는 2015년 1월 재외 동포로는 처음으로 대한골프협회 이사에 선임돼 양국 관계가 외교 마찰을 벌이는 속에서도 한·일 아마추어 골프 국가대표 친선경기를 성사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정·재계에 폭넓은 인맥을 지니고 있다. 

한·일 아마추어 골프 국가대표 친선경기는 한국과 일본의 골프협회가 주관하고 양국 외무 당국이 후원하는 형태로 2015년부터 2년마다 세 차례에 걸쳐 다이센골프클럽에서 열렸다. 

당시 선수로 참가했던 한국의 최혜진, 박현경을 비롯해 일본의 하타오카 나사, 가쓰 미나미 등은 양국을 대표하는 정상급 프로골퍼로 성장했다. 그는 또 한국과 일본의 프로와 아마추어 선수들이 참가하는 다이센컵도 수시로 열었다. 

2020년부터 열리지 못한 양국 친선경기를 재개하기 위해 최 회장과 김 프로는 움직이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남자 프로골프투어 대항전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프로는 “코로나19 이전보다 골프 코스가 조망과 관리 등 모든 면에서 다시 한번 업그레이드됐다”고 했다. 

다이센골프클럽은 지난해 JGA(일본골프협회)가 주관하는 일본여자아마추어선수권을 개최한 데 이어 내년에는 일본학생골프선수권과 일본여학생골프선수권을 연다. 

아름드리 적송이 울창한 다이센골프클럽에서 한국과 일본이 골프를 통해 화합을 향해 노력하는 모습을 곧 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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