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이 물을 만나, 생명력 솟구치는 화폭으로
한국과 프랑스 오가며
고향 진도 흙 화면에 바르고
佛 이브클랭블루 안료로
동서양 아우르는 작업
23일까지 가나아트센터
채성필의 개인전 '경계, 흙으로부터'가 23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익명의 땅' '물의 초상' '흙과 달' 등 60여 점을 걸고 흙을 매개로 자연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경계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동서양의 경계에 놓인 내 정체성에서도 자연의 경계에 있는 흙에서도 창작의 동력을 찾았다"면서 " '그려지게 하다'는 말을 좋아한다. 흐름은 자연의 현상이자 본질"이라고 말했다.
채성필은 만물의 근본 물질을 설명하는 서양의 '4원소설'과 동양의 '오행설'이 모두 흙을 포함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파리 1대학에서 조형예술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작가는 동양화의 전통 채색법과 서양미술의 조형 어법을 접목하는 실험을 통해 유럽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뉴욕, 두바이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세르누시박물관, 파리시청, 피노재단,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세종정부청사 등에서 소장하고 있다.
그의 작업 방식은 잭슨 폴록을 연상시킨다. 은은하게 캔버스가 빛이 나는 건 진주를 곱게 갈아 사전에 미리 칠해놓아서다. 은가루가 빛나는 캔버스에 진흙을 맑게 거른 물을 덧바른다. 흙물이 마르기 전에 거대한 캔버스를 바닥에 눕히고 작가는 액션 페인팅처럼 화폭을 채운다. 먹물이나 물감을 뿌린 뒤 캔버스를 세우거나 기울여 물이 흐르게 한다. '대지의 몽상'은 사막 같기도 하고, 갈대가 무성한 언덕처럼 보인다. 흙을 발랐지만 파도처럼 역동적인 '익명의 땅'은 '물의 초상'으로 건너가는 정거장 같은 작품이다.
흙을 사용하는 방식에 낯설어하는 이들에게 그는 "미술 역사의 시작도 흙으로부터였다. 동굴벽화가 최초의 그림이지 않았나"라고 되물었다. 프랑스의 흙은 물론이고 여전히 고향의 흙도 안료에 배합해 사용한다. 그는 "고향인 진도, 해남, 고창의 흙을 좋아한다. 투명도가 뛰어나면서 색이 따뜻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 눈에 띄는 건 1층에 대거 걸린 '물의 초상' 신작들이다. 작가가 2010년대 후반부터 선보인 '물의 초상'은 물이 주제로 전면에 드러났다. 잔잔한 호수의 물결이나 세차게 치는 파도, 협곡을 연상시키며 자연의 생명력을 뿜어낸다.
특별히 눈이 시릴 정도로 강렬한 파란색은 '이브 클랭 블루'로 알려진 인터내셔널 클랭 블루(IBK) 안료를 사용해 완성했다. 그는 "멍이 든 상처와 우울감도 블루, 희망과 치유도 블루다. 저에게 블루는 삶을 표현할 수 있는 색"이라면서 "파랑은 땅을 감싼 바다의 색이자, 움직이지 않는 흙의 에너지가 표현된 게 순환하는 물이라고 생각했다. 물은 고이고 넘치면 흐른다. 넘쳐서 흐른 물은 비어 있는 자국을 따라가는 자국을 남긴다. 그것을 화면에 그대로 옮겨낼 뿐"이라고 말했다.
물질의 본질에 주목하면서도 새로운 기법에 도전하는 이유에 대해 작가는 "어제 그림이 오늘 내 그림에 방해가 되더라.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작가의 삶은 끝이 없고 과정으로 살다가는 게 아닌가 한다"고 설명했다.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채성필의 작업을 '농부의 일'에 비유하며 "채성필의 작품은 대지를 품은 우주에 대한 이야기다. 단색으로 거침없이 그린 그의 그림들은 지구 위에서 벌어지는 온갖 기상의 변화와 그로 인해 땅과 바다, 그리고 하늘이 펼치는 드라마에 대한 시각적 은유"라고 평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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