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암흑물질

장박원 2022. 10. 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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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천문학자 프리츠 츠비키는 1933년 '머리털자리 은하단'을 관찰하다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은하단 중심을 은하들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돌고 있는데도 튕겨 나가지 않는 현상이 이상했다. 그는 관측된 회전 속도를 활용해 은하들의 중력 질량을 다시 계산해 봤다. 그랬더니 은하의 밝기로 예상했던 것보다 400배 이상 큰 값이 산출됐다. 그는 이를 근거로 보이지 않는 어떤 물질이 은하들을 잡고 있다는 가설을 내놨다. 빛을 발하지 않아 보이지 않지만 은하계 중력에 영향을 주는 이것을 츠비키는 '암흑물질'이라고 명명했다.

2500년 전 일찌감치 우주에 퍼져 있는 암흑물질의 존재를 직감한 철학자가 있다. 노자는 우주의 근원이자 자연을 움직이는 '도(道)'를 이렇게 묘사했다. "보려 해도 볼 수 없고 들으려 해도 들을 수 없으며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다. 형상이 없는 상태(無狀之狀)이며 물질이 없는 모습(無物之象)이다." 노자는 도의 작용에 대해서도 "가득 찬 것은 비어 보이지만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는다"며 암흑물질을 암시하는 듯한 말을 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지난 5일 암흑물질 탐색연구를 수행할 '예미랩'을 공개했다. 강원도 정선군 예미산 지하 1000m에 위치한 고심도 지하 실험실이다. 우주에서 인류가 알고 있는 물질은 전체의 4%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암흑물질 비중은 27%에 달한다. 나머지는 물질이 아닌 에너지일 것으로 추정된다. 굳이 깊은 땅속에서 암흑물질을 탐색하는 이유는 우주가 내려보내는 방사선 잡음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고심도 지하의 암석과 흙은 우주 잡음을 차단할 보호막 역할을 한다. 암흑물질의 유력한 후보로 "약하게 반응하는 무거운 소입자"라는 뜻의 윔프(WIMP)가 있다. 하지만 아직 관측된 적은 없다. 암흑물질 관측이 성공한다면 노벨 물리학상은 따 놓은 당상이다. 노자는 우주의 근원을 '황홀'이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우리 과학자들이 예미랩에서 암흑물질의 황홀경을 경험하길 기대한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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