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박탈 100번 해도 시민은 늘 문전박대"

김지환 기자 2022. 10. 1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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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검사들> 펴낸 최정규 변호사의 ‘진짜 검찰개혁’ 방안

[주간경향] 지난해 4월 <불량 판결문>으로 사법부의 부조리에 일침을 날린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44)가 지난 9월 말 두 번째 책인 <얼굴 없는 검사들>을 내놓았다. 책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번 추적 대상은 법원이 아닌 검찰이다.

최 변호사는 책에서 간첩 조작 사건부터 검찰 직장 내 괴롭힘 사망 사건, 성폭력 피해자 신원 노출 사건, 지적장애인 노동력 착취 사건까지 검찰이 정의를 외면한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진짜 검찰개혁’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올해 들어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검수덜박(검찰수사권 덜 박탈), 검수원복(검찰수사권 원상복구) 등의 신조어가 잇달아 나오면서 시민은 검찰개혁 이슈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이주노동자, 장애인, 국가폭력 피해자, 공익제보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온 최 변호사는 검찰개혁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고 책에 적었다. “검수완박, 검수덜박…. 이런 제도 개혁이 100번 진행된다고 해도 검찰의 권력이 주인인 시민의 품으로 돌아올 수 없다. 민원실에서 문전박대당하는 시민은 계속 문전박대당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개혁을 정치인들에게 맡길 수 없다. 누가 대신 차려주는 밥상은 걷어차고 이제 시민들이 직접 밥상을 차려야 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10월 5일 최 변호사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검찰의 문제점, ‘진짜 검찰개혁’ 방안 등을 들었다.

최근 <얼굴 없는 검사들>을 출간한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가 지난 10월 5일 서울 마포구의 한 공유오피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책 제목이 <얼굴 없는 검사들>이다. 피해자 등 사건 관계자들이 검사 얼굴 한번 보기 힘들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지은 제목인가.

“기자들도 경찰은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소통하는데 검찰은 뭔가 벽에 막혀 있다고 말한다. 변호사도 비슷하게 느낀다. 우병우씨 같은 전관이야 조사받으면서 팔짱도 끼고 하겠지만 검사 얼굴 보는 게 쉽지 않다. 찾아가도 잘 만나주지 않고, 전화해도 자리에 없는 경우가 많다. 할 이야기 있으면 서류로 내라고 한다.”

-<불량 판결문>에 이어 1년 5개월 만에 <얼굴 없는 검사들>을 출간했다.

“법원이 소액 사건의 경우 판결 이유를 적지 않는 등 사법부의 문제점을 <불량 판결문>에서 지적했지만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글 쓰는 데 회의감이 찾아왔다. 이런 마음을 계속 갖고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이번엔 검찰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다. ‘검수완박’이 국회에서 난리일 때라 글이 잘 안 써지더라. 거대담론이 오가는데 막상 검찰 민원실 개혁 같은 이야기를 쓰려니 위축되는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거대담론은 학자들이 다루면 되고 나는 시민이 현장에서 겪는 이야기를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

-책 서두에 서울중앙지검 민원실에서 공익 법무관으로 1년간 근무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검찰개혁은 민원실 개혁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짚었다.

“일반 시민들이 경험하는 검찰의 얼굴은 민원실이다. 요즘 시청이나 구청 민원실 가면 호텔 같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잘돼 있다. 내가 2004~2005년 근무 당시 민원실 위치가 이해가 안 됐다. 주차장과 연결된 지하 1층에 민원실을 박아뒀다. 햇빛도 안 드는 곳이다. 이것이 검찰이 시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보여주는 단면 아닐까.”

-민원실에서 고소할 때 ‘서면이 아닌 구두로 할 수도 있고, 이 경우 검사가 조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제237조를 소개하고 있던데….

