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폐지'가 독일식 모델이라고요? [팩트체크]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여가부 폐지를 담은 정부조직 개편안을 두고, 독일처럼 성평등 정책 주무 부처의 규모를 확대하고 업무 범위를 넓힌 사례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개편안을 독일식 모델에 빗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현숙 장관은 10일 여가부 폐지에 이견을 보이지 않은 여성단체 대표들과 한 간담회에서 “여성단체, 학계에서 독일의 여성기구를 많이 언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외국의 양성평등 기구도 사회 여건, 행정 수요에 따라 유연하게 구성·운영하고 있는데, 독일은 (처음에) ‘연방 여성·청소년부’라는 작은 조직이었으나 (현재) ‘연방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로 통합하여 부처 규모를 확대하고 양성평등 업무 범위를 넓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여가부와 보건복지부 통합으로 성별 건강 불균형 해소, 여성 빈곤 등 보건복지 분야 전반에 걸쳐 양성평등 정책 집행력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가부를 없애고 복지부 산하 본부로 두는 것이 독일식이라는 취지의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난 뒤,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 인사와 여러 전문가는 ‘독일 모델’을 참고하자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정부조직 개편안과 독일 모델은 상당한 거리가 있다. 독일 모델은 윤석열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안처럼 여가부라는 기존 성평등 정책 추진기구를 폐지하고, 다른 기구가 이를 흡수한 방식이 아니다. 독일식은 기존 성평등 정책 추진기구 업무 범위를 넓히는 식으로 부처 기능을 강화·확대한 사례에 해당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펴낸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 강화를 위한 법제 정비 방안’ 보고서에는 독일의 성평등 정책 추진기구 변화 과정이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보고서를 보면, 독일은 1985년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 비준 뒤 여성 정책의 중요성을 인식해 1986년 기존의 ‘연방 청소년·가족·보건부’ 이름에 ‘여성’을 추가했다. 노동사회부와 내무부에서 하던 성평등 업무를 옮겨온 결과다. 1990년 독일 통일 뒤에는 ‘가족·노인부’와 ‘여성·청소년부’, ‘보건부’ 3개 부처로 분리됐으나 1994년 다시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로 통합했다. 이 부처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독일 연방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는 성평등 관련 정책 형성부터 집행까지 총괄하며 연방 정부 법률안 발의권, 발언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며 “더불어 연방 부처들의 성 주류화 정책 이행을 총괄하며 다양한 비정부형태 여성 단체 활동과 네트워크에 대한 재정적, 제도적 지원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 주류화’란 법령 제정과 정책 기획, 예산 편성 등의 과정에서 성평등 관점을 반영하는 것을 뜻한다.
독일은 이렇게 기존 성평등 정책 기구를 없애지 않고 집행 업무 영역을 확대해왔다. 차인순 국회의정연수원 교수는 11일 <한겨레>에 “독일은 연방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 업무를 점진적으로 발전시켜온 나라”라며 “성별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 제정된 공정임금법을 집행하고 있고, 일·가정 균형을 위한 돌봄 정책을 체계화하는 방향으로 가족 정책을 개혁해 독일의 출생율도 개선되고 있다. 정부가 이번 정부조직 개편안을 부처 지위를 계속 유지한 상태에서 정책을 발전시킨 독일 사례와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했다.
지금 정부의 여가부 폐지안은 여성을 인구정책의 도구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은희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연구위원은 “지금의 정부조직 개편안은 젠더 고정관념을 해소하고 여성에게 과도한 돌봄 책임을 지우는 사회 구조를 바꾸는 방식이 아니라 여성의 재생산 권리를 인구정책 대상이자 도구로만 보고, 다양한 가족 구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인구를 생산하는 일과 연결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정부조직 개편안은) 인구정책,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목적으로 양성평등 정책을 조율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 모든 영역에서 성평등이 실현돼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조직 형태뿐만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후퇴한 방안이다. 지금 나온 개편안을 두고 독일 모델을 ‘참고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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