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몸짓으로 재탄생한 무용극 '호동'.."집단 광기 맞선 개인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
사랑 때문에 조국을 배신하고 죽임을 당한 비운의 여인, 그를 이용해 승전보를 울린 옛 왕자의 이야기는 이제 없다. 국립무용단이 삼국사기 속 ‘호동 설화’를 재해석한 <2022 무용극 호동>을 무대에 올린다. 올해로 창단 60주년을 맞은 국립무용단이 오랜만에 선보이는 무용극이자 단원 44명 전원이 무대에 오르는 대작이다. 한국 무용극의 기틀을 정립한 국립무용단 초대 단장 송범(1926~2007)이 1974년 선보인 <왕자 호동>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다시 풀어냈다.
한국적인 춤에 서양 고전발레의 형식을 차용한 무용극은 1962년 국립무용단 창단 이후 30여년간 국립무용단을 대표하는 하나의 장르였다. 특히 송범이 안무한 <왕자 호동>은 초연 이후 무용극은 물론 발레(1988년 국립발레단)로도 공연되며 한국 무용사의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국립무용단이 새롭게 선보이는 <2022 무용극 호동>은 설화를 바탕으로 하되 호동과 낙랑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국가와 불화하는 한 개인의 내면과 고뇌에 초점을 맞춘다. 이지나 연출은 11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왜 호동이 열일곱 살에 자결을 했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했다”며 “국가와 사회의 통제 속에 개인의 자유의지가 어떻게 허물어지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설화 속 자명고는 이 작품에서 호동의 양심과 세계관이 집단과 충돌할 때 울리는 상징적인 존재”라며 “집단의 광기 속에 소외되고 있는 호동의 내면에 집중했고, 낙랑 공주는 그런 호동의 내면을 투영하는 인물로 해석했다”고 말했다.
한국 뮤지컬 1세대 연출가로 꼽히는 이 연출은 서사에 중점을 두는 과거 무용극과 달리 상징적인 형상에 집중한 ‘이미지극’ 형식으로 이번 무대를 풀었다. 그는 “과거 무용극은 서사가 뚜렷하고 안무와 연기도 사실주의적인 면이 강했는데 이는 지금의 한국무용의 결과 맞지 않는다”며 “호동의 인생을 총 8장으로 구성해 상징적인 표현 방식으로 풀어냈다”고 설명했다.
안무는 국립무용단의 간판 무용수이자 다수의 작품에서 안무·조안무로 참여한 정소연, 송지영, 송설 단원이 맡았다. 무대에 오른 무용수 모두가 ‘호동’이 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국가와 시스템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의 내면을 드러낸다. 내면의 욕망이 폭발해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6장 ‘낙화’, 송범의 원작에 등장한 ‘청룡 춤’을 오마주한 1장의 ‘나’, 국립무용단원 전원이 무대에 올라 선보이는 역동적인 군무 등이 볼거리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OST에 참여하는 등 뮤지컬과 대중음악을 넘나들며 활동해온 작곡가 이셋(김성수)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다. ‘탁’ ‘틱’ 등의 노이즈를 비트로 응용한 전자음악 기법인 글리치(Glitch)와 실시간 코딩 프로그램을 활용해 국악 리듬을 구현했다. 태평소, 당피리, 아쟁을 포함한 국악기와 인도 전통악기인 하모니움, 전자 건반악기와 서양 현악기 등 이질적인 음색의 악기를 조합한 독특한 사운드를 선보인다. 이셋 감독은 “힘 있는 국가에 대한 장면에선 기존 악기들을 많이 사용했고, 반대로 서사를 가지지 못한 힘 없는 개인들을 다룰 땐 전자 악기음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호동과 대립하는 냉혹한 국가의 이미지는 차가운 느낌의 금속 구조물과 LED(발광다이오드) 벽체로 드러낸다. 손인영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은 “창단 60돌을 맞아 지금껏 보지 못한 고전적이면서도 미래적인 무용극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27~29일.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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