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면 횡령해도 무죄?..박수홍父가 쏘아올린 친족상도례 논란
가족 간 재산범죄 처벌 못하는 '친족상도례' 개정 목소리 커져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친족 간 발생하는 횡령·사기 등 돈과 관련한 범죄에서 국가의 개입은 어디까지 허용돼야 하나. '친족'의 범위는 어디까지이며, 형사처벌 가능한 '피해 기준'은 어떻게 산정하나.
방송인 박수홍씨가 자신의 가족을 상대로 제기한 고소전이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박씨 주장대로 그의 친형은 거액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지만, 돌연 그의 부친이 "횡령은 내가 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면서 논란에 더 불이 붙었다. 법조계에서는 박씨 부친이 '친족상도례'를 염두에 두고 방어막을 친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이에 1953년 국내 형법 제정 당시 만들어 진 해당 규정을 현실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진다.
11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서부지검은 지난 7일 박씨의 친형 진홍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형수인 이아무개씨도 공범으로 인정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됐다.
검찰은 진홍씨 부부가 2011년 연예기획사를 차린 뒤 작년까지 10여 년에 걸쳐 박씨가 벌어들인 돈과 각종 개인자금 등 총 61억7000만원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인건비를 허위 계상한 뒤 이 자금을 부부 명의 부동산 매입에 사용하고, 박씨 개인계좌에서 무단 인출하는 방식 등으로 거액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다. 재판에 넘겨진 진홍씨는 줄곧 혐의를 부인하는 상태다. 그러나 검찰은 물적 증거나 당사자인 박씨의 증언 등을 종합할 때 특가법상 횡령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박씨와 진홍씨 사이에 있는 박씨의 부친이다.
박씨 부친은 진홍씨가 구속된 후 '횡령은 내가 한 것'이라며 검찰과 언론을 통해 다소 미심쩍은 '자백'을 내놨다. 만일 박씨 부친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진홍씨는 '무혐의'로 풀려날 수 있게 된다. '친족상도례'가 적용되면 횡령 주체에 따라 처벌 양상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형법 328조의 친족상도례는 직계혈족이나 배우자, 동거 친족, 동거 가족 등 사이에서 벌어진 절도 사기·횡령 등 재산 범죄를 처벌하지 않도록 한다. 그 외 친족 간은 고소가 있어야 공소제기가 가능한 친고죄가 적용된다.
결국 수십억원에 달하는 박씨의 돈을 횡령한 인물이 박씨의 부친으로 드러난다면 이를 처벌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친고죄가 적용되는 친형은 박씨가 지난해 4월 검찰에 고소하면서 기소됐는데, 직계 존속인 아버지는 범죄가 확인되더라도 형사처벌 할 수 없다.
고령인 박씨 부친이 회사 운영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증거가 없고, 그가 통장이나 금융 관련 정보 등을 파악하지 못한 걸로 확인되면서 이 시도는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번 사안처럼 엄연히 피해자가 있는데도 친족상도례를 악용, 가족이라는 이유 만으로 처벌을 피하는 '구멍'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69년 전 법 제정 당시와 현재의 사회·가족상이 급변한 데다, 재산을 둘러싼 범죄에 보다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정치권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과거에도 가족의 심신장애 상태를 노린 재산범죄가 이슈로 떠오른 뒤 개정 움직임이 일었다. 그러나 여론의 관심이 빨리 시들면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번 국회에서는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친족상도례 규정 전면 폐지를 골자로 한 개정안을 발의했고, 같은 당 이병훈 의원은 사기·공갈·횡령·배임에 한 해 해당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정부도 69년 전 제정된 법률을 현재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친족상도례 규정에 대해 "지금 사회에서는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개정 필요성에 힘을 실었다.
다만, 일각에서는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신중한 개정을 주문한다. 해당 규정이 '사생활'의 영역인 가정 문제에 공권력의 과도한 개입을 막는 순기능도 있기 때문이다.
김광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친족상도례 개정 방안에 관한 소고' 논문에서 친족상도례에 따라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형면제' 대신 근친에 대한 친고죄 도입 및 근친 범위 조정, 원친에 대한 반의사불벌죄 도입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김 조사관은 현행 친족상도례 제도 운영에 대해 "피해자가 있는 데도 국가가 피해자의 호소에 국가가 귀를 닫고, 가까운 관계일수록 국가가 가해자들을 방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범죄에 대한 개입을 포기하는 것과 원칙적으로 개입을 인정하되 피해자의 의사, 피해자·가해자 사이 관계, 피해 정도 등 구체적·개별적 사정을 고려해 처벌을 자제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며 변화된 사회상을 반영한 종합적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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