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도의 음악기행 <65> 모차르트와 슈타인 피아노] 세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고전 음악의 선율을 남기다
리허설장으로 가는 길이다. 모차르트의 ‘세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K.V.242’를 연주할 예정이다. 연주 장소로 가는 길은 늘 설렘 반 두려움 반이다. 연주 장소의 음향은 어떨지, 악기는 어떨지, 함께 연주하는 이들과 합은 어떨지, 이 모든 것과 나는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예측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기에 이런저런 생각이 앞선다. 차로 30분 달려 연주 장소에 도착했다. 이번엔 특이하게도 오픈 에어 콘서트다. 야외에 마련된 무대에 육중한 크기의 콘서트 그랜드가 위용을 뽐내며 필자를 기다리고 있다. 짐을 꺼내 정리할 새도 없이 우선 무대로 뛰어 들어가 악기 앞에 잽싸게 앉아 오늘 연주할 모차르트의 선율을 눌러본다.
지금으로부터 250여 년 전인 1776년 모차르트가 작곡한 작품을 2000년도에 생산된 그랜드 피아노로 연주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차르트가 이 현대 피아노를 알았다면 음악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고 말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랜드 피아노라고 한다면 약 270㎝의 길이와 500㎏이 넘는 육중한 몸체가 가로로 길게 누워 있고 광택이 나는 검은색 도료로 마감된 악기를 떠올릴 것이다. 필자도 사실 많은 연주장에서 연주하는 동안 이런 검은색의 피아노 말고 다른 스타일을 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유럽에 있는 다수의 악기 박물관을 견학했을 때, 또는 미술관에서 감상했던 18~19세기 피아노가 담긴 유화에서 볼 수 있는 피아노는 현대 피아노의 특징인 검은색의 육중한 보디가 아니다. 훨씬 사이즈가 작고 나무의 결이 그대로 보이며 따뜻하고 우아한 자태가 눈에 띈다. 또 일부는 금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악기도 있다. 현대 피아노와는 분명히 달랐을 옛 피아노는 어떤 소리가 났을까.
필자가 연주할 이 모차르트의 ‘세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이 작곡된 1770년 무렵은 피아노의 전신인 하프시코드가 아직도 널리 연주된 시기였다. 하프시코드는 건반 액션에 손톱 같은 플렉트럼을 달아 현을 뜯어 소리를 내는 악기다. 바로크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했던 이 악기는 그 나름의 고유의 매력과 아름다움이 있지만, 모차르트의 고전 시대로 넘어오면서 풍부한 선율을 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셈여림의 조절에 있는데, 미세한 소리 크기의 조절이 불가능했고 악기에 달린 레버나 이중 건반을 이용해 소리를 크게 또는 작게 이렇게 두 가지의 셈여림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목소리같이 또는 오케스트라 연주같이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셈여림의 조절을 원했던 당시 악기 제작자는 뜯어서 소리를 내는 하프시코드 액션에서 탈피해 망치 같은 장치로 현을 때리며 울리는 시스템을 고안했다. 건반 악기 역사에 획기적인 사건으로서 손이 건반에 주는 압력에 따라 소리의 셈여림이 바뀌는 것을 의미하기에, 좀 더 다이내믹한 음악의 표현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런데도 초기 피아노는 아직 건반 액션이 불안정했고 셈여림의 표현이 현대 피아노처럼 두드러지게 정교하지도 않았기에 많은 음악가는 하프시코드를 여전히 선호했다. 하지만 한 세기 가까이 꾸준히 개량되고 발전되며 18세기 중반 이후 피아노는 서서히 하프시코드를 대체하게 됐고, 19세기로 넘어가며 하프시코드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모차르트에게 있어 이 ‘세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은 그가 피아노라는 악기의 매력에 더욱 빠져들고 피아노를 위한 아름다운 작품의 창작을 고취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차르트가 태어나서 처음 접한 악기는 하프시코드였다. 이 협주곡 작곡 당시까지만 해도 그는 작품 연주를 한 건반 악기로 특정하지 않고 하프시코드, 클라비코드, 피아노 (포르테피아노) 등으로의 연주를 모두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1777년 모차르트가 연주 여행 도중 들렀던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당시 최고의 피아노 제작자였던 요한 안드레아스 슈타인이 개발한 빈 액션(Viennese action)이 설치된 피아노를 연주하며 그 액션이 지닌 정확한 표현력에 감탄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 ‘세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슈타인의 피아노로 모차르트와 악기 제작자 슈타인 그리고 아우크스부르크 성당 오르가니스트 데믈러(Demmler)가 함께 연주하며 성공적인 반응을 끌어냈다고 한다. 이는 이후 그의 피아노 작품에서 피아노라는 악기로의 표현이 좀 더 적합한 다이내믹하고 풍부한 선율이 등장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도 평가받는다.
필자도 슈타인의 피아노를 현대에 복원한 악기에서 모차르트의 작품을 쳐본 경험이 있다. 거대한 현대 피아노로 치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가벼운 터치에 부드럽고 여린 음색을 내는 그 시대 악기를 치면서는 매우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
모차르트 시대의 건반 악기든, 현대의 모던 피아노든 어떤 악기로 모차르트의 음악을 연주해야 올바르다는 관점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예술의 본질은 악기 건반을 두드리는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 원전 피아노의 음색을 한번 감상해보며 모차르트 시대에 살던 이들이 공유했던 소리의 아름다움을 이해해보는 것 또한 고전 시대 음악에 한 발짝 더 친숙하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다.
필자는 이제 리허설을 마치고 무대에 오른다. 오픈 에어 콘서트에 수천 명이 넘는 관객이 모차르트의 음악을 기다리고 있다. 비록 1770년 모차르트 시대 원전 악기의 매력은 아닐지라도 현대 피아노의 거대하고 풍부한 울림이 2022년을 살고 있는 필자와 관객을 음악으로 연결해 줄 것이라 믿는다.
plus point
함께 감상하면 좋은 음반
모차르트
세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바장조 K.V.242
오케스트라: 하이든 신포니에타 빈
피아니스트: 로널드 브라우티감,
알렉세이 루비모프, 만프레드 후스
이 협주곡은 모차르트가 1776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로드론 백작 부인과 그의 두 딸을 위해 작곡한 작품이다. 이후 1777년 아우크스부르크를 방문하며 만난 피아노 제작자 슈타인과 오르가니스트 데믈러와 함께 이 작품을 슈타인의 피아노로 연주하며 그의 음악뿐만 아닌 악기 또한 극찬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당시 아우크스부르크 지역 신문에 실린 평은 “이렇게 즐겁고, 이렇게 순수하며 이렇게 표현이 풍부할 데가 없다. 또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고 마무리됐는지 모를 정도로 음악과 악기가 민첩하게 반응했고 이에 듣는 청중 모두 마법에 걸린 듯 황홀해했다”라고 언급했다.
이 음반은 비록 슈타인의 원전 악기가 아닌 발터의 원전 악기로 녹음됐지만 발터의 피아노는 슈타인의 빈 액션을 계승하고 발전한 모델인 만큼 아우크스부르크 신문이 언급했던 당시 관객이 느꼈을 황홀한 감성을 전달하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 안종도
연세대 피아노과 교수,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연주학 박사, 전 함부르크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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