“예를 들어 한글을 모르는 어르신은 서면으로 고소할 수가 없으니 법무사나 행정사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법은 호화 변호인단을 꾸리는 재벌이 아니라 변호사 근처도 못 가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거다. 형소법 제237조는 시민을 위한 것이지만 현실에선 형해화됐다. 구술로 고소하겠다고 하면 ‘뭐라고요?’라는 반응이 돌아올 거다.”

-정치권에서 논의된 것은 주로 검찰의 수사권인데 최 변호사는 기소권(기소독점주의)에 더 주목하고 있다.

“어차피 99%는 경찰이 수사한다. 이후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면 기소 여부는 검찰만이 결정할 수 있다. 검찰의 가장 막강한 권한은 수사권보다 기소권이 아닐까.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중앙지부에서 2년 넘게 개인회생·파산지원센터장으로 일했는데 센터를 찾은 이들 대부분이 ‘임금 체불’을 시작으로 빚지게 됐다. 하지만 검찰은 체불임금 액수에 훨씬 못 미치는 벌금으로 약식기소를 한다. 사용자가 노동자의 월급 계좌에 딱 자신이 인정하는 추가 임금만 입금하면 불기소처분인 기소유예를 남발하기도 한다. 검찰이 기소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아 시민이 큰 피해를 입는 대표적 사례다.”

-검찰청법에 검사는 ‘공익의 대변자’라고 돼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는 평가가 많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무엇이었나.

“결정적으로 검찰에 실망한 사건은 2016년 서울남부지검에서 근무하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김홍영 검사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명백한 폭행과 명예훼손이다. 일반 시민이 가해자였다면 처음부터 기소가 됐을 사안인데 가해 부장검사는 당시 징계처분만 받았다. 2019년 김홍영 검사의 부모가 국가배상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해서 무료 변론을 맡았다. 이 소송을 진행하면서 가해 부장검사에 대한 대검의 감찰조사 자료를 확보했다. 자료를 보니 당시 동료 검사와 직원들의 진술이 정말 구체적이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가해 부장검사를 기소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0년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폭행 혐의에 대해 공소 제기가 타당하다고 의결한 뒤에야 검찰은 뒤늦은 기소를 했고, 가해 부장검사는 지난해 7월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런 제 식구 감싸기에 시민들은 분노를 느낀다.”

고 김홍영 검사의 어머니가 2016년 7월 5일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이 기자회견은 고인의 사법연수원 41기 동기들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기 위해 열었다. 이준헌 기자

-김홍영 검사 사건은 다행히 검찰수사심의위가 열려 기소를 권고했지만 최 변호사가 대리한 사찰 노예 사건, 이주노동자 체불임금 사건, 유령 대리 수술 피해자 사건 등 다른 4건은 수사심의위 소집 요청조차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사심의위는 시민들이 개입해 기소, 수사 계속 여부 등을 검찰에 권고할 수 있는 제도다. 이 수사심의위에 안건을 상정하기 위해선 ‘부의 심의위’ 판단을 거쳐야 한다. 4건 모두 부의 심의위조차 열리지 않았다. 월드컵으로 치면 지역예선에서 탈락한 셈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20년 6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승계 의혹, 2021년 3월 프로포폴 불법 투약 의혹 등 2건에 대해 신청했는데 모두 받아들여졌다. ‘국민적 관심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을 심의한다는 운영 규정이 자의적으로 해석되다 보니 이 제도가 재벌과 힘 있는 이들의 전유물이 되고 있다.”

