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이 시사하는 점

김시소 2022. 10. 1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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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건 박사

노벨위원회가 2022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스반테 페보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장을 선정했다.

우리 인류가 속한 종인 호모 사피엔스는 어떤 유전자를 받았을까. 현대인과 멸종한 고대인의 유전자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페보 박사는 계속 이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왔다.

노벨위는 페보 박사가 찾은 답이 진실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노벨위는 “현대인과 오래전에 멸종한 고대인을 구별하는 유전적 차이를 규명했으며, 고유전체학이란 새로운 학문 분야를 확립했다”면서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지를 탐구하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과학자들이 어머니·아버지, 할머니·할아버지 유전자를 넘어 고대 인류까지 추적하고 연구하는 이유로 하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질문 가운데 하나가 “나는 '언제부터' '어떻게' 인간다워졌는가”이기 때문이다. 페보 박사는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큰 틀을 제시했다.

인간 유전자는 세포 안에서 두 부분으로 나뉘어 존재한다. 일반 세포핵 속 DNA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반씩 받아 교차를 통해 한 사람의 유전형질을 결정한다. 그러나 미토콘드리아 DNA는 교차가 일어나지 않고 어머니에게서만 유전될 수 있는 모계 유전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페보 박사는 1987~1990년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하던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 캠퍼스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버클리 캠퍼스는 이 시기에 앨런 찰스 윌슨 생화학 교수 주축으로 현대인 기원에 대한 논쟁을 풀기 위해 유전학을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페보 박사는 1987년에 발간된 네이처 논문을 통해 모든 인류 모계의 공통 조상인 '미토콘드리아 이브' 연대가 약 20만년에 불과해 이보다 오래 전인 55만년에 등장한 네안데르탈인이 현대 유럽인의 직계 조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90년 미국에서 연구를 마치고 독일로 돌아온 페보 박사는 네안데르탈인 미토콘드리아 DNA를 먼저 연구했다. 진핵 세포보다 미토콘드리아 염기가 훨씬 작고 다루기가 수월했기 때문이다. 이어 2009년에 네안데르탈인 게놈 전체를 최초로 해독했다. 페보 박사의 수십년에 걸친 끈질긴 연구를 통해 현대 인류의 유전체에 네안데르탈인 DNA가 섞여 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현생 인류의 기원을 밝히는 데 큰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페보 박사의 연구 분야인 고유전체학은 준화석 상태의 뼈와 같은 오래된 생체조직에서 유전물질인 DNA를 추출하고 DNA를 구성하는 염기서열을 해독한 후 이를 진화 이론을 통해 해석함으로써 역사와 인류 집단 간 관계를 추론하는 학문이다.

페보 박사는 데이터의 진실성을 높이기 위해 DNA 나선 가닥가닥을 분리해서 분석할 수 있는 자료의 양을 2배로 늘렸고, 게놈의 모든 부위에 대해 30차례씩 염기서열을 분석함으로써 현대인의 유전자와 비슷한 수준으로 분석할 수 있도록 했다. 실용성은 낮지만 인류의 원초적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지리한 작업이었다.

페보 박사의 업적은 차세대 염기서열분석(NGS) 기술을 인류학에 도입해서 DNA 인류학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를 만든 것이다. 현대인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우며 상당 기간 지구상에 공존한 대표적 고인류인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 해독이 그의 연구 핵심 업적이다. 무엇보다도 고유전체 연구를 우리 인류가 속한 종인 호모 사피엔스, 해부학적 현대인의 기원과 특성을 이해하기 위한 틀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페보 박사가 1980년대에 막 시작된 고시료 염기서열분석(NGS) 선구자 가운데 한 명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NGS 분야를 개척한 기술적 바탕이 고유전체 연구를 자연스럽게 진행하게 된 배경이었다. NGS를 바탕으로 한 분야를 40년 동안 연구한 노력이 결국 노벨상을 받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대한민국 과학계가 언제 어떻게 노벨상을 수상할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대한민국 기초연구자가 기초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고 대학이나 연구소가 강력히 지원해야 한다. 기초연구가 '백 투 베이직'(Back to Basic)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로 바뀌면 40년 후에는 우리나라 과학계에도 노벨상 수상자가 넘칠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배진건 박사(바이오테라퓨틱스 수석부사장) Jkpai@innocurethe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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