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노동자성 인정→불인정" 두달여만에 바뀐 결론..노동부 "재조사" 지시[국감 2022]

유선희 기자 2022. 10. 1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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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복지공단은 "노동자성 인정" 산업재해 승인
담당 지청장 "정당한 업무지시, 개입 아냐" 반박
달비계 작업현장. 대한산업안전협회 블로그 캡처

지난해 6월4일 대구시 달성군의 금속 절삭기계 제조업체 대구텍 유한책임회사에서 하청업체 소속 일용직 청소노동자 A씨(54)가 건물 외벽 유리창 청소를 하다 추락해 숨졌다. 8m 공중에 있던 달비계(로프로 고정된 작업대) 줄이 끊어졌다.

A씨는 대구 남구의 한 건축물 일반 청소업 하청업체의 일용직 노동자였다. 원청은 대구텍이었다. 원청에서 일을 받은 하청업체 노동자가 업무 중 숨졌는데 이 사건을 관할한 고용노동부 지방노동청은 A씨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담당 근로감독관은 참고인 조사와 안전작업허가서, 교육일지 등을 근거로 노동자성이 있다고 봤는데 두 달여만에 ‘불인정’으로 결과가 뒤집혀 나왔다.

근로감독관은 노동부에 문제를 제기했고, 올해 초 감사가 진행됐다. 감사결과 관할 지청장이 이례적으로 사건 초기부터 처리방향을 제시하고, 근로감독관은 업무에서 배제된 것이 확인됐다. 노동부는 지난 7월11일 해당사건을 ‘재조사’하라고 관할 지방노동청에 지시했다.

담당 지청장 사건초기 이례적 관여, 토론회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입수한 해당 사건의 노동부 감사 문건에는 B지청장(59)이 사건에 개입한 여러 정황이 담겼다. B지청장은 담당 근로감독관을 여러 차례 불러 “대구텍이 도급인이 맞느냐” “어떻게 단정을 짓느냐”고 물었다. 또 근로감독관이 원청인 대구텍 대표이사를 조사하겠다고 통보하자 “왜 부르려고 하느냐, 그 사람이 뭘 알겠느냐”고 물었다. 대구텍 대표이사는 내사종결 될 때까지 조사를 받지 않았다.

B지청장은 지난해 7월15일 이 사건에 대한 토론회를 열어 “달비계는 전문분야여서 아무나 다 할 수도 없고, 하는 사람은 일거리가 오면 가서 해주고 이런 식이다. 어떻게 근로자가 되냐, 그거는 앞서가지 마라” “나중에 프리랜서로 뛸 수도 있고, 독립적 자영업자로 일할 개연성이 크다. 일용근로로 신고했다고 소속 근로자로 일했다고 하면 그것도 좀...” 등 의견을 냈다. 노동부 감사관은 해당 발언이 “사건조사 및 처리방향에 영향을 미치려는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판단했다.

B지청장은 담당 근로감독관을 탐탁치 않아 하면서 같은 부서 팀장과 과장에게 함께 조사할 것을 주문했다. 팀장은 근로감독관에게 “지청장이 막 다그친다. 같이 조사하라고 했는데 ‘왜 안 했어, 명령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하면서 명령 어긴다고 협박한다”는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담당 근로감독관은 사건을 맡은 지 약 두 달이 지난 지난해 7월 말 업무에서 배제됐다. ‘사건을 조사하는 것이 힘들다고 말한 적이 없고 지연 처리하지 않았음’을 근거로 항의했지만, 과장은 감독관을 교체했다. 과장은 “감독관이 경력이 전혀 없어 근로자(노동자)성 판단에 어려움이 있다고 보였고, 지청장도 감독관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느꼈다”고 했다.

“A씨는 직접 제가 관리하는 근로자였다”고 진술했던 하청업체 대표는 “당사 소속의 근로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을 영위하는 분”이라고 말을 바꿨다. 교체된 근로감독관은 번복한 진술을 받아들였다. 해당 사건은 지난해 8월27일 검찰의 지휘를 받아 ‘내사종결’ 됐다. “근로자로서 지위를 긍정하기 어려워 범죄사실이 인정된다고 볼 수 없으므로 ‘내사종결’ 처분한다”는 지방노동청의 건의를 검찰이 받아들였다.

노동부 감사관은 “재해자가 일용근로자임을 인정하는 참고인들의 일관된 진술이 있고 근로자성을 인정할 만한 객관적 증거자료가 있는데 이례적으로 B지청장이 사건 처리의 방향을 제시했다”고 봤다. B지청장이 근로감독관의 원청 대표이사 출석요구를 저지한 데 대해선 “출석요구서 발부는 담당자 전결사항으로 명시하고 있으므로, 감독관에게 권한이 있다. 조사권한을 방해했다”고 판단했다.

같은 사건에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자성 인정”

같은 사건을 두고 근로복지공단(공단) 판단은 달랐다. 공단은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산업재해를 승인 했다. 공단은 중대재해 조사 의견서와 보험가입자 의견서, 일용 노무비 대장 등을 근거해 A씨를 하청업체 소속 일용직으로 판단했다. 공단은 지난해 8월20일 재해자 유족에게 유족급여 등을 지급했다.

노동부는 내사종결 10개월여 뒤인 지난 7월11일 B지청장, 근로감독관을 교체한 과장에게 ‘경고’ 조치 처분을 내렸다. 교체된 근로감독관에 대해서는 “검토가 부족했다고 판단되지만 위법·부당하게 처리했다고 보기는 곤란하다”며 ‘미조치’ 결론을 내렸다. 해당 중대재해 사건은 ‘재조사’하라고 했다. 감사결과에 따르면 “이 사건 재해자의 근로자성 판단에 대해 객관적으로 재조사하도록 해당 노동청에 ‘시정’ 조치하고, 그 결과는 대구고용노동청장에게 보고하라”고 했다. 또 “지방노동관서와 근로복지공단 간 판단을 달리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 권고 조치 및 특정감사 대상에 포함해 검토하라”고 했다.

경고 조치를 받은 담당 과장은 이의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B지청장은 11일 기자와 통화에서 “감사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 근로자성 판단은 정해진 툴(기준)이 있어서 그에 따라 조사하라고 한 것으로, 담당 근로감독관이 근로감독 경험이 없어서 토론회도 열고 이야기 해준 것이다”며 “결재권자인 만큼 그에 따른 업무지시이지 개입이 아니다. 대구텍과 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인줄 알았는데 따로 계약을 맺고 일한 것으로, 작업도구도 혼자 쓰고 근무지시도 받지 않았다. 누가봐도 근로자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공단 판단에 대해선 “저희가 결론 내지도 않았는데 공단에서 유족 급여를 승인한 것으로 유감이다. 그걸 감사해야 한다”고 했다.

노웅래 의원은 “지역 대기업과 지방노동청 간 유착이 의심되는 사례로, 사람이 죽었는데 사건 결과가 뒤집힌 건 이해되지 않는다. 직권남용 등 더 철저한 조사가 진행돼야 한다”며 “가뜩이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악 시도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은 고용노동부 전체의 조사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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