-올해 검찰청법, 형사소송법 개정안(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는 과정을 어떻게 지켜봤나. 책에선 국민이 검찰에 부여한 권한 자체가 국민을 위해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검찰권력을 분산하는 정책만을 검찰개혁의 과제처럼 밀어붙인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가장 큰 문제는 시민들이 이제 검찰개혁이라는 말만 들어도 피로감을 느끼게 됐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검찰개혁 완성은 쉽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계속 그 기조를 이어가야 했는데 대통령선거 이후 더 밀어붙인 게 역효과가 났다.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보여질 여지가 컸다. 아무리 내용물이 좋아도 포장을 잘 해야 하는데 마케팅 대실패였다. 검찰개혁에 힘을 실었던 시민들이 이제 포장지도 안 뜯게 만들어버렸다. 시민을 위한 개혁이라고 하지만 어느 시민이 선물을 받으려 하겠나. 욕먹을 각오를 했다면 제대로 해야 했는데 시행령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도 남겼다. 어떻게 보면 본인들도 주춤한 거다. 결국 안 하느니만 못한 ‘검찰개혁 시즌 2’가 됐다. 지난 4월 검찰수사권이 더 축소될 상황이 되자 당시 김오수 검찰총장이 국회의장에게 검찰수사 공정성과 인권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제안했다. 이 제안엔 수사심의위를 정례화해 국민이 참여하는 기소 대배심제처럼 운영하자는 ‘선물’도 있었다. 법안 통과를 약간 미루고 검찰의 이 ‘꼼수’를 오히려 ‘정수’로 받은 뒤 제도화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면 진짜 검찰개혁은 뭐라고 생각하나. 책에선 기소 대배심제, 검사의 사건 당사자 면담 의무화(문전박대 금지법) 등을 제시했다.

“검사도 피해자 혹은 피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무슨 개혁이 필요한지 알게 될 거다. 예를 들어 피의자 서면조사 활성화가 필요하다. 꼭 수사기관에 출석해서 키, 나이, 혈액형 등 기본적 사실관계를 구두로 말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나. 물론 출석조사가 필요할 경우도 있지만 무조건 나오라고 하는 건 수사기관 편의를 위한 거다. ‘사건 처리 결과 통지’를 일반우편으로 보내는 관행도 바뀌어야 한다. 개인정보가 가족이나 동네 사람들에게 노출될 위험이 있는 만큼 당사자가 우편을 받을 주소를 선택하도록 하거나 문자메시지로 받도록 할 수 있다. 시민의 입장에서 본 개혁이 중요하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이런 의제를 발굴한 뒤 검찰과 정기적으로 만나는 자리에서 시민의 목소리를 내주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퇴직한 뒤 2012년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경기 안산 원곡동에서 ‘원곡법률사무소’를 차렸다.

“공익 법무관을 마치고 2006년 공단 안산출장소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사건이 많았다. 이듬해엔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더 깊이 알게 됐다. 2009년 서울로 근무지를 옮겼는데도 안산이 마음의 짐처럼 남았다. 결국 2011년 ‘철밥통’을 걷어차고 이듬해 안산에서 개업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고, 변호사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공익 변호사보단 사회적 약자를 ‘구조’하는 변호사가 내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표현 같다. 공익이라는 개념은 추상적이지 않나. 권위주의 정부 시절 납북됐다가 돌아온 뒤 반공법 위반 등으로 억울하게 처벌받은 어부, 임금체불로 고통을 겪는 이주노동자 등은 응급구조가 필요한 분들이다. 누군가 만나 조금의 도움만 드려도 다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앞으로도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분들을 최선을 다해 구조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

-세 번째 책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법원, 검찰에 이어 세 번째로 다루려는 주제는 국가다. 고 김홍영 검사 유족의 국가배상 소송을 대리하면서 국가의 답변서를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 ‘이게 국가가 쓴 답변서가 맞나’ 의문이 들 정도였다. 2020년 1월 피고 대한민국의 법률상 대표자인 추미애 법무부 장관 명의의 답변서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망인은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개선 노력 대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이러한 점은 국가의 책임을 제한한다고 할 것이므로 배상 책임의 범위를 정함에 있어서 참작돼야 할 것입니다.’ 정말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국가배상 소송에서 국가가 낸 답변서를 모아 글을 써보려고 한다. 가제는 ‘불량 답변서’다(웃음).”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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